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일에 무한한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 되라

등록날짜 [ 2019-08-22 17:06:42 ]


<사진설명> 한국 전역에서 교회별로 단체 참가해 3박 4일간 교회의 종, 사환, 일꾼으로 거듭난 수천 명의 직분자들이 성회 3일째 오전 성회를 마친 후 윤석전 목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강문구 기자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서 주신 우주 질서의 법을 “있으라”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하며 따르고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인간에게 주셨을 때, 어느 것 하나 인간에게 복종하지 않은 것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이 이 시대 내게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살펴보았는가. 하나님은 태초부터 영원 후까지 자기가 하실 일을 성경에 기록해서 그대로 진행해 가시는데, 오늘날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이 그 말씀이 옳네, 그르네 따지면서 말씀과 상관없이 산다면, 파멸이 눈앞에 훤히 보이지 않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규모조차 측량할 수 없고, 당장 한 시간 후 내 인생에 불어 닥칠 사건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존재인데, 뭐가 잘났다고 건방진가. 하나님은 죄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돌아온 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의 사명대로 살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올 한해 하나님이 내게 어떤 사명을 맡겼는지, 그 사명대로 살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이성 없는 짐승처럼 배부른 것을 제일로 여기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이 땅에서 육체로 살고 있지만, 육체는 영혼이 빠져나가면 흙덩어리에 불과하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소출이 풍성한 농부처럼 오늘밤 주님이 내 영혼을 불러간다면, 아무리 넉넉한 소유인들 뉘 것이 되겠는가. 우리는 건방 떨지 말고 하나님이 오늘날 내게 주신 직분의 뜻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


직분자란 신랑의 일을 맡은 자인데, 예수님을 나의 신랑이라고 여기고는 있는가. 주님이 당장 재림하신다면,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과연 들림 받을 신부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직분은 건방떨지 말고 겸손히 섬기라고 주는 것이다.


교회의 실권(實權)은 오직 교회 머리인 주님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주님이 피로 사신 양떼를 치게 한 이가 목사다. 그런데 장로, 권사가 교회의 실권을 쥐고 교회를 좌지우지 한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교회에 충성하는 줄로 안다.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은 오직 피 흘려서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만 가득할 뿐인데, 어찌 감히 성령이 감독자로 세운 주의 종에게 도전하고 교만하는가, 어찌 하나님 말씀에 ‘아니오’가 있는가.


요한복음 12장 50절에 예수께서 “내가 자의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내게 말할 것과 이를 것을 명령하노니 너는 이 명령이 영생인 줄 알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자의로 말씀하시지도, 우리를 심판하러 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심판할 이가 있으니 내가 한 그 말이 너를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아무리 제 멋대로 해도 심판하지 않고, 목숨이 끝나는 그날, 심판대 앞에 서는 그날까지는 내버려 둔다.


우리는 어찌하여 교회 안에서 그리 겸손하지 못할까. 교회에 모든 직분 맡은 자들이 주님 섬기듯 성도를 잘 섬기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말씀했는데, 먹으니 그 말씀이 이루어졌다. 성경에 하지 말라고 한 말씀을 한다면, 우리 역시 죽는다. 그런 두려움을 갖고 긴장하며 신앙생활하지 못하면서 왜 직분을 맡았는가. 교회에서 직분을 가진 사람들, 남들이 볼 때 힘 꽤나 있는 사람들은 잘못을 저질러도 자신을 합리화한다. 하나님 앞에는 “잘못했습니다!”라는 말밖에는 효력이 없다.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조심스럽게 살아도,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 사단이 틈타고 들어와서 교만하게 하고, 이성 없는 짐승처럼 살게 하고, 자기 배가 신이 되게 한다. 옷이니 음식이니 육신을 위해서 사치하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깝다. 예수 믿는 사람의 경제논리는 항상 ‘주님이 기뻐하실까? 주님이 좋아하실까?’를 늘 돌아보아야 한다.


무엇을 먹든 입든 하든 목적을 따져보라. 육신이 원하는 대로, 환경이 허락하는 대로, 현실이 만들어지는 대로 생각 없이 하는 자를 마귀가 얼마나 마음대로 제 것처럼 사용하고, 정욕으로 쓰는지 판단해 보라.


