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10-07 12:28:59 ]
A.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서 십자가라는 모진 고난을 대신 받게 하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처럼 가혹한 방법으로 인간을 구원하셨을까요? 죄 없는 예수께서 왜 이처럼 참혹하게 고난을 당하셔야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죄가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으면 그에 따른 형벌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이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려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죄가 크면 클수록 주님이 대신 받을 고난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죄인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죄의 대가를 치러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게 해야 합니다.
공의(公義)는 하나님의 주요 속성으로, 신앙적 공의와 도덕적 공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신앙적 공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바른 관계를 의미하고 도덕적 공의는 바른 윤리적 삶을 의미합니다.
죄는 바로 이 두 가지를 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바른 관계를 무너뜨리고 인간 사이에 윤리적으로 범한 행위가 죄입니다. 예컨대, 우상숭배가 죄인 까닭은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과 맺어야 할 바른 관계를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공의를 저버리고 죄악에 빠졌을 때 심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는 신앙적·도덕적 죄악에 대한 징벌로 많이 표현되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게 하려면 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의 죗값을 대신 치르려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하게 할 정도의 고난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예수께서 당하신 십자가 고난이 그처럼 참혹한 이유는 우리 인간의 죄악이 그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공의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동시에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은 대속(代贖)의 죽음인데 대속이란 대신 속해 준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가 모두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예수께서 당하신 고통은 인간이 체감하는 육신의 고통이었지요. 사람은 때리면 아프고 먹지 않으면 배고프고 일을 많이 하면 피곤함을 느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이 느끼는 모든 고통을 똑같이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고난은 예수께도 크나큰 고통이 되었습니다.
성부 하나님이 당하신 고통은 사랑하는 독생자가 죄인들에 의해 조롱과 모욕과 십자가 고난을 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심적인 고통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하나님께는 그 누구보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 요한에게서 침례를 받으실 때와 변화산에서 모습이 변화되었을 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마3:17;17:5)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를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예수를 사랑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당신의 외아들이 십자가에서 고난당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어찌 고통을 느끼지 않으셨겠습니까? 이는 실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당하신 고통을 기억하며 신앙생활에 절대 떨어지지 말고 믿음을 굳게 지키는 의리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5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