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안과 밖 이야기] 헬라 문명이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 끼쳐

등록날짜 [ 2014-11-10 11:59:35 ]

이스라엘, 프톨레마이오스 . 셀레우코스 왕조에 약 250년간 지배 받아

 


<사진설명> 알렉산더 대왕 이후 헬라 문명 시대.

우리 몸에서 허리가 담당하는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영생, 천국, 천사, 부활 같은 개념이 중간 시대에 매우 발달하고 또 강조되었다. 무엇보다 유대교라는 거대한 신앙적 기류가 형성되었으며, 그 기류가 가장 왕성할 때 예수 그리스도와 바울이 활동했다.

특히 신약성경에서 복음서나 바울 서신을 해석할 때 중간사적인, 즉 유대교적인 배경이 없으면 그 뜻을 바로 알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말씀 대부분이 유대교적인 배경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중간사 기간에 이스라엘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먼저 알아보자

1)알렉산더 대왕의 헬라제국 시대

헬라문명이 근동지역에 강력한 충격을 가했다. B.C. 333년 앗수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 제국을 연이어 점령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자기가 정복한 나라들에 헬라어를 비롯한 헬라 문화를 심었다. 심지어 인도의 불교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간다라 미술을 낳게 했다. 오늘날 불교의 부처상은 알렉산더의 헬라 예술과 불교 예술이 만나서 생겨난 결과다.

그러나 알렉산더가 B.C. 323년에 갑자기 죽자 거대한 헬라제국은 그의 부하 4명에 의해 분할됐다.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지역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차지하고, 시리아와 바벨론 지역은 셀레우코스가, 비두니와 트리기아 지방은 리시마코스가, 그리고 마케도니아 지방은 카산드로스가 가졌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연이어 셀레우코스 왕조에 약 250년간 지배를 받았다.

B.C. 2세기 후반, 유대인 마카비가 혁명을 일으켜 이스라엘은 셀레우코스 왕조 지배에서 독립하여 하스모니안 왕조를 세웠고 약 100년간 독립했다. 이어 헬라의 두 왕조가 분쟁으로 연약해진 틈을 타서 로마제국이 이들을 점령하였으며 B.C. 63년에 이스라엘도 로마 지배 아래 들어갔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점령한 지 63년 뒤에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했으며 33년 생애 내내 로마가 통치하던 시대에서 활동하였다. 신약성경 곳곳에 로마 군인과 정치인 그리고 로마 화폐와 도량형이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프톨레마이오스 왕조 통치 시대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한 프톨레마이오스 1(B.C. 323~285) 이래로 팔레스타인 지역은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 지역이 대륙을 연결하는 교통 요지였기 때문이다.

셀레우코스 왕조 지도자들도 팔레스타인 지역을 차지하려고 총 네 차례에 걸쳐 전쟁을 일으켰지만 4번 모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승리했다. 그러나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커스 3세가 B.C. 198년에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남침하여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군대를 물리치고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때부터 B.C. 64년에 폼페이가 지휘하는 로마군이 침공하기까지 셀레우코스 왕조에 온갖 박해를 받았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통치 기간에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은 비교적 평화로웠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정치적인 평화와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대제사장에게 맡겼다. 한편, 이때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히브리어를 모르는 유대인을 위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이 탄생했다. 70인역 헬라어 성경은 예수 그리스와 바울 당시에 주로 사용되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0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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