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5-16 12:57:04 ]
수많은 요직 독차지하며 특권의식으로 가득 차
이스라엘 사회 지도층은 신구약 중간 시대에 여러 변화를 겪었다. 권력은 바벨론 회복기 때 주도적 역할을 한 제사장에서 율법학자층으로 이동했다.
율법학자들은 주전 2세기 이후 새롭게 부상했다. 이들은 정부의 재판기구와 교육기구에서 가르칠 특권을 부여받았다. 또 이들은 평민이면서도 혈통을 앞세운 사제 계급과 함께 이스라엘 최고 사법기관인 산헤드린 재판관에 선임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이었다.
이 외에도 공공단체에서 장로, 회당장, 재판관을 임명할 때, 율법학자와 일반인이 동시에 입후보한다면 율법학자를 우선으로 선출했다. 또 1세기 당시에 율법학자들은 이미 사제 계급이 독차지했던 수많은 요직을 상당 부분 잠식했다.
율법학자들은 국민 대다수에게 높은 신뢰와 명망을 얻었다. 전국 수많은 젊은이가 율법 강해를 듣고자 했고 유명한 문파에 들고자 노력했다. 바울도 가말리엘 문파에서 공부했다. 율법학자들은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도 예우와 존경을 받았다. ‘으뜸가는 자’ ‘랍비’ ‘아버지’ ‘주’라는 칭호를 들으면서 인사를 받았다. 예루살렘 상류사회에서 연회를 열면 으레 최고 상석으로 안내되었다.
율법학자의 직업
복음서에서는 율법학자, 바리새인, 서기관이란 용어를 특별한 구분 없이 혼용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다른 복음서에 등장하지 않고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비유 자체는 다른 복음서에 병행 구절이 없지만, 그 도입부에 해당하는 말씀(눅10:25 ~28)은 마태복음(마22:34~40)과 마가복음(막12:28~34)에 병행 구절로 등장한다.
세 복음서 병행 구절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율법학자’가 마태복음에는 ‘바리새인 중 율법사’로, 마가복음에는 ‘서기관’으로 등장한다. 결국 이 세 가지 용어를 혼용해서 썼다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율법학자는 바리새인파와 사두개파 중 대부분 바리새파에 속했다. 전통적인 사제 계급이 사두개파에 속했다면, 신흥세력인 율법학자들은 바리새파 노선에 속했다.
율법학자들은 제자들을 가르치더라도 수업료를 받지 않았다.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따로 직업을 가졌다. 율법학자는 주로 전문기술을 요구하는 수공업에 종사했는데, 이스라엘 사회에서 수공업은 좋은 직업으로 인식되었다. 율법학자인 사도 바울도 천막 제조공(행18:3)이라는 수공업을 익혀 생활했다. 예수님도 당대 율법학자로서 아버지 요셉에게서 대를 이어 전수받은 목수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율법학자들은 서기관 직업을 선호했다. 서기관은 성경을 필사하는 직종이다. 헬라어나 히브리어는 점 하나만 잘못 찍어도 의미가 달라진다. 따라서 공부를 많이 한 학자나 똑똑한 사람들이 서기관을 했다. 이들은 법률 전문가이기도 했고 율법을 해석하기도 했다. 상당한 지위에 올랐고, 보수도 일반인에 비해서 좋았다.
율법학자와 구전율법
묵시문학이 신구약 중간 시대에 성행했다. 율법자들은 그들의 지식을 이용해 하늘나라에 대한 비밀을 은밀히 나누는 것을 특권의식으로 삼았다. 니고데모가 밤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온 것도 이러한 이유라고 추측한다.
하나님과 창조에 속한 비밀뿐 아니라 구전 율법(장로들의 유전, 마15:2;막7:3) 역시 넓은 의미에서는 신비적 전승에 해당한다. 구전 율법은 모세오경에 기록한 성문 율법 613개를 당시 율법학자들이 구체적으로 해석한 것을 가리킨다. 율법학자들은 회당에서 구전 율법으로 강의했지만 이러한 가르침을 하나님의 비밀로 여겨 대중에게는 문서로 유포되지 못하게 철저히 금지했다. 스승의 가르침은 제자들에 의해 구전으로 전승되었으므로 이것을 구전 율법이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구약성경으로 알려진 거룩한 문서들도 당시 대중은 문서로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당시 대중의 언어가 아람어였어도 구약성경은 거룩한 언어인 히브리어로 쓰였다. 율법학자들은 구약성경의 아람어 번역본이 유포되지 못하게 했다.
하나님 창조의 신비와 구전 율법, 나아가 성경 본문을 다루는 그들은 말라기 이후에 끊어진 선지자의 상속자요, 후계자로 인정받는 단체였다. 율법학자들이 누리던 생전의 영광은 사후까지 이어져서 그들은 선지자의 무덤에 묻혔다.
위 글은 교회신문 <48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