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8-16 11:26:07 ]
A.성경에 ‘담배’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담배가 유럽에 전래된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콜럼버스가 1492년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고, 그때 인디언들이 즐기던 담배를 유럽에 전파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주후 1세기경에 완성된 성경에는 ‘담배’와 관련된 구절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에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구절이 없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묵시적으로 금연할 것을 권고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에서 말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사도 바울은 우리 ‘몸’이 거룩한 성령께서 거할 ‘집’이라고 말하면서 금연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를 말합니다. 또 담배는 인체에 백해무익(百害無益)합니다. 만일 담배가 우리 인체에 이롭고 해될 것이 없다면 금연하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담배는 성령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전이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우리 몸을 병들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몸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로 거듭났다면 자기 육신의 때를 사용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금주하고 금연해서 자기 몸을 소중히 간직하고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시게 해야 합니다.
또 신앙인은 경건해야 합니다. 담배나 술은 경건한 신앙생활을 방해합니다. 사실 담배나 술에 절어서 사는 사람 치고 경건하게 신앙생활 하는 이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야고보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7).
담배는 세속적이고 세상 쾌락을 추구하는 물질입니다. 경건한 신앙인은 마땅히 담배를 멀리해야 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기독교에서 금주와 금연을 권하는 것은 서양 선교사들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서양 선교사들은, 한국인이 음주 탓에 신앙생활을 방해받는다는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포악하게 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술을 마신 후 주정을 부리거나 난폭하게 행동하면 전도하는 데도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따라서 서양 선교사들은 전도와 신앙생활의 경건을 위해 금주할 것을 신앙윤리로 규정했습니다. 금연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결정되었습니다. 탁월하고 현명한 결정이었습니다.
경건한 신앙심을 지닌 사람은 술과 담배를 일절 입에 대지 않습니다. ‘술 한 잔 정도야’ ‘담배 한 개비 정도야.’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술과 담배는 신앙을 망칠 뿐 아니라 그의 인생도 망칩니다.
건강을 망치는 담배는 강한 중독성 탓에 끊고 싶어도 끊기 어렵습니다. 그뿐 아니라 담배를 사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담배는 신앙 여부를 떠나 끊는 것이 유익합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삶의 일대 전환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교회에 다닌다거나 성경을 아는 것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직접 ‘경험’해야 합니다.
흔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다른 말로 ‘주님을 영접했다’고 표현합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게 한다는 뜻입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 어찌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경건한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인 자기 몸을 거룩하게 보존해야 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49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