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안과 밖 이야기] 예수 그리스도로 얻는 참평안과 안식

등록날짜 [ 2015-04-13 13:29:57 ]

율법을 지키거나 의로운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8~30).

가라사대 화 있을찐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11:46).

예수 그리스도 당시는 유대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수없이 많은 율법을 짊어지고 힘겹게 살아갔다. 물론 이 율법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조항이라기보다 장로와 랍비가 만들어 낸 것이 대부분이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토록 무겁고 힘든 율법이라는 짐을 백성의 어깨에 지어 놓았지만 자신들은 그 짐을 지지 않고 모두 피해 가면서 이를 합리화하는 악을 행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크게 화를 내셨다.

화 있을찐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저희를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11:47).

예수께서는 불쌍한 평신도들에게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라고 초청하시고, “내게 와서 배우면 쉼을 얻고 또 짐이 가벼워질 것이라고 마태복음 1128절에서 위로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을 들은 무리는 정말 짐을 내려놓고 쉼을 얻은 듯한 반응을 보였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7:28~29).

성경에서 멍에를 멘다는 뜻은 시대별로 다소 차이가 있다. 예레미야 시대에는 타 민족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 즉 식민통치를 의미했다. 고대 사회에서는 단순히 동물들에게 걸치는 농기구를 의미했다. 고대 근동에서는 죄수들을 훈련하려고 목과 손목에 멍에를 메는 행위를 뜻했다. 그 후에는 통치와 소유나 섬김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즉 주인과 종, 또는 소유주와 소유물의 관계로 통용한 것이다. 더 후대에는 경제적인 멍에정치적인 멍에를 의미했고, 이것은 곧 지도자의 책임을 뜻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8:32).

예수 당시 통용하던 유대 풍습을 모르면 성경을 우리 식으로 해석하게 되고 그에 따른 부작용과 시행착오는 막대한 피해를 끼친다. 마태복음 1128~30절 말씀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상징하며, 또 짐은 율법의 짐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실마리다. 이 실마리를 잘못 풀면 엉뚱한 해석을 낳고 만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율법이라는 짐에 눌려 죄의 종노릇하는 점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에서, 율법이라는 짐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 즉 율법이 요구하는 죗값은 사망의 짐을 대신 담당하시려고 인류의 죄를 모두 짊어지고 갈보리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셨다. 우리는 예수께서 무거운 율법의 짐을 대신 짊어진 사실을 믿으면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참제자가 돼서 구원받으며, 풍성한 삶, 생명의 삶 그리고 자유의 삶을 살게 된다.

대체로 무거운 짐과 멍에는 인간이 살면서 겪는 문제, 이를 테면, 질병 문제, 자녀 문제, 부부 문제, 경제 문제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성경 말씀이 의미하는 멍에와 짐이 율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15:10).
 
교회 역사상 최초로 열린 공식적인 회의는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회의다. 이 첫 회의의 주제는 예수를 믿게 된 이방인에게 율법을 지키게 해야 하는가?’라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15:1).

이 문제는 교회 역사가 계속되는 한 되풀이될 것이다. 그만큼 기독교에서는 중요한 문제다. 이 토론의 결론은 베드로의 말 한마디로 정리가 된다.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15:11). 그렇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다시 말하면 내가 율법을 지켜서 그 공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43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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