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안과 밖 이야기]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의미

등록날짜 [ 2015-08-10 11:57:04 ]

부정한 여인으로 보는 시선과 죄의식까지도 감수한 믿음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9:20~21).

겉옷과 하나님의 계명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의 겉옷을 만지고 나은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성서 시대에 사회적 약자로 소외받던 여인이라서 더욱 동정이 가는 데다 예수의 겉옷을 만지기만 해도 나으리라는 여인의 믿음도 대단하고 또 그 믿음대로 불치병이 나은 점도 은혜롭다.

그러나 여인이 부정한 혈루증 환자라는 당시 사회적 편견을 무릅쓰고 무리 앞에 나타나서 예수의 겉옷에 손을 댄 일은 절대 단순하고 가벼운 행동이 아니었다.

혈루증 여인이 예수의 겉옷에 손을 댄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여인은 예수의 겉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자기가 앓던 혈루증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어떻게 갖게 되었을까?

유대인들에게는 겉옷이 특별하고 소중한데, 그 이유는 겉옷 네 귀에 달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겉옷을 지을 때 술을 달라고 지시하셨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옷에 달린 술을 보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계명 안에서 살아가는 계명의 아들임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15:38~40).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의 겉옷에 손을 대려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옷단 술이 가진 특별한 의미를 이해하면 여인의 기이한 행동에 숨어 있는 믿음의 비밀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가는 곳마다 많은 병자가 붐벼 예수의 옷 가에 손을 대면 그 사람들은 모두 나음을 받았다.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6:56). 

전혀 간단하지 않는 믿음의 행위

여인은 예수께 나아오기 위해 몇 가지 장애를 뛰어넘어야 했다.

첫째, 자신을 부정한 자로 보는 뭇사람의 시선이었다. 율법은 여인이 생리 기간에 쏟아 내는 피를 부정하다고 선언한다.

어떤 여인이 유출을 하되 그 유출이 피면 칠일 동안 불결하니 그를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15:19).

혈루증 여인처럼 정상적인 생리 기간이 아닌데도 유출이 있으면 그 기간 내내 부정하게 인식되었다. 결국 여인은 혈루증이 완치되기까지는 사람들과 격리된 상태로 살아야 했다.

여인의 피의 유출이 그 불결기 외에 있어서 여러 날이 간다든지 그 유출이 불결기를 지나든지 하면 그 부정을 유출하는 날 동안은 무릇 그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한즉”(15:25).

둘째, 자신과 접촉하는 모든 사람도 부정하게 된다는 죄의식이었다. 유출이 있는 여인은 자신과 닿는 물건과 사람을 모두 부정하게 했다.

무릇 그 유출이 있는 날 동안에 그의 눕는 침상은 그에게 불결한 때의 침상과 같고 무릇 그의 앉는 모든 자리도 부정함이 불결의 부정과 같으니 이런 것을 만지는 자는 무릇 부정한즉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요”(15:26~27).

혈루증 여인이 무리에 둘러싸인 예수의 겉옷에 손을 대려면, 먼저 무리를 뚫고 나와야 했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부정하게 해야 했다. 간신히 무리를 밀치고 몰래 예수의 겉옷에 손을 댔다고 하자. 그러면 온전하신 예수도 여인 때문에 부정해질 수 있었다.

여인은 이런 장애들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바라보고 나아왔다. 그리고 겨자씨 한 알과 같은 온전한 믿음으로 예수의 겉옷에 손을 댔고 놀랍게도 혈루의 근원이 마르는 치유를 체험했다. 믿음은 이렇게 장애를 뛰어넘는 자의 몫임을 명심해야 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44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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