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안과 밖 이야기] 신발을 벗는 것은 존경의 표시

등록날짜 [ 2015-08-17 13:32:04 ]

때로는 소유권을 나타내는 상징으로도 사용돼


<사진설명> 이스라엘 예수님 당시 신발.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1:26~27).


성서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발을 발을 보호하는 옷으로 인식했다. 오늘날 같은 운동화는 없었고, 지금도 중동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샌들이 성서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발이었다.

샌들은 가죽이나 나무로 발바닥 밑창을 만들고 그 위에 신발끈혹은 신들메라는 끈으로 묶었다. 밖에서는 발을 보호하려고 샌들을 신고, 집 안에서는 맨발로 다녔다. 하지만 종은 밖에서도 맨발로 다녔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은 유산을 두둑이 챙겨 아버지 품을 떠나 먼 나라로 갔지만 결국 모든 것을 탕진하고 종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그가 맨발로 돌아온 모습에서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맨발에 신을 신겨 주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15:22).

집 안에 들어가려고 신을 벗을 때는 신발끈을 풀어야 했는데, 이것 역시 당시에는 종이 하는 일이다.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은 신발끈 푸는 것을 제외하고종이 하는 것처럼 절대적 존경심을 가지고 스승을 섬겼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신발끈을 풀어 드리는 일도 기쁨으로 하겠으며, 더 나아가 그것도 자신에게는 과분한 직분이라고 고백했다. 이처럼 메시아의 길을 예비한 침례 요한은 자신을 철저히 낮추고 메시아만 높였다.

신발끈은 당시 가장 하찮은 물건의 대명사였다. 그 예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 덕분에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그에게서 하찮은 신발끈도 취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14:23).

스스로 신발을 벗는 것은 슬픔과 조의를 표하는 행위였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반역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오자 서둘러 요단 동편으로 피신해야 했다. 이때 다윗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울면서 감람산을 넘었는데, 이는 아들의 반역으로 말미암은 슬픔을 나타낸다.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며 행하고 저와 함께 가는 백성들도 각각 그 머리를 가리우고 울며 올라가니라”(삼하15:30).

몸에서 가장 더러운 부위인 발과 그 발을 보호하는 신발은 더러움의 상징인데, 이러한 신발을 벗는 행위는 상대방을 향한 지극한 존경심을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사자 앞에서 신발을 벗고 경의를 표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3:5).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5:15).

신발은 성경에 여러 모로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때 활동한 선지자로,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의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하는 악행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사마리아의 부자들은 하찮은 신발 한 켤레를 받고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들을 종으로 팔아넘겼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2:6).

재미있는 점은 신발이 때로는 소유권을 나타내는 상징으로도 사용된다는 것이다.

룻기에서 나오미의 기업 무를 자는 자기 권리를 보아스에게 파는 증표로 신발을 건넸다. 이는 자신에게 있는 소유권을 넘긴다는 의미였다.

옛적 이스라엘 중에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하고 그 신을 벗는지라”(4:7~8). 

위 글은 교회신문 <44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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