하나님이 직분자에게 준 사명이 있다. 직분자들이 하나님이 주신 직분을 알고, 직분의 내용대로 사명을 감당하면, 교회의 활동력은 엄청날 것이다. 그런데 직분을 그저 맡아가지고만 있다면,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쫓겨날 수밖에 없다.


직분은 교회에서 가장 낮은 하인이라는 뜻
작년 토고 집회 때 일이다. 오전에 목회자세미나를 해야 되는데 비행기가 고장이 나서 뜨지 못해 오전 집회가 펑크 나고 말았다. 가슴이 미어터지는 것만 같았다. 저녁 집회도 펑크 날까 봐 속으로 발을 동동 굴렸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도 주님의 일에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이 있고,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주님 일에 무한한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날 저녁 평신도와 목회자 등 수만 명이 모이는 광장에 설교하러 강단에 섰을 때, 비록 목회자세미나 한 타임은 못했지만, ‘내가 목숨을 걸고 설교하다 여기서 죽자’는 각오로 말씀을 전할 때, 모슬렘들이 “오늘 대한민국에서 온 윤석전 목사가 모시고 오신 그 예수가 나를 고쳤습니다. 나는 알라신 버리고 예수 믿기로 작정했습니다”라며 현장에서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인 수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또 불치병에서 고침받은 자가 얼마나 많이 간증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정말로 주님의 일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이 돼야 한다. 직분자들은 교회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적든 크든 전부가 다 주님 일이 내 일이여야 한다. 그렇지 않은 자들은 주님의 십자가 공로와 아무 상관없는 자들이나 다름없다.


성경에 소명(召命)과 사명(使命)이라는 말이 나온다. 소명은 주님께 부르심을 입을 때, 사명은 보내심을 받을 때 쓰는 말이다. 부르심을 입을 때는 소유를 포기한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부를 때 배와 그물을 버렸다. 마태를 부를 때 세금 받는 모든 삶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다. 엘리사를 부를 때 성밖에서 밭을 갈다가 소 열두 겨리를 버려두고 엘리야를 좇았다. 이처럼 부르심을 입을 때는 소유를 포기한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주가 쓰자고 할 때 시간도 포기 못 하지 않는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주님의 일에 내 몸도, 시간도, 재물도 써야 하는데, 몸 바쳐야 할 때는 안 된다고 하고, 진짜 시간 바쳐야 할 때는 시간 없다고 하고, 진짜 물질 바쳐야 될 때는 돈 없어서 안 된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사치를 다 부리고 살고, 내 쓸 것 다 쓰고 살아도, 주를 위해 쓰려면 쓸게 없다고 한다. 주님은 이 세상 만물을 주시고, 자기 목숨도 주셨는데, 이 분 앞에 아까운 것이 있는 사람은 직분 받으면 안 된다. 은혜 입은 자는 주님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교회의 중직이라면 큰 직분인데 직분이 클수록 직분 속에 나라는 존재는 없어야 한다. 직분의 머슴이요, 직분의 일꾼이요, 직분의 요구대로 사는, 직분이 사명임을 알아야 한다. 직분의 원어는 디아코너스다. 교회에 가장 낮은 하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장로, 권사가 하인 노릇 하는가.


교회는 명예 아닌 오직 일꾼만 있어야
성경은 거룩하라, 선하라, 의로워라, 신령하라,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한다. 이것이 성경의 5대 강령이다. 이런 하나님 말씀 앞에 억지로 흠 없는 사람 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흠 없이 살지 않고는 양심상 주님의 피 공로 앞에 안 되는 사람이 돼야 한다.


교회에는 명예가 없어야 한다. 오직 일꾼만 있어야 한다.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명예가 아니라 일꾼일 뿐이다.


직분자를 뽑을 때, 성령이 충만한 자를 뽑으라고 했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말은 성령이 내 안에서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만한 권리를 가지고 자기 사환으로, 자기 종으로, 자기 일꾼으로 자기 마음대로 쓸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직분은 거룩한 것이다. 그런데 거룩하지 못한 사람이 거룩한 이름을 가졌을 때 얼마나 거룩한 이름이 망령되는가.


