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안과 밖 이야기] 이 세상 삶은 나그네와 같아

등록날짜 [ 2015-02-09 13:04:59 ]

우리의 본향인 하나님 나라로 모든 초점 맞춰야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세계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오늘날에도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않고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이 배 정도는 많다.

1300
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 중에 450만 명만 이스라엘에 살고 나머지는 미국이나 유럽 그리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 이유는 나라가 없어서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유대인의 핏속에 유목민의 기질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나그네로 돌아다니는 삶이 오히려 민족성에 맞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삶은 나그네 기질이 다분한 듯 보인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선 3년간 군복무를 마치면 1년간 또는 수개월간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있다. 게다가 이스라엘 땅이 답답해서 해외로 이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히브리어로 유대교로 개종하다라는 단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나그네가 되다라는 뜻이 된다는 점이다. 즉 유대인이 되는 것은 나그네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며, 충실한 유대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나그네 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유대인들은 세계를 광야같이 생각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곳곳을 누비며 돌아다닌다. 한 유명한 철학자가 현재 이스라엘 나라의 내분과 자멸을 예언하였는데 그 이유를 바로 이 나그네 기질에서 찾았다고 한다. 즉 한 나라에 갇혀서 답답하게 살기 싫어하는 습성 때문에 결국 자기들끼리 내분을 일으키고 또 다시 흩어져 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 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47:9).

야곱이 자기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였는데 바로 나그네의 삶이라는 것이었다. 모세도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는데 이는 거기서() 나그네(게르)가 되었다는 뜻이다. 애굽의 430년 생활이나 바벨론의 70년 생활이 모두 나그네이며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유대인 900만이 나그네로 살고 있다.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가로되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하였더라”(2:22).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고하니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더라”(14:13).

이스라엘 사람을 히브리인이라고 하며, 그들의 언어를 히브리어라고 하고, 그들이 살던 땅을 히브리 땅이라고 했다.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힌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40:15).

그렇다면 히브리라는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 창세기 1021에벨에서 그 뜻을 알 수 있는데, 정확한 번역은 에베르.

셈은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그에게도 자녀가 출생하였으니”(10:21).

에베르는 지나감이나 과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길 것을 선포할 때에 사용한, 강 이편과 저편의 표현에 히브리 민족과 이스라엘 민족은 강을 건너온 백성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종합해 보면, ‘유대인이나 히브리인모두 나그네와 같이 이동하기를 좋아하는 특징이 있다.

성경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기본 문화는 목축 문화, 나그네 문화임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 곳곳에 나그네를 잘 대접하고 보호해 줄 것을 명령한 것도, 너희가 나그네 생활을 했고, 또 지금도 나그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인생은 나그네 길이 맞다. 내일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셔야만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라도 나그네 생활을 접고 본향인 하나님 나라로 다시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때문에 나그네는 항상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또 그러기 위해서는 짐도 가벼워야 한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11:13).

위 글은 교회신문 <422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