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차 목회자부부 영적세미나 윤석전 목사 설교 요약]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등록날짜 [ 2018-09-04 16:40:01 ]

사랑하는 주의 종들이여!
이제 더는 속지 마라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생명력으로
그 사랑으로 설교하고 목회하라


<사진설명> 수원흰돌산수양관에서 열린 제58차 초교파 목회자부부 영적세미나 현장. 대한민국 전역과 세계 각국에서 모인 목회자들은 성경 말씀과 목회에 불충한 지난날을 하나하나 대조해 주는 윤석전 목사의 설교 말씀을 듣고 무릎을 꿇고 부르짖어 회개할 수밖에 없었다. ‘성령’을 강조한 세미나 말씀을 듣고 수많은 목회자가 목회 현장에서 하나님 말씀과 성령에 이끌려 목회하지 못한 부분들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있다. 강문구 기자

무능력한 목회를 벗어 버리라

사도 바울의 서신을 읽어 보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절대자 하나님 앞에서 어느 만큼 자기 지식을 버려야 하는지 알 수 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1:26). 그러니 목회자들이 남보다 똑똑하고, 잘나고, 아는 체하고, 나서고, 논리가 정연하다면, 사람이 볼 때는 목회를 매우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실상 그렇지 못하다. 목회 잘하는 사람은 설교 시간에 반드시 회개 운동이 일어나고, 설교할 때 반드시 귀신이 떠나가고, 설교 시간에 반드시 질병이 치료받고, 설교 시간에 반드시 이적과 권세가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 그런데 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목회자 자신의 지식과 경험대로 말하기 때문이다. 목회는 ‘얼마나 내가 무지한 사람인가? 무능한 사람인가?’ 자각하고 인정할 때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셔서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멸망하는 자들을 구원하셨는데, 왜 목회자들은 성도에게 독생자 예수를 주지 않는가. 내게 줄 예수가 없으면서도 사랑을 말한다. 그런데 실상 사랑이 있는가? 사랑을 제아무리 외쳐도 듣는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사랑을 못 느낀다면 목회자 스스로 자신을 속이고, 성도를 속이며, 하나님을 속이는 거짓말이요, 그것이 죄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먹고살고 생활하기 위해 사랑을 가진 척, 거룩한 척 강단에서 이런 죄를 계속 반복하고 있으니 어떻게 심판을 피하겠는가? 얻어먹기 좋아하고 대접받기 즐기면서도 그 안에 줄 예수의 사랑이 없으니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 것이다.

사랑에는 반드시 힘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랑의 힘으로 독생자를 주셨다. 성도를 붙들고 죄짓게 하고 지옥에 끌고 가는 악한 영은 오직 사랑의 힘 앞에 쫓겨나가는데 목회자들은 사랑은 말하지만 그 안에 사랑의 힘이 없다. 당신에게 귀신을 쫓아낼 힘이 있는가? 병 고칠 힘이 있는가? 지옥 가는 영혼을 살려 보겠다고 밤새워 울며 기도하는 힘이 있는가?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있는 척하면서 자신과 성도와 하나님을 속이고 있으니 어떻게 하나님이 쓰시겠는가? 없으면 없는 줄 알아야 하는데 없는 줄도 모른다. 따라서 목회자는 자신의 모습과 문제를 훤히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하고, 이론이 아닌 실제로 예수를 받아들여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오직 기도로만 가능하다.

예수님도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말씀하셨다(요14:14). 기도하라는 분이 얼마나 큰 사랑을 가지고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기도해서 응답이라는 사랑을 받으라고 기도하라 명하셨는데, 기도를 절대적으로 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주시려는 사랑도 거절하여 받지 않고,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하지도 않으니 도대체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란 말인가? 무지하고 아무것도 모르면 주님이 시키는 대로라도 해야 하는데 너무 똑똑해서 ‘그건 어려워’ ‘이 시대에 안 맞아’ ‘그건 안 돼, 현실과 달라’ 하면서 스스로 부인한다. 우리는 안 맞는 현실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이 목회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속지 말아야 한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제일은 사랑이요”(고전13:13),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고전13:1).

