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칼럼] 시련의 불꽃에서 빚어진 믿음

등록날짜 [ 2025-06-18 13:14:58 ]

존 번연의 삶은 무척 고통스러웠으나

하나님께 쓰임받을 정결한 도구로서

빚어질 기회였다는 교훈을 전해 줘


1628년 잉글랜드 베드퍼드셔주의 가난한 마을 엘스토우, 한 주석 세공인의 가정에서 존 번연(1628~1688)이 태어났다. 당시 잉글랜드는 찰스 1세의 통치 아래 정치적·종교적으로 혼란스러웠고, 청교도와 국교도 사이의 갈등 역시 고조되었다. 번연의 가정은 궁핍했고, 그가 받은 정규 교육은 기본적인 읽기와 쓰기가 전부였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에게서 세공 기술을 배웠지만, 내면에는 영적 갈증과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16세 무렵인 1644년, 번연은 의회군에 입대하여 영국 내전에 참전했다. 이 시기에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했다. 한 전우가 자원하여 번연 대신 보초를 서다가 총에 맞아 즉사한 것이다. 이 사건은 그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고, 그는 이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해석했다. 그럼에도 번연의 내면에는 진정한 회심의 불꽃이 타오르지 않았고, 여전히 세상적인 쾌락과 죄악 가운데 살았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악몽에 때때로 시달리기도 했다.


영혼의 갈등과 회심의 여정

20세가 되었을 즈음, 번연은 경건한 가정에서 자란 한 여성과 결혼했다. 가난한 그녀가 가져온 유일한 지참금은 신앙서적 두 권, 『경건의 실천』과 『가난한 자의 영혼에게』였다. 이 책들은 번연의 영적 각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아내의 경건한 삶도 그의 마음에 신앙의 씨앗을 심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651년경, 번연이 시장에서 가난한 여인들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을 때 찾아왔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기쁨과 평안 그리고 죄에서 자유를 얻었다는 대화를 나눴다. 번연은 자서전에서 이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들의 얼굴에서 천국의 빛이 빛나는 것 같았고, 그들의 말에는 내가 결코 들어 보지 못한 은혜가 있었다.” 이 경험은 번연으로 하여금 존 기퍼드(John Gifford) 목사가 이끄는 베드퍼드의 비국교도 모임에 참석하도록 했다.


이후 번연의 회심 과정은 수년 동안 극심한 영적 투쟁을 동반했다. 약 3년 동안 그는 구원의 확신을 얻고자 고뇌했다. 사단의 유혹과 공격, 자신의 죄성에 대한 깊은 자각,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그를 괴롭혔다. 특히 ‘지난날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지었다’, ‘나는 이미 그리스도를 팔았다’는 자책 탓에 심한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마침내 1653년, 그는 골로새서의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골1:20)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구원의 확신을 얻었다. 번연은 그 순간을 “마치 내 영혼이 사슬에서 풀려나 천국의 기쁨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라고 고백했다.


시련의 불꽃 속에서 단련됨

회심 후 번연은 베드퍼드 교회의 집사로서 충성했고, 1656년에는 공식 설교자로 인정받았다. 그의 설교는 자신의 영적 경험과 성경에 대한 직관적 이해를 바탕으로 했다. 복잡한 신학 용어 대신 일상의 언어와 생생한 비유를 사용해 복음을 전했고, 이로써 교육받지 못한 일반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1660년, 국교(성공회)만 인정하던 찰스 2세의 왕정복고와 함께 비국교도들은 탄압을 받았다. 1660년 11월, 번연은 허가 없이 집회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다. 담당 판사는 그가 설교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하면 석방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번연은 단호히 거절했다. “만약 오늘 석방되어도 내일 다시 거리로 나가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저는 감옥에 묻히는 것이 낫습니다.” 그의 대답은 그리스도를 향한 절대적 신실함을 잘 보여 준다.


결국 번연은 12년(1660~1672)이라는 긴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내야 했다. 이 시기는 그에게 엄청난 시련이었다. 첫 아내는 투옥 초기에 사망했고, 네 자녀 중 첫째 딸 메리는 맹인으로 태어나 특별한 돌봄이 필요했다. 물질적 어려움도 컸다. 번연은 감옥에서 구두끈을 만들어 가족의 생계를 돕고자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고난의 시간을 통해 번연을 더욱 정결하게 빚어 가셨다. 감옥에서 그는 성경을 더욱 깊이 묵상했으며 다른 수감자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또 이 기간에 문학적 재능을 꽃피워 자신의 영적 여정을 담은 자서전 『풍성한 은혜』를 집필했고 여러 가지 저술 활동도 이어 갔다.


감옥에서 보낸 12년은 번연에게 ‘영적 사막’이 아니라 ‘영혼의 대학’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투옥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감옥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토록 깊이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시련은 축복의 통로였다.” 실제로 그의 영향력 있는 작품들의 씨앗은 이 투옥 기간에 뿌려졌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쓰임받아

1672년 찰스 2세의 면죄령에 따라 번연은 석방되고 비국교도 교회의 목사로 임명되었지만, 3년 후 다시 탄압이 시작되면서 번연은 또다시 6개월간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이 두 번째 투옥 기간에 그는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 제1부를 집필했다. 크리스천이라는 순례자가 멸망의 도시에서 천국의 도시로 여행하는 과정을 그렸으며, 번연 자신의 영적 여정과 박해받던 신자들의 경험을 반영하였다. 1678년 출판된 『천로역정』은 대중적 인기를 얻었고,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기독교 서적이 되었다. 


<사진설명> 감옥에서 『천로역정』을 쓰고 있는 존 번연. 1910년에 그려진 삽화.


석방 후 번연은 ‘순례자의 아버지’로 불리며 영국 전역에서 설교 활동을 펼쳤다. 런던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그의 설교를 들으려고 수천 명이 모였다. 그는 책을 총 60여 권 저술했으며, 여러 작품을 통해 깊은 영적 통찰력을 나누었다.


1688년 8월, 번연은 런던으로 가는 여정 중 열병에 걸렸고, 며칠 후인 8월 31일 6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말은 “나를 받으시고 무한한 기쁨 가운데 당신의 아들을 보게 해 주실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하라”였다.


번연의 삶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설을 보여 준다. 교육받지 못한 가난한 주석 세공인이던 그는 인간적 관점에서는 가장 연약한 그릇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약함을 통해 당신의 강함을 드러내셨다. 번연의 12년간의 투옥을 비롯해 그가 경험한 깊은 영적 고뇌와 시련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서 그를 더욱 순수하고 유용한 도구로 빚어 가는 과정이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1:27) 말씀은 번연의 삶에서 생생하게 드러났다. 오늘날 우리는 존 번연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약함과 고난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지, 그리고 시련의 불꽃이 어떻게 믿음의 순금을 정련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교육 수준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닌 우리의 순종과 신실함을 보신다. 고난과 시련은 우리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련하려는 것이다. 진정한 영적 열매는 종종 가장 깊은 고통의 시간 이후에 맺힌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시련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소망과 확신을 존 번연의 삶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904호> 기사입니다.


정한영 안수집사

신문발행국


이 기자의 다른 뉴스 보기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