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4-06-17 15:02:26 ]
호세아서 4장 15절에는 “이스라엘아 너는 행음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우상숭배 하며 그들의 마음을 빼앗기고 하나님 앞에 행음하고 있는데, 남유다마저 그런 북이스라엘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호세아 당시 북이스라엘은 영적으로 타락했지만 물질적으로는 어느 때보다 부유하고 가장 번영을 누리던 시기였습니다. 국력이 강성해지고 물질의 부유가 넘치니 남유다도 부러워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아 너는 행음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할 것”이라며 유다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손을 쓰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 유다는 부러워하지 말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북이스라엘처럼 죄를 범치 말라’는 당부입니다.
오늘날도 같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데도 물질의 부유가 넘쳐 나는 이를 보며 부러워합니다. 심지어 믿지 않는 자가 누리는 부유를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가치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속죄함받은 은혜, 영원한 천국이라는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신령한 복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어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벧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길갈과 벧아웬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사건이 있었던 이스라엘에게 아주 중요한 장소입니다.
먼저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해서 요단강을 건넌 후 맨 처음 진을 친 곳입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를 받았고, 또 유월절을 지키면서 새로운 출발을 하나님 앞에 약속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을 세운 곳이 길갈이요, 엘리야 시대에 선지 학교를 세워 많은 선지자를 양성한 곳도 길갈입니다.
‘벧아웬’은 ‘벧엘’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벧엘을 벧아웬으로 바꿔 부르신 것입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고 ‘벧아웬’은 우상의 집이라는 말인데, 하나님께서 벧엘을 벧아웬으로 부른 것은 하나님의 집이 우상의 집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벧엘은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자던 중 하나님에게서 축복의 약속을 받은 곳입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이 분리되면서 여로보암 1세가 금송아지 상을 세워 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장소 역시 벧엘이었습니다. 축복의 장소가 우상숭배 하며 타락한 장소가 되었으니 벧엘을 ‘벧아웬’ 곧 우상의 집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중요한 역사가 일어난 곳이 이제 우상의 집으로 바뀌었기에 길갈과 벧아웬으로 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절 마지막에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찌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맹세는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이미 여호와라는 이름이 바알을 비롯한 그 당시 수많은 다른 신의 이름과 혼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망령되게 일컬어지는 시대였기에 그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장항진 목사(동탄연세중앙교회)
*유튜브 채널 ‘소금창고’에서 방송한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5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