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3-02 00:02:01 ]
성경 속 첫 히브리인 아브라함부터 오늘날까지 쓰여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고하니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자더라”(창14:13).
유대인들은 ‘유대(Jewish)’라는 말보다 ‘히브리(Hebrew)’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유대인 사상은 히브리인 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히브리인’이란 명칭은 창세기 14장 초반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13절에 이르러서야 ‘히브리 사람 아브람’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한다.
히브리인은 ‘강을 건넌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첫 번째 히브리인이었다. 아브라함이 우르에서 하란을 거쳐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가나안이라는 좋은 땅으로 들어갔기에(창11:31), ‘강을 건너온 사람’이라 하여 지금까지도 히브리인이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는 강을 건넌 사람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창12:1~5),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 삼으셨다. 이후 모세를 세워 노예생활로 고통당하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출애굽하게 하시고 히브리 민족을 만민 중에서 구별하셨다(레20:24). 이것이 선민(Chosen)사상, 즉 히브리인의 우월사상이다.
지금은 ‘히브리인’이라는 명칭이 민족의 이름으로 거론되지만, 정작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을 이방인과 구별할 때 외에는 거의 ‘히브리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또 그 당시에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으므로 ‘히브리’라는 명칭은 ‘민족’을 뜻하지 않는다. 개인을 이르는 통칭, 평범하게 말하면 별명이고, ‘다른 편에서 온 사람’, ‘저편에서 온 사람’ 곧 ‘강을 건너온 사람’이란 뜻 외에는 없다.
히브리인에게 이름은 단순히 ‘고유명사’를 뜻하지 않는다. ‘이름’은 사람의 본질이나 그 자체를 담고 있다. 따라서 히브리인은 그런 의미를 충분히 고려해 이름을 짓는다. 예컨대 야곱은 그 성격대로 ‘발뒤꿈치를 잡았다’라는 뜻으로, 에서는 ‘몸이 붉다’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다. 또 베냐민은 고통 중에 낳았으므로 처음에는 ‘슬픔의 아들’이란 뜻의 ‘베노니’라고 불렸다.
신약성경에도 히브리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행6:1).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고후11:22).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빌3:5).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은 곧 ‘히브리인의 하나님’이시다. 광야를 거쳐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온 자들의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세상 사람들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거나 ‘루비콘 강을 건넜다’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이처럼 강을 건넜다는 말은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다. 강을 건넜다면 영역을 바꿨다는 말이다. 강 저편에서 이편으로 건너왔다면 다시 저편으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 애굽과 인연을 끊었다. 하지만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강 저편에 있을 때를 그리워하며 하나님을 원망해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다. 결국 광야에서 40년을 헤맸고, 대다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강을 건넌 자는 그만큼 큰 책임을 진다.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도 강 저편에 있는 세속적인 관심사를 버리고 오직 강 이편에 있는 하늘나라 소망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강을 건너게 한 이를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47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