하나님이 볼 때 백 프로 성령이 충만해서 소유권이 피로 산 하나님 것이 된 사람, 그리고 성경 말씀과 성령 감동에 무엇이든지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는 사람, 십자가 피 공로 믿음이 죽어도 그 은혜 앞에 거역할 수 없는 신앙양심 가진 사람을 뽑아야 한다.


직분은 하나님이 일을 하라고 피로 사신 자에게 주신 귀한 직분인데, 돈 따라가다가 결국은 지옥 간다. 돈을 사랑함이 자기 믿음에서 타락시키고, 양심을 찔러 저주 안에 몰아넣는다고 했다. 말세에는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배반하며 무서운 날이 온다고 했다. 지금이 그런 때다. 정신 차려야 한다.


우리는 사단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일은 “아들은 죽여도 너를 살려 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죽을 짓만 하는가? 한 사람 지옥에 데려가기 위해서 수많은 세상풍속으로 유혹하고 수많은 음란과 간음으로 역사하고, 수많은 육신의 소욕과 정욕을 갖게 하고, 지옥 보내려고 수없이 수단을 부린다.


장로 하나 음부의 권세 앞잡이로 만들면, 그 교회는 다 죽일 수 있다. 그러니 교회의 실권자 되지 마라. 교회의 실권자는 성령이시다.
교회를 맡길 때는 그만한 그릇이 되니까 맡기는 것이다. 영혼을 살릴 생명이 있으니까 맡기는 것이고, 십자가 피 공로를 나눠줄 수 있으니까 맡기는 것이다. 예수 정신을 가졌으니까 맡기는 것이다. 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


영생의 말씀이 있는 교회는 반드시 부흥

영생의 말씀이 있는 교회는 반드시 부흥한다. 성령의 역사가 파도를 친다. 이곳 직분자들은 성령으로 다 충성하게 돼 있다.
우리 교회 남전도회장, 여전도회장에게 담임목사가 지나가는 말을 해도 한 번도 거역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기도하고 성령의 감동에 따라 꼭 해야 할 말을 할 때 단 한 번도 거역한 사실이 없다. 목사를 통해서 성령이 피로 사신 교회를 치고 계신다. 성령은 거역하면 사함이 없다. 성령의 소리는 옳기 때문에 진리 안에서 기쁨으로 자유하게 순종한다.


여러분은 왜 직분을 가지고도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가? 소임을 다하지 못할 때 주의 날에 심판을 어떻게 피하겠는가? 재림의 날 주님 앞에서 한 달란트 받은 자가 쫓겨나고 미련한 다섯 처녀가 버림받고 왼편에 있는 자들이 마귀와 더불어 영원한 불에 들어갈 때 당신은 어느 편에 서겠느냐? 그런데 이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 안 하면서 왜 예수 믿고 왜 직분을 맡는가. 주님은 계속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슬프게 하지 말고 아프게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교회에서 똑똑한 체, 잘난 체, 아는 체 하지 마라. 그저 시키는 대로 하고, 일거리를 언제나 찾아서 하라. 교회에서 장로나 권사 세우려고 투표해보면 일을 열심히 하느라고 소리를 내는 사람은 떨어진다.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게 이유다. 일을 해내기 위해서 생각이 많고 생각이 빠른 사람은 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우리 교회에서는 어떻게든 일하려고 하는 사람을 뽑는다. “이 사람은 안 됩니다” 해도 나는 시킨다. 교회는 가만히 있는 곳이 아니라, 죽도록 충성하는 곳이다.


성경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 믿음이 충만한 사람, 칭찬받는 사람을 뽑으라고 했다. 일 하지 않고 칭찬받은 사람 있는가. 일 안하는 사람이 믿음 있는가. 일 안하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에 따라 성령이 충만할 수 있나. 이런 자격을 갖춘 자에게 직분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자격도 없는 자들이 받아서 직분을 남용하고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가지고 있다가 심판받고 지옥 가지 말고 받았거든 죽도록 충성하기 바란다.


/정리 황연희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63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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