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4-27 13:25:00 ]
중요할수록 인봉을 많이 찍어 보관해 둬
<사진설명> 고레스 칙령이 각인된 원통.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계5:1).
편지의 역사는 인류가 언어를 사용한 역사만큼 오래되었다고 생각한다. 성경에도 수많은 편지가 등장하는데, 특히 신약성경 대부분이 편지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 편지들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편지와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말이다.
두루마리
당시에는 파피루스 가죽 또는 두루마리에 글을 썼다. 글을 다 쓰면 파피루스를 잘 말아 끈으로 단단히 묶고 매듭 쪽에 흙덩어리로 봉한다. 그 흙덩이 위에 글쓴이의 도장을 찍어서 인편으로 편지를 보낸다. 이때 봉인하는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비밀의 급수가 높았다.
성경 속 두루마리는 가죽(양피지, parchment)이나 종이(파피루스, papyrus)를 길게 이어서 문서로 만들고 돌돌 말아서 보관하던 물건(스6:2; 렘36:2,4; 겔3:1~3; 슥5:1~2)이다. 가로와 세로가 각각 약 20~30㎝ 되는 가죽이나 종이를 길게 잇고, 양쪽 끝에 마름대 두 개를 만들어 두루마리를 쉽게 말고 풀 수 있게 했다. 펼친 길이가 짧게는 1m에서 길게는 10m에 이르기도 했다. 대개는 한쪽 면만 사용했지만, 드물게는 양쪽 면을 다 사용하기도 했고(겔2:10;계5:1), 주로 토기 항아리에 보관했다.
두루마리는 대개 율법서(시40:7),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렘36:2,4), 앞날의 일들을 기록한 묵시책(겔2:9)을 가리킨다. 신약성경에서는 구약성경을 일컫는 용어로 ‘두루마리 책’이란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히10:7).
인봉
토지 매매 증서도 편지 형식으로 인봉한 것과 인봉하지 않은 것을 항아리에 담아서 보관했는데, 그 증거가 예레미야서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 주되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고”(렘32:9~10).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인봉하고 인봉치 않은 매매 증서를 취하여 토기에 담아 많은 날 동안 보존케 하라”(렘32:14).
이스라엘 여러 곳에서 다양한 증서나 봉인된 편지가 토기에 담긴 채 무더기로 발굴된다. 특히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곳에 봉인한 편지는 대단한 비밀이 그 편지 속에 들어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요한계시록은 편지의 내용을 끝까지 공개하지 않고 일곱 봉인을 차례로 떼는 과정만 나온다.
현재 이스라엘에서는 우표를 ‘뿔림’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고대 편지의 ‘봉인’을 의미하는 ‘뿔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종이 발명
“고레스 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에 대하여 이르노니 이 전 곧 제사 드리는 처소를 건축하되 지대를 견고히 쌓고 그 전의 고는 육십 규빗으로, 광도 육십 규빗으로 하고”(스6:3).
종이가 발명된 곳은 성서의 땅이 아니라 중국이다. 그러면 종이가 발명되기 전, 즉 고대 사회에서는 문서를 어디에 기록했을까? 고대 근동에서 출토되는 유물 중 점토판이 있다. 즉 진흙으로 점토판을 만들어 그 위에 쐐기 문자로 글을 써서 사용한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페르시아 초대 왕 고레스가 내린 칙령은 종이가 아니라 원통형의 입체 점토판에 기록됐다. 점토판에 칙령을 자세히 기록해 전국에 배포한 것이다.
고대 근동의 여러 유적지에서 대량으로 발견된 점토판에 다양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고, 고고학자들에 의해 기록 내용이 계속 판독된다. 바벨론의 홍수 신화나 길가메시 서사시 같은 글들도 점토판에 기록된 형태로 발굴됐다. 이러한 자료들은 당시의 전쟁이나 갑작스러운 화재로 타서 굳어진 진흙으로 기록된 당시 상태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3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