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오시는 대로(大路)<26·下>] 하나님을 배신한 르호보암

등록날짜 [ 2026-05-21 14:21:14 ]

<사진설명>사루헨(Sharuhen) 전경. 사루헨은 브엘세바에서 서쪽으로 30km 떨어져 있는 성읍이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르호보암을 징벌하려고 이집트의 시삭(쇼생크)에게 남유다를 치게 하셨다. 시삭은 네게브 지역의 거점인 사루헨을 출발 지점으로 삼아 유다 남부와 유다 중앙의 견고한 성읍들을 공격한 후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왔다.


하나님을 배신한 악한 르호보암도

예수가 오시는 대로를 여는 인물

악인도 예수님 족보에 오른 것은

인류 구원 위한 험한 길도 마다치

않고 걸어오신 예수를 나타낸 것


▶윤석전 목사: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통일 왕국을 분열시킨 르호보암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간에 버리고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를 합니다. 산과 숲에 우상을 섬기는 산당을 세운 후 이방신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남색(男色)하는 자까지 두고 온갖 세속적인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이렇게 죄악으로 가득 찬 남유다를 하나님께서 징벌하셨습니다. 이집트의 시삭(Shishak)에게 남유다를 치게 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남유다는 하나님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시삭에게 모두 빼앗기고 맙니다.

그런데도 르호보암은 예수님이 오시는 대로를 여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못된 짓을 많이 저지른 그가 예수님의 족보에 올랐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사진설명>부바스티트 대문(Bubastite Portal)의 부조. 이집트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에 있다. 성경 속 시삭이 정복한 도시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시삭이 사루헨에서 출발해 네게브 지역을 공격했다는 것도 기록으로 알 수 있다.


▶기민석 교수: 예수님께로 가는 큰 대로가 있다면, 그곳까지 가는 길에 좋은 일도 있고 흉악한 일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길의 종착역이 예수 그리스도인 까닭은 길을 이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렵고 흉악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이끄신다면 우리의 인생도, 우리 인생의 대로도 그 종착지는 구원과 승리일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모든 족보의 역사를 이루어 오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바라보면서 느끼셨을 희로애락을 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대로에는 좋은 길도 있고 험한 길도 있는데, 도무지 올 수 없는 길을 헤쳐 가며 오시는 주님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기도 합니다.

르호보암은 처음 3년간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또 백성이 보기에 선한 왕이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처럼 이전 선왕들의 모습을 이어 가면서 복된 왕이 될 듯했습니다. 그런 그가 3년 만에 하나님께 해서는 안 될 일을 벌이며 혐오스러운 왕으로 변해 갑니다. 사람이 봐도 추한 모습으로 무너져 갑니다. 성경은 르호보암의 변질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설명>분열 왕국 시대. 솔로몬이 죽은 후 가혹한 세금과 노역에 반발한 북쪽 지파가 에브라임 지파의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북이스라엘을 세웠고, 남쪽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르호보암이 남유다를 유지하며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었다.


▶기민석 교수: 르호보암이 처음에는 선한 왕이었다가 나중에 악한 왕이 되었습니다. 아마 르호보암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빈번히 일어나는 일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처음에는 주님 보시기에 예쁘게 신앙생활 하다가, 나중에는 주님과 멀어져 큰 실망을 안겨 드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성경을 보면 열왕기서와 역대기서 두 군데에서 왕들에 대한 기록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역대기서는 왕에 대한 평가를 전해 줍니다. 그중 역대하 11장 맨 마지막 절을 보면 “르호보암이 슬기로운 왕이었다”라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12장으로 넘어가자마자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르호보암이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하매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대하12:1).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르호보암이 타락한 원인은 자만 탓이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나라의 세력이 강해지고 융성해지니 하나님을 저버린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르호보암이 율법을 저버리니 온 이스라엘도 그를 따랐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악행을 저지르자 그 아래에 있던 백성도 함께 악행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나라든, 교회든, 가정이든 지도자가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윤석전 목사: 사람이라면 누구나 교만해지기는 쉬운데 겸손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칭찬을 내가 받으면 어느 순간에 교만해지고, 그 교만 탓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면 큰일이다’라고 여겨 무척 경계하게 됩니다.

성경도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16:18)라고 했습니다. 또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4:6)라고 하셨습니다. 르호보암도 처음 3년 동안 하나님께 순종하여 복을 받았으나, 왕국이 강해지니까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그다음부터 교만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교만 탓에 하나님을 내던지고 육신의 소욕대로, 정욕대로, 또 악한 영의 궤계에 속아 우상숭배를 해 가면서 하나님 앞에 파렴치한 행동을 합니다. 사람이 선에서 악으로 무너지는데 어찌 자기를 발견하지 못할까요? 오늘날 신앙생활 하는 모든 성도와 주의 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북이스라엘이 르호보암을 버리고 자기 나라를 세웠을 때, 왜 르호보암과 남유다는 그것을 막으려고 전쟁을 벌이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기민석 교수: 상식적으로 보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갈라 북쪽에 나라를 세우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당연히 르호보암의 남유다도 이를 알고 전쟁을 벌이려 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이 인상 깊은 말씀을 그들에게 남기십니다. 역대하 11장 4절에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와 싸우지 말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내게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르호보암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여로보암을 치러 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형제끼리 싸우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동족끼리 싸우지 말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 중요한 것은 “이 일은 다 내가 시킨 것”이라는 점입니다. 앞서 솔로몬이 큰 범죄를 저지를 때부터 하나님과 다윗 사이의 언약 때문에 넘어가기는 했지만 언젠가 징벌을 내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르호보암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것은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설명>카르나크 신전. 현존하는 세계 최대 신전이며 1500여 년에 걸쳐 지어졌다. 이집트의 왕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나타내고자 온갖 신전과 우상들을 세웠지만 결국 그들의 시대는 사라졌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쓰신다.


▶윤석전 목사: 르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 할아버지 다윗처럼 오늘날 우리가 생각해 볼 때 가슴 벅찬 왕들의 아들이요 손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악한 왕이 되어,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선왕들을 통해 얻은 나라를 모두 잃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이를 근본적으로 보면 주님이 오시는 대로입니다. 주님은 험한 길로도 오시고 좋은 길로도 오십니다. 산 위에도 오르시고 물가에도 가십니다. 주님이 가시는 길이 어디든지 그 목적은 인류 구원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생애와 솔로몬의 생애를 통해서 오셨습니다. 또 신약성경을 보면 초대 교인들이 간 길과 그 길의 끝은 예수님의 재림의 길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초림의 길도 재림의 길 못지않게 험난한 길로 오셨습니다. 주님이 르호보암을 통해 저벅저벅 오시는 발걸음을 들을 수 있다면, 오늘날 우리가 ‘주님과 함께 어느 길을 가고 있는가’ 신앙을 재점검하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95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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