[창조와 과학·236] 과학으로 본 노아 시대 대홍수 ②

등록날짜 [ 2023-10-20 14:14:01 ]



모든 동물 한 쌍씩 싣기에 공간 충분

1년 동안 ‘동면’ 상태로 생존 가능해

노아가 하나님 명령대로 지었으므로

30m 파도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져


노아 시대 대홍수는 여러 가지 궁금증을 갖게 한다. ‘전 세계에서 어떻게 동시에 홍수가 일어났을까?’, ‘방주는 엄청난 파도와 해일을 만나도 안전했을까?’ ‘수많은 동물이 방주 안에 어떻게 다 탔을까?’ 같은 의문점이 많다. 현대 과학으로 노아 시대 대홍수를 알아보려고 한다.


방주 안 동물들 ‘동면’ 상태로 식량 해결

노아의 방주는 잣나무로 만든 큰 상자형 배였다. 3층 구조에 창문과 출입문이 있었고, 추진 장치와 방향키는 없었다. 따라서 방주 안에서 노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님만이 방주를 조종하실 수 있었다.


방주 크기(창6:15)는 길이 300규빗(135m), 너비 50규빗(23m), 높이 30규빗(14m)이었다. 길이는 축구장보다 길고, 면적은 농구장 20개보다 더 넓다. 방주의 배수량은 21,000톤, 재화 중량은 17,000톤, 내부 용적은 38,000㎥이었다. 중량을 기준으로 하면 동물 170,000마리가 탈 수 있고, 부피를 기준으로 하면 63,300마리가 탈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코로 숨 쉬는 동물이 약 17,600종이라 하니 “한 쌍씩 실으라” 하신 하나님 명령대로 따르고도 남는 규모이다.


문제는 이처럼 동물을 대피시킬 공간이 충분하다고 하더라도 그 동물이 먹을 일 년 치 식량은 어디에 저장하고, 누가 이들을 돌보았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창8:1)라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권념하다(remember)’라는 말은 ‘깊은 사색에 잠기다’라는 어원을 지니고 있는데 방주의 부족한 공간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모든 동물은 환경이 나빠지거나 기온이 떨어지고 어두워지면 이에 적응하려고 잠을 자는데 이를 동면(冬眠)이라고 한다. 현재도 지구상에 있는 많은 동물이 겨울잠을 잔다. 뱀 같은 동물은 땅속에 들어가 체온을 4도 정도로 유지하면서 수개월을 먹지 않고 동면한다. 하지만 방주 안에 들어간 동물 중 조류는 동면하지 않는다는 통설에 따라 그동안 이 같은 주장은 비판을 받아 왔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푸월새’ 같은 쏙독샛과 새가 동면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방주 안에 있던 모든 동물이 홍수 중 상당 기간 동면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홍수 기간에 생물의 종을 보존하기 위한 특별한 계획으로 모든 동물에게 동면할 능력을 주셨다는 것이다.


창조주의 설계대로 지어 내부도 ‘튼튼’

그러면 이렇게 많은 동물과 식량을 실은 방주가 어떻게 그 엄청난 대홍수와 해일을 견딜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조선(造船)공학에 따라 방주가 얼마나 안전한 구조로 설계되었는지 증명됐다. 한국창조과학회는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시스템안전연구소에 연구를 의뢰했다. 그 결과에 따르면 방주 모형을 이용해 시험한 결과, 방주는 복원 안전성과 구조 안정성, 내향 성능이 우수하고 쾌적하게 만들어진, 매우 현실성 있는 배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심지어 지금까지 해상에서 발생한 파도의 최고 높이가 20m인데, 방주는 30m 파도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됐다는 사실이 현대 과학으로 증명됐다.


선박 기술자나 연구팀이 없던 노아 시대에 배를 만든 경험이 없고 장비도 없던 노아가 어떻게 이렇게 정확한 설계 비율로 안전한 배를 만들 수 있었을까? 이는 바로 하나님께서 지시한 대로 순종한 결과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방주의 치수와 설계도는 현대 과학자들이 첨단 장비와 조선공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실험해 보아도 최적의 크기와 안전한 구조로 설계됐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방주야말로 하나님 자신이 직접 설계하신 작품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계속>      


<사진설명> 터키 동쪽 끝 아라랏산에서 발견된 방주 흔적. 약 167m 높이 흙더미가 쌓여 있다.



자료 출처-한국창조과학회



위 글은 교회신문 <82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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