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성회 설교 요약] 주여, 이 초라한 나를!

등록날짜 [ 2018-04-10 16:50:41 ]


<사진설명> 3월 26일(월)부터 29일(목)까지 고난주간성회가 하나님 은혜 가운데 열렸다. 윤석전 담임목사는 성령의 감동대로 마태복음 26장 69~75절을 본문 삼고 “어린양처럼 제물 되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신 예수의 고난에 구경꾼이 되지 말라”며 “회개해 죄에서 벗어나라고 애타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마음과 온갖 고난을 당하신 주님 정신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전국에서 수많은 성도와 목회자가 참석해 은혜받고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리라 결단했다. 오정현 기자


주님의 심정과 정신을 가지라
주의 만찬 자리에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주시면서 “내 살”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예수께서 어린양처럼 죽어 인류를 구원할 제물이 된다는 뜻인지 몰랐다. 예수님은 인류를 죄와 저주와 지옥 멸망에서 살리기 위해 고통의 쓴잔을 마셔야 하는데, 제자들은 그런 주님의 사정을 전혀 몰랐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하고 고통하며 땀이 핏방울 같이 되기까지 기도하는 주님의 애타는 심정을 몰랐기에 제자들은 깨어 기도할 수 없었다.

성도여, 당신이 매질을 당하려고 꿇어앉았다고 생각해보라. 살점은 모조리 난도질당하고, 걸레 찢어지듯 찢어지는,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가죽 채찍으로 모질게 맞는다. 전능자가, 의인(義人)이 왜 죄인 앞에 맞아야 하는가. 인류의 죄와 사망과 고통과 질병을 단번에 해결하시려고 주님은 매를 맞으신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그분은 죽음을 택하신다.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 자기의 육체는 걸레처럼 찢어진다. 나 때문에 고난당하시는 주님을 보고 어찌 모른다고 할 수 있겠는가.

주님의 심정과 정신으로 신앙생활 해야 한다. 주님은 자기 자신을 성령으로 우리 안에 공개하셨다. 성령을 받으면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깊은 사랑, 몸부림치며 쓴잔이 넘어가게 해달라는 아들의 기도를 뿌리치고 그 아들을 죽이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된다. 또 모진 채찍질에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기까지 나를 살리기 위해 순종하신 아들의 마음을 알게 된다. 또 수많은 제자의 목숨을 초개(草芥)와 같이 사용하면서 우리에게 이 복음을 전해주신 성령의 마음을 알게 된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신 일은 세 가지 증표를 나타낸다. 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향해 “온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다. 성령은 예수님을 “비둘기처럼 인류의 죄를 담당하고 죽으실 분”이라고 증거했다. 하나님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온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짐승을 피 흘려 각을 떠서 바치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브라함은 작은 새 한 마리를 쪼개지 않아 피를 흘리지 못했다. 하나님은 피 없는 그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 이후 430년간 애굽에서 노예살이로 고통받던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때,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을 애굽에 내리셨다. 마지막은 장자(長子)가 죽는 재앙이었다. 죽음의 사자가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는 고센 땅에 이르렀을 때, 양을 잡아 흘린 피가 문설주에 묻어 있는 모습을 보고 그 집들을 넘어갔다. 곧 죽음이 넘어간 것이다. 아브라함이 작은 새 한 마리를 피 흘리지 않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실패해 그의 후손이 430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하며 고통당했으나, 이제 어린양의 피를 흘려 문설주에 바를 때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돼 나왔다.

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범할 때마다 짐승을 잡아 제사드렸다. 하나님께 짐승의 피를 보이면서 고백했다. ‘내가 이렇게 죽어야 할 죄인입니다. 짐승의 피를 보시고 내 죄를 용서하옵소서.’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시면 용서받아 살았고, 제사를 받지 않으시면 죗값으로 비참한 죽음이 왔다. 이 때 드리는 예물이 ‘어린양’이었다.

예수께서 왜 하필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 잡혀 가셨을까. ‘대제사장’은 양을 잡아 피 흘려 백성의 죄를 회개시키는 일을 했다. 유대인들이 일년 한 번 대속죄일에 짐승을 잡아 피 흘리며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면 대제사장이 그 피를 들고 속죄를 받기 위해 지성소를 들어갔다. 예수께서도 그런 대제사장 앞에 가서 죽어야 과거에 양을 잡아 죄를 사함받듯 인류의 죄가 속죄받는 구원의 예언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야바의 뜰에서 포승에 묶여 전지함도 능력도 배제하시고 겸손하게 어린양이 되셔서 내가 죽어야 할 죄를 짊어지셨고 결국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으시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셨다. 그가 죽으시는 순간, 내 죗값은 끝났다. 그 증거가 주님의 부활이다. 예수께서 어린양처럼 피 흘려 죽으셨기에 죽음이 넘어가고 나는 살아났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죽음, 죄, 저주, 사망, 지옥에서 해방하는 어마어마한 능력이다.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육체가 죽듯, 예수 피가 없으면 내 영혼이 죄로 죽는다. 예수 피로 회개하면 죄가 사라지고 예수의 생명이 가득하게 된다. 예수 피의 복음이 천국 열쇠다.

