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10-05 14:36:12 ]
‘꼬불꼬불한 뱀’ ‘악어’ ‘바다 용’도 같은 의미
<사진설명> 리워야단 상상도.
성경에 나오는 가장 포악한 괴물을 들라면 단연 ‘리워야단’을 꼽을 수 있다. 리워야단은 ‘감다’ ‘비틀다’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라와’에서 파생한 단어로 바다에 산다는 거대한 괴물이다. 고대인에게 리워야단은 ‘혼돈’을 의미하는 신화적 동물이었다.
구약성경 원어에는 리워야단이 총 다섯 번 등장하지만, 개역성경에서는 이사야 27장 1절에서만 ‘리워야단’으로 번역했고 나머지는 모두 ‘악어’로 번역했다(욥3:8;41:1, 시74:14;104:26).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사27:1).
성경에는 인간이 쉽게 제압할 수 없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악어’(욥41:1,12; 시104:26), 신화적 괴물인 ‘라합’(욥26:12; 사30:7),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사27:1), ‘바다 괴물’(욥7:12), ‘큰 용’(계12:9)이 언급된다.
욥기 41장에 등장하는 리워야단(악어)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낚시로 낚을 수 없고 끈으로 혀를 맬 수 없다(1절).
2. 줄로 코를 꿸 수 없고 갈고리로 아가미를 꿸 수 없다(2절).
3. 새처럼 길들여서 데리고 놀 수 없고 끈으로 매어 둘 수 없다(5절).
4. 어부들이 상품으로 삼아 흥정하거나 상인들에게 팔 수 없다(6절).
5. 창으로 가죽을 꿰뚫을 수 없고 작살로 머리를 찌를 수 없다(7절).
6. 손으로 한 번 만져만 보아도 그것과 싸울 생각을 못한다(8절).
7. 쳐다보기만 해도 낙담한다(9절).
8. 흥분하면 무척이나 난폭하고 능히 당할 자가 없다(10절).
9. 그것에게 덤벼들고 무사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11절).
10. 아무도 가죽을 벗길 수 없고 아가미 사이로 들어갈 수 없다(13절).
11. 턱을 벌릴 수 없고 빙 둘러 돋은 이빨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14절).
12. 등 비늘이 빽빽하게 짜여 있어서 돌처럼 단단하다(15절).
13. 비늘 하나하나가 이어져서 바람도 그 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16절).
14. 비늘이 연결되어 꽉 달라붙어서 얽힌 데가 떨어지지 않는다(17절).
15. 재채기하면 불빛이 번쩍거리고 눈을 뜰 때 눈꺼풀이 치켜 올라가는 모양이 동이 트는 것과 같다(18절).
16.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똥이 튄다(19절).
17. 콧구멍에서 펑펑 쏟아지는 연기가 끓는 솥과 타는 갈대 연기와 같다(20절).
18. 숨결이 숯불을 피울 만하고 입에서는 불꽃이 나온다(21절).
19. 목에는 억센 힘이 들어 있어서 보는 사람마다 겁에 질리고 만다(22절).
20. 살갗이 견고히 연결되어 꿈쩍도 않는다(23절).
21. 심장이 돌이나 맷돌 아래짝처럼 단단하다(24절).
22. 일어나기만 하면 용사라도 두려워하고 몸부림치는 소리에 기가 꺾인다(25절).
23. 칼을 들이댄다 해도 소용이 없고 창이나 화살이나 표창도 맥을 쓰지 못한다(26절).
24. 쇠도 지푸라기로 여기고 놋은 썩은 나무 정도로 생각한다(27절).
25. 화살로 쏘아도 도망치게 할 수 없고 물매 돌도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여긴다(28절).
26. 몽둥이는 지푸라기쯤으로 생각하고 창이 날아와도 코웃음만 친다(29절).
27. 뱃가죽이 날카로운 질그릇 조각 같아서 타작기가 할퀸 바닥처럼 지나간 흔적을 남긴다(30절).
28. 물에 뛰어들면 깊은 물을 가마솥의 물처럼 끓게 하고 바다를 기름 가마처럼 휘젓는다(31절).
29. 한 번 지나가면 그 자취가 번쩍번쩍 빛을 내어 깊은 바다가 백발을 휘날리는 것처럼 보인다(32절).
30. 땅 위에는 그것과 겨룰 만한 것이 없고 처음부터 겁이 없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33절).
31. 모든 높은 것을 낮게 보고 모든 교만한 것 앞에서 왕 노릇을 한다(34절).
앞에서 보듯이 리워야단은 하나같이 두려운 이방 세력이나 가장 힘세고 악한 존재를 뜻한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강하고 악할지라도 하나님의 권능에 짓밟히고 말 존재에 불과하다(시74:14;사27:1).
위 글은 교회신문 <45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