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6-01-15 10:26:53 ]
36명이 전사했다. 여리고성 전쟁 직후 이스라엘은 작은 성 아이에서 참패를 당했다. 여호수아는 옷을 찢고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렸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저녁까지 탄원했다. 낙담한 지도자에게 하나님이 원인을 알려 주셨다. 적군의 강함 때문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내부에 죄가 있었다.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 일어나 온 백성을 하나님 앞에 세웠다.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단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악 사이에 타협이란 없다. 죄는 적당히 덮을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는 치명적인 담이다.
제비뽑기가 시작되었다. 열두 지파, 장정만 60만여 명. 그중 한 사람을 찾는 과정이었다. 유다 지파, 세라 족속, 삽디 가문을 거쳐 마침내 아간이 지목되었다. 확률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으나,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확률은 의미가 없다.
아간의 고백은 간결했다.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수7:21). 시날산의 외투, 은 이백 세겔, 금 오십 세겔. 장막 땅속에 감췄다. 완전 범죄라 확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불꽃과 같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 죄는 반드시 드러난다.
보고 탐내어 취했다는 것은 아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에덴에서 하와가 선악과를 대했을 때도 같았다.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이 걸어온 길이다. 인간 본성 자체가 죄를 향해 기울어져 있다. 스스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여호수아는 아간을 “내 아들아”(수7:19)라고 불렀다. 백성을 향한 애정이 담긴 호칭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정은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 멈춰야 했다. 아간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이 아골 골짜기로 끌려갔다. ‘아골’은 히브리어로 ‘괴로움’이다. 이름 그대로였다. 돌로 치고 불살랐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대가를 요구하신다. 아골 골짜기의 처형은 죄인이 받아야 할 영원한 형벌의 예표이다. 우리는 본래 진노의 자녀였다.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인 존재였다.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셨다”(수7:26). 심판이 집행된 후에야 진노를 거두셨다. 피 흘림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 만일 대가 없이 죄를 해결받을 수 있었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필요가 없었다. 못 박힌 손과 발, 가시 면류관, 창에 찔린 옆구리. 그 십자가 보혈로 하나님의 진노가 그쳤다.
아골 골짜기의 돌무더기는 후대를 향한 경고이다. 그 골짜기가 죄인에게 쏟아진 하나님의 진노를 보여 준다면, 십자가는 그 진노를 온몸으로 받아낸 어린양의 붉은 보혈을 증거한다. 영원한 심판에서 건짐받은 자로서 우리는 이 은혜 앞에 전율하며 감사해야 한다.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93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