하나님은 사랑해서 아들을 주셨고, 아들은 사랑해서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는데 우리는 성도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사랑의 절정으로 십자가에서 피 쏟으신 예수가 내 안에 있어서 줘야 하는데 안 가지고 있으니 목회할 자원이 없다. 사랑의 힘이 없는데 어떻게 교회가 부흥되겠는가?

따라서 예수가 내 평생 화제(話題)가 되어야 한다. 은혜를 입고 예수 믿어 그 피로 구원받은 우리는 평생 예수가 화제가 되어 누구를 만나도 예수를 말해야 한다. 예수가 화제가 되는 설교, 찬양, 기도, 충성, 전도, 순종 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런데 화제가 되어야 할 예수가 목사, 사모 속에 없으니 교회에서도 사도행전적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성경의 권위가 무너져 음부의 권세가 지배하니 교회 부흥이 안 된다. 교회가 조용하고 능력이 없고, 이적이 없고, 예배라는 형식만 치르고 있으면서 정상적인 교회라고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교회는 반드시 예수가 화제가 되어야 하고, 반드시 주님의 생애 역사가 일어남을 명심해야 한다. 사랑하는 주의 종들이여! 이제 더는 속지 마라.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생명력으로, 그 사랑으로 설교하고 목회하라.


누가 당신의 목회를 이끌어 가는가?

성경을 안다고 하면서도 성경대로 살지 않고 성경을 도전하고 성경의 일을 반대하며 저질렀던 죄를 전혀 몰랐을 때는 내가 불쌍한지 몰랐다. 그러나 성경이 보일 때부터 불쌍한 나 때문에 많이 울었다. 또 그렇게 속 썩이는데도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아파하실 것을 생각하니 너무 괴로워서 많이 울었다.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주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님의 사랑의 사정,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는 아들의 사정을 알고,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는지 생각할 때 그저 감사의 눈물만 흐른다.

세상에서 제일 담대한 것이 하나님 사정, 내 사정, 성도 사정을 모르는 무식함이다. 담대해서 죄짓고 하나님을 무시한다. 그런데 그 사실조차 모른다.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 말씀대로 다 사느냐?”는 말은 하나님이 그대로 살라고 주신 말씀을 훼방하는 것이다. 목사 스스로 잘못 살면서 ‘이 정도야 하나님도 이해하시겠지’ 하면서 하나님을 죄의 동역자로 착각한다. 하나님을 도전하고 무시하고, 하나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없고 말씀대로 심판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데도 아니라고 한다면 이 자가 하나님의 원수이니, 하나님의 원수가 어찌 무서운 심판을 피하겠는가.

우리에게 왜 능력이 없고 하나님이 안 쓰시는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예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귀신이 떠나가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암과 같은 병이 치료받는다. 어제나 오늘이나 하나님의 말씀과 그 능력은 동일하거늘 왜 문명 문화 앞에 하나님의 능력을 희석시키고 무시하는가. 주의 종은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실권도, 소유권도 없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복종할 뿐이다. 목숨도 내 것이 아니다. 그분이 죽이면 죽고 살리면 사는 것이다. 그런데 당신들이 하나님의 상전 노릇 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쓰고 싶어도 못 쓰신다.

목회의 조종자, 생각의 조종자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성령인가, 악한 마귀 사단 귀신인가? 목회를 음부의 권세에 매여 하는가, 아니면 주님의 몸 된 교회로서 예수의 정신으로 하는가. 당신은 누구에게 속했기에 주님 일에 반대하는가? 기도하라는데, 전도하라는데, 병 고치라는데, 귀신 쫓으라는데,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는데 왜 반대하고 하지 않는가? 하나님에 대한 이 어마어마한 반대와 도전하는 사단적 행위를 계속하면서도 왜 반대하는 것조차도 모르는가? 교회를 움직이는 권한을 누가 당신에게 줬는가. 당신에게는 권한이 없다. 오직 성령께 권한이 있다. 성령이 목사를 마음껏 쓰시게 해야 한다.

