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4-04 14:20:23 ]
주후 70년 로마에 멸망당해 역사에서 사라져
<사진설명> 에돔 족속이 살았던 페트라 지역(오늘날 요르단).
'에돔 족속’ 하면 유명한 산악도시인 ‘페트라’가 떠오른다. 페트라는 전반적으로 붉은 바위로 된 협곡인데 바위를 뚫고 집과 신전을 짓고 무덤도 만들어 오랜 세월 그곳에서 거했다.
주전 3세기경 에돔 족속은 동서양 무역사업을 활발히 진행해 많은 부를 축적했다. 나바테안 상인 집단을 형성했고, 무역업을 하면서 기른 안목으로 자기들의 거주지에 투자했다. 그 덕분에 ‘페트라 폴리스’나 여러 화려한 건축물을 페트라에 지었고, 에돔 족속은 그곳에서 풍요롭게 살았다.
“에서 곧 에돔의 대략이 이러하니라”(창36:1).
창세기 36장은 에돔 족속의 기원을 알려 준다. 에돔 족속의 최초 조상은 이삭의 아들이자 야곱의 형인 ‘에서’다. 성경은 에돔 자손이 어떻게 대를 이어 내려왔는지 상세히 기록한다.
‘에서’는 세일 산에 거했다(창36:8). ‘에서’와 ‘에돔’은 모두 ‘붉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에서’라는 이름은 털이 많고 피부가 붉어서 지은 것이다. 세일 산도 붉은색을 짙게 띠고 있다. 학자들은 에서가 자기 피부색과 같은 세일 산을 좋아해 그곳에 터전을 잡았다고 추측한다.
에서의 후손은 세일 산에 인접해 살던 호리 족속과 섞여 에돔 족속을 이루었다. 에서와 그의 가족은 세일 땅 일대에 정착해 세일 땅의 원주민들과 호리 족을 점령한 후, 강력한 에돔 왕국을 건설했다.
에돔 족속이 하나님을 쉽게 떠날 수 있었던 까닭은 하나님을 모르는 원주민들과 동화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들만의 왕을 세워 지배층과 피지배층 계급사회를 형성했다. 성경에 약속의 자녀가 아닌 에돔 족속 이야기를 기록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고자 하는 분명한 뜻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 속 야곱과 에서의 자손 간에 계속 투쟁이 벌어졌다. 하나님께서 에서와 그의 자손에게 사랑을 표현했지만, 에서의 후손 에돔 족속은 하나님의 이스라엘 민족을 족족 방해했다.
에서의 후손 중에 아말렉이 등장한다. 그는 에돔 족속 중 하나인 아말렉 족속을 형성했다. 아말렉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빠져나와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가장 강력하게 막아섰다. 그때 모세는 아론과 훌의 도움을 받아 기도로 물리쳤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입성할 당시에는 에돔과 무력으로 충돌하지 않았지만, 사울 왕 때에 이르러 잦은 충돌을 겪었다. 그러다가 다윗이 에돔을 완전히 정복하고, 그 땅에 이스라엘 수비대를 세운다. 하지만 그 후에도 에돔 용사 몇몇이 역사 속에서 계속 이어 내려져 온다.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남유다 여호사밧과 동맹을 맺었다. 암몬과 모압 족속이 연맹해 남유다를 침공했지만 실패했다(대하20:1). 주전 604년에는 바벨론에 종주권을 수락했고, 주전 586년 유다가 멸망할 때 에돔은 바벨론과 동맹관계에 있었다. 이후 에돔은 남부 유다의 헤브론까지 점령해 수도로 삼았으나 얼마 되지 않아 나바테안인에 의해 황폐해졌다.
야곱과 에서 자손 간에 벌인 투쟁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에 절정을 이룬다. 헤롯 왕은 유대 남쪽에 인접한 이두메아 출신인데, 이 이두메아에 에돔 족속이 거주했다. 즉 헤롯 왕은 에돔 족속 출신이었다. 에서가 야곱을 괴롭힌 것처럼, 에돔 족속이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힌 것처럼, 헤롯 왕은 예수님을 괴롭혔다. 에서와 야곱의 악연이 자손들에게도 이어진 것이다.
에돔 족속은 유다의 마카비 독립 때 유다에게 점령당한 후 이두멜로 편입했다. 이어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 때 로마에 멸망해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그 후손도 사랑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과 열방이 하나님 품 안에서 살기를 소망하신다. 성경에는 그들이 주님께 돌아온다면 얼마든지 약속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리라는 뜻이 담겨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7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