 

날마다 범하는 자범죄를 비둘기처럼 담당하신 예수
성령은 예수님의 생애를 사용하셨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공생애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셨고 성령으로 피 흘리셨고 성령으로 살아나셨다. 성령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비둘기처럼 죽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분”이라고 증거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율법을 어기면, 율법은 “너는 죽어야 한다. 죽기 싫으면 제물을 가져 오라”고 요구한다. 예수께서 피 흘리시는 순간, 이런 율법의 요구는 완전히 이루어졌다. 율법은 더 이상 양을 요구하지 않는다. 예수 피를 요구한다. 예수께서 흘린 피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돈, 공기, 물, 어떤 환경보다 풍부해 예수 피가 모자라 지옥 가는 일은 전혀 없을 정도로 충만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예수 피가 우주 안에 꽉 차 있어 우리는 그 피의 생명 안에 살고 있다.

은혜받고 구원받아 천국갈 여건은 풍성하지만, 인간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마귀역사도 있다. 죄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요일3:8) 마귀에게서 나오고 싶거든 예수 피로 죄사함받아야 한다. 죄는 핵무기, 과학문명, 윤리, 도덕, 교리, 박애주의, 선덕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아담에게서 내려오는 원죄는 어린양 예수께서 흘리신 피로 단번에 해결되었으나, 내가 범한 자범죄는 비둘기를 잡아 화제로 드렸듯이 매일 죄를 회개해 예수 피로 씻어야 한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앞에 죄를 회개하는 순간,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해야 할 죄가 무효되고 지옥문은 닫히고 천국문이 활짝 열린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아버지의 뜻대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는 것이다. 아버지는 사랑의 뜻을 정하시고, 아들은 사랑의 뜻을 실행하셨다. 하나님은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독생자를 주어 사랑하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아들이 있는 자를 사랑하고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은 아들 예수의 피에 있다. 예수 피가 내 안에 있고 말씀과 성령과 진리로 거듭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 하나님은 아들의 피가 있는 자에게 성령을 보내 지키고 보호하고 인도하신다. 성령이라는 왕이 오셨을 때 천군천사도 파송하신다. 피의 사람이 받는 영적 축복은 엄청나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린양과 비둘기처럼 내 죄를 담당하고 죽는 순간, 내 죄는 무너졌다. 예수께서 부활하시는 순간, 나의 부활도 이루어졌다. 죄에서 자유한 예수 피의 사람만 부활이 있다. 주님 오실 때 최고의 사랑을 받을 자는 예수 피의 사람이다. 예수 피를 소중히 여기며 예수 피의 부자, 생명의 부자가 돼라.

 

주님의 고난과 부활은 나의 고난과 부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으나, 기도하지 않았던 제자들은 시험에 들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가야바의 뜰에서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 어린양과 같은 제물이 되기 위해 희롱·조롱·무시를 당하고 살이 찢어지는 어마어마한 매를 맞고 계신데, 제자들은 도망갔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척 하면서 예수를 죽이라고 외치는 무리가 된 듯 예수님을 바라보며 방관하고 있다.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건만 진짜 죽음이 다가오자 주님을 버렸다.

주님의 고난에 구경꾼이 되지 말라. 2천년 전 가야바의 뜰이 내 안에 있어야 한다. 나를 죄와 저주와 지옥에서 구원하기 위해 모진 매를 맞는 주님의 신음, 살 찢고 흘리신 주님의 피가 내 안에 있어야 한다. 나를 위해 어떤 변명, 핑계도 없이 채찍 맞으시고 상하시고 징계 받으시고 찔리시고 죽으신 주님의 사랑을 무색케 하지 말고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라.

기도, 전도, 순종, 십일조 드리는 것은 죽는 일도 아닌데 왜 하지 않는가. 주님 따르는 일에 이것저것 핑계를 대는 것이 타당해 보여도 주님의 고난과 죽으심 앞에 초라할 뿐이다.

베드로가 당신 자신이 아닌지 살펴보라. 주님이 나를 위해 자신의 생애를 사용하셨듯이 주를 위해 나의 재정, 시간, 생애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예배, 감사, 전도, 충성은 은혜받은 자의 당연한 행동이다. 주님 것은 받아들이고 내 것은 드리지 않으려고 하는 비겁함, 욕심을 버려라.

온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밝히 보라. 주를 모른다고 부인하던 베드로가 마가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으니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는 사람이 되었다. 기도하고 성령 충만해야 비겁하지 않을 수 있다. 피 흘리기까지 죄를 대적해 싸워라.

항상 회개하고 기도하고 성령 충만해 예수 피를 운반하는 수레, 성령의 일꾼으로 쓰임받으라. 절대 마귀에게 이용당하여 내 영혼 죽이는 살인자, 핍박자가 되지 말라. 언제든지 주를 위해, 내 영혼의 때를 위해 기꺼이 죽을 준비를 하라. 핍박과 고통이 와도 하늘의 상이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그날까지 주를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자.



/조신애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57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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