성경은 인간이 만든 학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류 역사를 운행하는 경륜이요 섭리다. 그런데 왜 성경을 신학으로, 학문으로 취급하는가. 당신 속에 음부의 권세가 들어서 양의 가죽을 쓴 이리처럼 주님의 일을 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음부의 권세가 운영하게 했으니, 당신도 심판받고 성도도 심판받는다. 내 속에서 음부의 권세가 떠나가야 성령이 쓰신다. 성도를 죄에서 구원해야 한다.

죄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마귀의 지배가 있고, 마귀의 지배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귀신역사가 있다. 이것을 소탕하지 않고 성도를 구원할 수 없다. 말과 이론으로 안 된다. 예수의 피, 하나님의 말씀, 성령의 권능으로 마귀 사단 귀신 죄를 소탕해야 한다. 불의를 소탕시키는 최고의 능력이 회개다. 예수의 이름으로 음부의 권세를 몰아내야 한다.

예수가 있는 곳에 반드시 귀신이 떠난다. 그런데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지배하고 목사를 지배하고 성도를 지배한다. 대표적인 것이 인본주의다. 이는 마귀 역사다. 인본주의는 논리적이고 이론적이고 상황과 현실에 맞다. 신본주의는 논리와 이치로는 안 맞다. 마귀는 사람의 생각을 이용하여 인본주의 하게 한다. 인본주의, 합리주의, 세속적인 생각을 다 버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악한 영을 인정해야 나간다. 인본주의자가 되어 마귀에게 사용당하지 말고 전지하신 하나님으로 사용당하라. 전능하신 예수로 일하라.

주님의 정신과 생각에 내 정신과 생각을 맞추려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한다. 지식 안에서 믿음, 능력, 분별력이 발생하고 하나님의 사역이 확실해진다. 설교자가 나는 죽을지라도 너희만은 은혜받고 회개하고 천국 가면 얼마나 좋겠냐는 애절한 심정을 가지고 성령에 절대복종하면서 성령의 감동을 초월하지 않으려고 작정하며 기도하고, 성경을 말씀 그대로 전하려고 노력해 성령의 소리를 전하면 수많은 영혼이 “어찌할꼬” 회개하고 귀신들이 떠나간다.

우리는 품삯 받는 사람이 아니다. 돈의 수준, 목숨의 수준을 넘어서 주님과 상대하는 사람이다. 주님이 나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건지시기 위해 흘린 피 공로에 감사하여 주님을 위해 죽도록 주의 일을 해야 한다. 멸망하는 영혼 살리기 위해, 저들이 지옥 가면 안 된다는 예수의 정신으로 영혼 구원을 위해 목회해야 한다. 주님이 필요할 때마다 주님 손에 붙들려 사용당한다면 내가 주님께 얼마나 필요한 사람이 되고, 주님이 아끼는 사람이 되겠는가.

주의 종들이여. 여러분의 외모는 아무도 못 바꾸나 여러분의 정신과 심정과 생각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인본주의, 삯꾼의 근성을 끄집어내라. 할 수 없는 자가 할 수 있는 자로 바뀌라. 목회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으로 하는 것이다. 마귀 사단 귀신 죄에서 영혼을 살려내는 일은 오직 예수만 하실 수 있다. 주님의 특성과 근성, 주님의 사랑과 능력, 예수 피의 공로, 그 이름의 권세가 능히 할 수 있다. 나는 해결하지 못하나 주님이 해결하니 기도하라. 정말로 애절하게 기도하라. 받은 은혜, 깨달은 것을 당신 것으로 만들라. 예수 안에서만 새로운 피조물이다. 옛날 근성, 구습을 버리라. 당신을 다시 만들라. 당신의 생각과 마음을 새로 지음받으라.


/정리 김충성 조신애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59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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