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5-03 12:15:06 ]
A. 어느 날 아브람이 하나님께 제사를 지냅니다. 창세기 15장 9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어다” 하시면서 아브람에게 제사를 요구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짐승을 취해 그 중간을 쪼개 마주 대하게 하고, 새는 쪼개지 않은 채 제사를 준비했습니다. 짐승의 고기를 본 솔개들이 제물에 달려드는 것을 막으려고 쫓으면서 아브람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곤해 깊이 잠든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15:13~14).
해가 지고 어두울 때,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었습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고대(古代) 근동(近東)에서는 협약 체결 방식으로 짐승을 쪼개어 놓고 그 사이로 지나갔다고 합니다. 계약을 위반한 경우, 짐승을 쪼갠 것과 같은 참혹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창대한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절대 파기하지 못할 약속을 거듭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약속하시고도 사백 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이스라엘 자손이 고통당하게 하셨을까요?
결론을 먼저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고통을 주는 분이 아니십니다. 고난과 고통은 바로 아브람이 새를 쪼개지 않은 죄에서 온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그에 상응하는 값을 치러야만 합니다. 그 값이 바로 종살이였습니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사백 년이란 긴 세월 동안 아브람의 후손을 애굽 노예로 삼으시겠다는 하나님 말씀은 매우 불합리한 처사로 보입니다. ‘민족’을 이룰 것과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직후에 하신 말씀일 뿐만 아니라, 선민을 고난 중에 두겠다는 조처를 납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의 때를 지낸 후, 더 풍부한 물질을 얻어 가나안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하나님 약속을 보면 그러한 조처는 저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14절에서 분명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고 하셨고, 신명기 8장 15~16절에서는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더 큰 복을 받게 하려고 준비하는 과정으로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경륜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고난’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연단의 과정이고 이 과정을 통과할 때 더 큰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택하신 자들이 온상에서 자란 여린 나무가 아니라 어떤 세파도 당당하게 이길 능력의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런 이유로 사랑하시면서도 기꺼이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자손에게 사백 년간 고난을 주신 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고난의 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그런 고난이 닥쳤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큰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7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