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5-06-25 14:03:52 ]
1950년 6월 25일 4시경, 평화로운 주일 새벽에 북한의 기습 남침이 시작되었습니다. 북한군은 소련제 탱크와 전투기로 무장한 채 38선을 넘어 남하했고, 불과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을 함락하고 말았습니다. 국군은 뚜렷한 방어선도 갖추지 못한 채 급속히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 군은 농번기를 맞아 병력 다수가 휴가 중이었고, 전차나 전투기 같은 현대식 장비도 없어 무방비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6·25전쟁은 단순한 국지적 충돌이 아니라, 오랜 시간 준비된 공산 진영의 침략이었습니다. 김일성은 소련 블라디보스토크의 장교 출신이며, 해방 이후 소련군과 함께 평양에 입성하였습니다. 1946년 2월, 그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에 오르며 사실상 북한의 지도자가 되었고, 이후 남한의 공산화 통일을 정치적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는 북한을 공산 국가 체제로 빠르게 정비하였고, 남한 정부를 ‘미국의 괴뢰(꼭두각시)’라 규정하며 무력통일을 정당화했습니다. 1949년부터는 소련의 스탈린에게 남침을 요청했습니다. 처음에는 거절당했으나 1949년 중국의 공산화와 미국의 외교 정책 변화 등 국제 정세의 흐름이 바뀌면서 기회를 잡았습니다. 결정적으로, 소련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 후 스탈린은 전쟁을 승인했고 전쟁에서 승리하면 남한을 흡수 통일하라는 지시까지 내렸습니다. 바로 그렇게 시작된 것이 6·25전쟁이었습니다.
이 같은 공산 진영의 거대한 야욕에도, 대한민국은 끝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총탄과 불길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한 줄기 빛이 있었으니, 바로 믿음의 사람들의 기도였습니다.
수많은 교회가 나라를 위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피난길에도 무너진 예배당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특히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전국 교회에 금식기도를 요청했고, 이에 수많은 성도가 밤낮으로 “나라를 살려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당시 폐허가 된 교회에서 들려오던 기도 소리는 민족의 숨결이자,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공산군에게 끌려가면서도 “자손들이 복음을 마음껏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 순교자들의 간절한 음성은 오늘날 대한민국에 하나님의 응답으로 실현되었습니다.
결국, 대한민국은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수많은 나라가 공산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지만, 한국은 끝내 자유를 지켜냈습니다. 그 배경에는 UN군의 군사적 개입과 국제사회의 도움 그리고 그에 앞서 수많은 신앙인들의 기도와 눈물이 있었습니다. 그 기도가 하늘을 움직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특별히 1950년 9월 15일에 펼쳐진 인천상륙작전은 전세를 단숨에 뒤집은 기적의 작전이었습니다. 유엔군은 인천에 상륙해 북한군의 보급선을 끊고 서울을 탈환했습니다. 당시 인천항은 밀물과 썰물의 차가 겨우 7~9미터밖에 안 되어 군사 작전이 거의 불가능한 지역이었습니다. 맥아더 장군조차 “성공 확률이 5천분의 1”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작전은 완벽히 성공했고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되찾으며 전세를 뒤집었습니다. 이 작전을 앞두고 한국교회와 해외 기독교 단체들은 금식기도를 이어갔고, 많은 이가 이를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고백합니다.
전쟁은 분명 비극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신앙의 승리와 하나님의 섭리를 보았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피로 지켜낸 희생이며, 기도로 지켜낸 신앙의 유산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전쟁을 겪은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자유는 물려받은 유산이지만, 지켜내지 않으면 언제든 잃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입니다.
우리는 다시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게 하소서. 우리 후손들이 진실을 바로 알고, 자유와 평화를 굳건히 지켜나가게 하소서.”
6·25전쟁은 과거의 깊은 상처이지만, 지금도 우리에게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의 교훈입니다. 잊지 맙시다. 기억합시다. 지킵시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진실을. 그리고 이 나라의 대통령과 위정자들을 위해 늘 기도합시다. 자유 대한민국의 가치를 굳건히 지켜나가도록 기도하는 연세 가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90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