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12-21 14:37:26 ]
사도 바울을 비롯해 많은 제자가 그리스도인이 돼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행5:34).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행22:3).
율법사들의 스승
사도 바울의 스승 가말리엘은 히브리 원어로 ‘하나님은 나의 보답이시다’라는 뜻이다. 가말리엘은 유대인들의 율법과 유전을 연구하고 체계화하는 ‘교법사’였다(행5:34). 또 산헤드린 공회에서 바리새파를 대표하는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고, 위대한 랍비 ‘힐렐’의 손자며 힐렐 학파의 계승자였다.
가말리엘의 부친은 시므온인데, 성령께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눅2:26)는 지시를 받은 이다. 그 예언대로 아기 예수께서 성전에 드려지려고 왔을 때, 예수를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송했다(눅2:28~32).
어려서부터 학문에 열중한 가말리엘은 조부가 세운 힐렐 학파를 계승했고, 랍비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랍비에게 주는 호칭인 ‘랍반’ 7인 중 한 사람이었다.
<사진설명> 사도행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제사장들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학자들은 가말리엘도 그중에 한 명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가말리엘은 3대째 랍반 가문의 후예로서 문하생 1000여 명을 배출했다. 가말리엘 문하생을 거치지 않고는 주후 1세기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도 바울’도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다(행22:3). 또 전승에 따르면 ‘스데반’과 ‘바나바’도 가말리엘의 제자였다고 한다.
이후에 예수께서 이적을 일으키며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 가말리엘은 점점 예수에게 관심을 보였다. 전승에는 가말리엘이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과 더불어 주님의 숨은 제자라고도 한다.
바리새인이며 산헤드린 공회 의원이던 니고데모는 공회에서 주님을 잡으려는 쟁론을 벌일 때,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요7:51)고 말해 그들의 행위를 은근히 저지했다. 니고데모에게 예수를 따르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말리엘도 니고데모와 같은 마음이었다. 공회에서 사도들을 붙잡아 처형하려고 했을 때 두 사건을 예로 들면서 공회의 결정을 저지했다. 주후 4년경, 드다가 성장을 자랑하다 얼마 후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사실과 주후 6년 갈릴리에서 유다가 백성들을 꾀어 드다 파를 좇다가 결국 멸망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행5:38~39).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감정적이고 선정적으로 기득권의 치리를 옹호할 때 가말리엘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주제를 주입해 흥분을 가라앉혔다.
예수 믿는 제사장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6:7).
이 말씀은 공회 의원 중에도 주님의 제자가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 그리고 가말리엘이라고 추정한다. 그 이유로는 가말리엘이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이었다는 점, 예수의 제자들의 이적과 기사들이 하나님에게 기인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가말리엘은 학문 없는 예수의 제자들이 구약을 인용해 대제사장들에게 변론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능력을 주셨다고 믿었다.
가말리엘은 예루살렘이 파괴되기(주후 70년) 18년 전에 죽었다고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6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