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12-08 13:49:14 ]
인간이 행하는 가장 큰 부끄러움과 고통을 감수하신 것
고대 근동은 물론이고 구약 시대에도 나무에 달아 죽이는 저주스러운 사형 방법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들이 십자가를 저주스러운 죽음의 형틀로 이해하게 된 관념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온 문화 속에 깊이 뿌리박힌 것이다.
첫 번째 예를 들어 보자.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여호수아 장군과 이스라엘 군사들이 작은 아이 성을 공격하는 데 실패했다. 공성에 실패한 원인이 아간의 범죄 때문이었다고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아이 성을 함락시키고 성을 지키던 아이 왕을 잡아서 그냥 죽이지 않고 장대에 달아 죽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성경을 여러 번 읽어도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이유는 유대 문화 코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또 아이 왕을 저녁때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질 때에 명하여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그것이 오늘까지 있더라”(수8:29).
또 다른 기록이 있다.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이 연합하여 기브온을 치려 할 때 여호수가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라고 외치고 승리한 후에 막게다 동굴에 숨어 있던 다섯 왕을 잡아다가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 죽여 다섯 나무에 매어 달고 석양까지 나무에 달린대로 두었다가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하매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리어 그들의 숨었던 굴에 들여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수10:26~27).
이쯤 되면 아마 또 한 사람이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 바로 하만이라는 사람이다. 하만은 바벨론 포로인 유대인들을 죽이고 모르드개를 장대에 달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지만, 오히려 하만 자신이 자기가 준비해 둔 나무에 달려 죽는 이야기가 에스더서에 잘 기록되어 있다.
“왕을 모신 내시 중에 하르보나가 왕에게 아뢰되 왕을 위하여 충성된 말로 고발한 모르드개를 달고자 하여 하만이 고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준비하였는데 이제 그 나무가 하만의 집에 섰나이다 왕이 가로되 하만을 그 나무에 달라 하매 모르드개를 달고자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에7:9~10).
모르드개가 결정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문지기로 있을 때 내시 두 사람이 아하수에로 왕을 모살하려는 음모를 꾸미자, 모르드개가 암살 계획을 전달하여 왕을 구한 공로를 다시 찾았기 때문이었다. 이때 왕을 죽이려다가 발각된 빅단과 데레스라는 내시 두 명 역시 나무에 달려 죽었다.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 지킨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아하수에로왕을 원한하여 모살하려 하거늘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고하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고한지라 사실하여 실정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의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니라”(에2:21~23).
또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벌인 전쟁에서 블레셋 군인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 못 박아 달았지만,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밤에 시체를 가져가서 장사했다는 기록이 사무엘상 31장에 나온다.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의 땅 사방에 보내고 그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의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삼상31:9~11).
그렇다면 왜 고대 근동에서는 죄인을 나무에 달아 죽이거나 시체를 높이 매다는 것을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형벌로 이해했을까? 그 해답이 신명기에 나온다.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21:22~23).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은 하나님께 저주받았다는 사실을 상징하므로 유대인들은 이것을 가장 무서운 형벌로 이해했다. 천벌 받아 죽은 조상으로 각인하게 해 죄인의 후손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다. 이런 수치를 주님께서 당하시고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것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41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