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등록날짜 [ 2025-10-01 10:16:34 ]

청년 시절, 껄끄러운 기억으로 얽힌 이가 한 명 있었다. 경솔한 그의 말과 행동이 고역스럽고, 같이 심방하거나 전도할 때도 자꾸 헛말을 반복하는 게 주의 일에 걸림돌처럼 느껴졌다. ‘이럴 거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며 같이 충성하기를 꺼려 하고, 무슨 일이든 은근히 그를 배제하려고 했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믿음의 가정을 꾸린 후 부서가 다르다 보니 마주칠 일이 없다가, 그동안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을 섬겨 온 그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다. 내 자녀가 속한 학년의 교사였다.


그런데 못 본 사이 그는 뭔가 달라 보였다. 아이들을 차분하게 섬기는 모습이나 다른 교사들이 그를 칭찬하는 소리 등. 내 기억 속의 그와 같은 사람인지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원래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내가 오해했을 수 있고, 지난 수년 동안 아이들을 섬기고 기도하며 성숙해졌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내 짧은 소견과 편견 탓에 오랜 세월에 걸쳐 한 사람을 판단하고 고깝게 여긴 잘못을 주님 앞에 회개할 수밖에 없었다.


탓하고 배제하기보다 가르치고 기도하고

얼마 전 상연한 ‘내 머릿속의 지우개’에서도 극 중 오네시모는 사도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진실하게 회개한 후 주인에게 해를 끼친 종이요, 죄인이던 신분에서 하나님의 자녀요, 주의 일에 유익한 자로 거듭난다. 극을 다 본 후 내 머릿속에 또 한 인물이 떠올랐으니 바로 마가였다.


마가는 예루살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마가의 ‘다락방’에 120문도가 모여 기도할 만큼 큰 집을 가진 부잣집 아들로 자랐을 마가였다. 외삼촌인 바나바(골4:10)에게서 신앙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그의 신앙은 험난한 폭풍우를 견딜 수 없었다.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전도 여행에 동행한 마가는 도중에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고(행13:13), 이러한 마가의 나약함은 바울과 바나바가 2차 전도 여행을 앞두고 갈라서는 원인이 되었다. 자신 탓에 바울과 바나바가 심하게 다투자(행15:39) 마가는 연약한 제 모습을 한없이 자책했을 것이다.


그런 마가에게 다시 한번 용기를 북돋은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베드로였다. 아마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지난날을 고백하면서, 마가가 다시 한번 주를 위해 충성하도록 격려하고 기도하지 않았을까. 베드로는 “내 아들 마가”(벧전5:13)라고 할 만큼 마가를 귀하게 여겼고, 마가가 기록한 ‘마가복음’ 역시 베드로에게서 공생애 초반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기록했을 것이다.


오랜 연단 기간을 거친 마가는 결국 사도 바울의 동역자가 되기까지 했다. 1차 전도 여행 때의 무책임한 모습과 달리 감옥에서 고독한 나날을 보내던 바울의 곁을 끝까지 지켜 주었다. 말년의 바울은 자신의 마지막 편지에서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4:11)라고 말했다.


예수님을 따라가다 위기가 닥치자 알몸으로 도망한 추태를 보인 마가(막14:51~52), 선교 도중 돌아가 버린 마가. 그러나 주님은 연약한 그를 쓰고자 하셨고, 결국 마가는 말년에 알렉산드리아교회를 세우고 이집트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에게도 주님 심정이 있다면, 당장에는 무익해 보이고 철없어 보이더라도 단순히 탓하고 주의 일에서 배제하기보다, 그를 위해 기도해 주고 가르쳐 주고 기다려 주는 게 주님이 기뻐하실 일일 듯하다. 나 또한 이만큼이라도 성숙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가 참아 주고 품어 주고 기도해 주었던가! 오랜 세월 품어 온 오해와 앙금을 풀어 주시고, 회개할 은혜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현정아 객원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91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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