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안과 밖 이야기] 하나님 뜻과 다른 사람들의 집단

등록날짜 [ 2016-03-14 15:54:09 ]

정치적 이해관계와 신앙의 오해에서 오는 무지

신약성경에는 헤롯당(22:16;3:6), 열심당(6:15), 니골라당(2:6,15)에 대한 기록이 있다. 당시 이들은 어떠한 집단이었는지 알아보자.

헤롯당

헤롯당은 영향력 있고 권세를 가진 자들로, 헤롯 왕을 지지하고 로마에도 호의적이었다. 이들은 유대인의 메시아 운동에 반대하고, 바리새인과 협력해 예수를 가이사에게 불충성하다고 모함했다(22:16;3:6;12:13).

복음서에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만 헤롯당이 등장한다. 헤롯당은 종교집단이 아니라 헤롯 대왕과 정치적 이해관계로 맺어진 정치집단이었다. 그들이 사두개적 기질과 유사한 측면이 있으나 그렇다고 사두개인과 동등한 집단은 아니었다. 복음서에는 헤롯당원이 예수님을 죽일 계획으로 바리새파 사람들과 함께한 것으로 등장한다(3:6). 정치집단인 헤롯당은 현상을 유지하는 종교지도 계급인 바리새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열심당

열심당은 헤롯당과 정반대 사람들로 어떠한 희생 속에도 로마에 대항해 독립할 것을 꿈꾸는 자칭 애국자들이었다. 열심당의 명칭은 헬라어 젤로테스에서 유래했다(6:15;1:13). 이스라엘인 역사가(歷史家) 요세푸스는 이 명칭을 유대 반란(A.D. 66~73) 시 활동한 일파에 한하여 적용했으나, 로마 총독인 쿠이리니우스(Quirinius) (A.D. 6) 갈릴리의 유다가 반역을 일으킨 운동(5:37)을 그 기원으로 보았다.

이 명칭은 예수님의 제자 시몬의 별명으로(10:4;3:18) ‘셀롯당이라고도 불렀다(6:15;1:13). 시몬은 극단적인 애국단체 셀롯당(Zealots) 당원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3:18;6:15).

한편 열심당은 로마에 내는 세금을 회피하였으나 예수님은 다른 태도를 취하였다(12:17). 예수님과 열심당 사이의 결정적 차이는 인간에 대한 태도에 있다. 열심당은 율법을 어기는 자를 엄단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도리라고 믿고 때로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반면,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5:43~48;6:27~28;32~36). 열심당의 광신주의는 A.D. 70년경,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로마 티토 장군의 군대가 파괴하는 전쟁을 초래했다. 열심당의 희생은 그들이 믿는 종말론 때문이었다

니골라당

니골라당은 에베소교회와 버가모교회에 존재했던 이단종파 중 하나다(2:6,15). 니골라당의 창시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 견해는 동방교회 최고의 신학자 중 한 명인 이레나에우스(Irenaeus. A.D. 130~200년경)와 히폴리투스(Hippolytus)의 견해다. 그들은 니골라당 창시자를 예루살렘교회 일곱 집사 중 하나였던 니골라(6:1~6)라고 주장했다. 니골라가 나중에 많은 사람이 자신을 따르자 변질해 이단적인 종파인 니골라당을 창시했다는 것이다.

둘째 견해는 알렉산드리아 신학자였던 클레멘스(Clemens Alxandrinus Titus Flavius A.D. 150~211년경)의 견해다. 예루살렘의 니골라 집사는 본래 엄격한 금욕주의자이기는 했으나 매우 경건한 신자였는데 후에 그의 제자들이 스승의 신앙을 제대로 본받지 아니하고 그의 신학 사상을 잘못 해석하여 변질한 신학 사상을 좇아 생활했다는 것이다.

니골라당은 예루살렘 회의에서 규정한 명령(우상에게 드린 것과 음행을 피해야 할 명령-15:20,29)을 거역하고 그러한 것들에서 자유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비윤리적.비도덕적 신앙에 빠졌다.

전승에 따르면, 그들은 우상의 제물을 함부로 먹었고, 문란한 성적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전혀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중세 시대에 사제들의 독신주의를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들이 결혼한 사제들을 비웃어 니골라당이라고 불렀다.

요한은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니골라당을 책망했고, 버가모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는 니골라당이 발람과 같은 방식(24:1~25;31:16)으로 가르친다고 정죄했다(2:6,15). 니골라당은 별로 위세를 떨치지 못하다 2세기 후반에 이르러 자취를 감췄다.

위 글은 교회신문 <47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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