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3-01-10 10:34:02 ]
구약성경은 그 형태에 따라 역사서, 시가서, 선지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선지서는 대선지서(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와 소선지서(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로 나눕니다. 대·소선지서는 예언서를 기록한 선지자의 사역 기간이나 메시지의 중요도에 따라 나눈 것은 아니고 얼마나 많은 분량을 성경에 기록하였느냐에 따라 구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신정국가, 즉 하나님이 세운 자들을 통해 직접 통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주변국들이 왕을 세우다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도 왕을 요구하게 되었고, 결국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해 사울을 초대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 이후로 이스라엘의 왕정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 중에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인본주의를 따르고 우상숭배 죄를 범하는 악한 왕이 많아졌습니다. 그러한 왕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견제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말씀으로 올바르게 인도하고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세우셨습니다. 특히 소선지서를 기록한 때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망해가던 시기여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되었다고 선지자들이 계속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호세아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호1:1). 선지서 처음을 보면 선지서를 기록한 선지자의 출신 배경과 사역 시기를 알 수 있습니다. 호세아서 1장 1절에도 호세아에 대해 간략하게 나와 있습니다.
또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라는 유다 왕의 이름과 여로보암이라는 이스라엘 왕의 이름이 나옵니다. 같은 이스라엘이면서도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어 남유다, 북이스라엘이라고 부르던 시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통일 왕국을 이룬 다윗이 죽은 후 그 아들 솔로몬이 왕위를 이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 과정에서 백성을 심히 힘들게 해서 원성이 아주 높았고, 솔로몬의 뒤를 이은 르호보암 역시 부친 솔로몬보다 더 강하게 성전 건축을 강행합니다. 이에 반대해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10지파가 분열해 북이스라엘을 세우게 되면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졌고, 분열 당시 남유다 왕은 르호보암이었고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은 여로보암이었습니다.
호세아서에는 여로보암이 두 명 나옵니다. 1장 1절의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은 여로보암 2세를 말합니다. 여로보암 2세가 여로보암의 직계 혈통은 아니지만, 북이스라엘 초대 왕의 뒤를 따르겠다는 각오로 이름을 여로보암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왕인 여로보암 2세의 통치가 끝나갈 무렵인 B.C. 750년부터 남유다의 왕 히스기야의 통치가 시작될 무렵인 B.C. 710년까지 30~40년 동안 사역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계속>
/장항진 목사(도서출판국)
위 글은 교회신문 <78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