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6-20 14:32:31 ]
주님께서 주시는 믿음으로 흔들림 없어야
<사진설명> 선악과.
성경을 처음 읽는 사람이나 기독교 신앙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첫 질문은 대부분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에 관한 것이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라는 말씀(창2:16~17)에 나오는 나무와 열매다.
그들은 ‘왜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열매를 있게 하셨느냐’고 질문한다. 사람들이 그 열매를 따 먹을 줄 분명히 아신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있게 하셨다면, 이미 타락을 전제한 뒤 인간을 창조하신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그 열매를 두신 이유는 첫째, 선악과를 통하여 인간에게 선택할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판단에 따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창조하셨다. 인간이 로봇처럼 아무런 의지 없이 하나님에게 조종당하는 피조물이 아니라, 인격을 가진 의지인으로서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기를 원하셨다. 그런 판단 능력을 사용하도록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두신 것이다.
둘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그 열매를 두어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것은 방종이 아니라 진정한 자유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가지를 금하심으로써 인간이 하나님께 복종해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깨닫기를 원하셨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잘못된 욕심까지 향유하는 자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제한하신 바른 자유만을 누릴 수 있음을 보이신 것이다.
셋째, 하나님은 인간을 노예나 의식 없는 피조물로 만드신 것이 아니다. 인격이 있고 하나님과 교감을 나눌 사랑의 대상으로 만드셨다. 사랑이란 신실하게 상대를 선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사랑의 대상이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판단해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가 사랑의 중요한 행위다.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인격을 가진 사랑의 대상으로 인간을 원하셔서 그 열매를 있게 하신 것이다. 동산 안에는 각종 나무가 있어 충분히 먹고 누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잘못된 욕심과 판단으로 인격적인 사랑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진정한 자유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방종하여 그 열매를 먹음으로써 그 죗값으로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대로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사단이 사람에게 심어 준 것은 ‘부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게 한 것이다. 에덴에서 하와를 의심하게 하는 데 성공한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게도 감히 ‘의심’을 심어 주려 했다.
사단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예수님이 돌을 떡으로 바꾸실 수 있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도 사실 분임을 알았다. 사단은 알면서도 시험한다. 부정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전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하려는 것이다.
사단은 우리 삶에 일어나는 일상을 가지고 의심하게 하는 전략을 펼친다. 그 공격은 끊이지 않는다.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겠니?’라고 흔들거나 ‘하나님이 너를 버리셨으니 이런 일이 일어나도 상관하지 않으시는 거야’라며 우리 안에 하나님을 의심하는 마음을 심어서 계속 공략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죄를 즐기려는 마음이 있다. 죄가 고난이라면 사람들은 죄에 달려들지 않을 것이다. 죄가 사람에게 쾌락을 주기에 죄에 달려든다. ‘내가 이것을 끊으면 무슨 재미로 사나’라는 마음이 있다.
신앙생활의 성공은 죄를 얼마나 이겨내느냐에 달려 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거룩함에서 시작한다. 매일 죄를 짓고 그것에 속해도, 자포자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이기려 노력해야 한다.
위 글은 교회신문 <48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