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인물 이야기 374] 심지 않은 포도원 앞에 선 여호수아

등록날짜 [ 2026-09-02 09:58:05 ]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으로 불렀다(수24:1). 회막이 있는 실로를 두고 세겜까지 백성을 오게 했다. 500여 년 전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와 처음 제단을 쌓고(창12:7), 야곱이 집안의 우상들을 파묻은 땅이었다(창35:4). 가나안에 들어온 첫해, 백성이 그리심산과 에발산에 갈라서서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듣던 골짜기이기도 하다(수8:33).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수24:2). 그날 세겜에 울린 목소리의 주어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냈다. 내가 그에게 이삭을 주었다. 내가 애굽을 쳤다. 내가 바다를 갈랐다.” 열두 절 내내 ‘내가’가 이어진다. 애굽의 종살이도, 40년 광야도 그 목소리 안에서는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다. 110년 인생의 고별사에서 여호수아는 자기 이야기를 한 줄도 말하지 않았다.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수24:2). 믿음의 조상이 우상의 집에서 자랐다.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 나선 적이 없는 그를, 하나님이 우상 틈에서 이끌어내셨다. 믿음의 첫걸음부터 사람의 공로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모압의 왕 발락이 복술가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했다(수24:9). 백성이 진을 치고 밥을 짓던 평범한 날들이었다. 산 위에 저주의 제단이 쌓이는 줄 아무도 몰랐다. 하나님이 발람의 입을 돌려 저주를 복으로 바꾸셨다(수24:10). 백성이 모르는 밤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깨어 있었다.


“너희 칼로나 너희 활로나 이같이 한 것이 아니며”(수24:12). 요단을 건너고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서른한 왕과 싸워 온 백성들이 이 말을 들었다. 왕벌을 앞서 보내 아모리 두 왕을 쫓아낸 이도 나였다고 하셨다. 아무도 항변하지 않았다.


“너희의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축지 아니한 성읍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너희가 그 가운데 거하며 너희가 또 자기의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원의 과실을 먹는다”(수24:13). 광야 40년과 전쟁 7년을 지나온 사람들의 손에 들린 것, 전리품이 아니라 선물이었다. 이 말씀 끝에서 여호수아는 백성을 언약의 자리로 이끌었다.


심지 않은 포도원의 열매를 먹는 백성. 그 자리에 오늘 우리가 서 있다. 우리가 지지 않은 십자가가 골고다에 섰다. 우리가 흘리지 않은 속죄의 피가 죄의 담을 헐었다. 우리가 이기지 못한 사망을 주님이 홀로 이기셨다. 


그날 백성은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라고 답했다(수24:21). 첫 제단의 자리에서, 받은 것을 아는 사람들이 내놓은 대답이었다. 심지 않은 포도원의 열매가 오늘도 우리 식탁에 오른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셨다.


/정한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96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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