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기초 위에 흔들리지 않는 생각의 탑을 쌓아라

등록날짜 [ 2019-09-26 13:41:47 ]

신앙생활도 생각이라는 길이 하늘나라 갈 때까지 확실해야 한다

푯대를 향해 갈 생각이 없으니까 신앙생활을 우물쭈물하는 것이다



<사진설명> 지난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예루살렘성전에서 열린 추수감사절 축복대성회에 참석한 성도들이 윤석전 담임목사가 전하는 생명의 말씀을 듣고 있다.   


영적인 푯대를 따라가는 생각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생명이냐 사망이냐가 결정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고 했다. 육신의 생각을 가진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요, 하나님의 생명의 생각을 가진 자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산다는 것이다. 영원히 사는 생명의 생각을 성경에 기록해서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이니 너희도 이 생각에 동의하고 받아들여서 영원한 생명으로 살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과연 당신은 생명을 주는 복된 말씀과 주님이 주시는 생명에 생각이 고정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아직도 육신이라는, 세상이 얽어맨 전통(傳統)에 매여 있는 사람이다.


기차는 철로를 타고 사정없이 달려간다. KTX를 운전하는 사람은 철로를 의지하고 거침없이 달려간다. 신앙생활도 생각이라는 길이 하늘나라 갈 때까지 확실해야 한다. 바울같이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고정된 생각이 있다면 얼마나 거침없이 신앙생활 하겠는가? 푯대를 향해 갈 생각이 없으니까 신앙생활을 우물쭈물하는 것이다.


우리는 육신의 생각이냐, 영의 생각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우리는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면 안 된다. 육신의 푯대는 육신이 살아 있을 때까지만 필요하다. 목숨이 끊어지면 끝이다. 영적인 푯대는 영혼의 때까지다. 이렇게 푯대가 분명한데 왜 육신의 생각으로 살려고 하는가.


육신의 생각에 당하지 말라
생각이 없는 사람은 밤낮 집에서 논다. 생각이 있는 사람은 그 생각을 따라 부지런히 일한다. 생각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계속 들어야 하는 이유도 하나님 생각을 갖기 위해서다. 하나님 말씀이 내 생각에서 사라지는 순간 영원한 푯대가 없어진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에 그 생각이 끊어지면 육신의 생각이 나를 장악하여 결국은 영적 생활을 전복(顚覆)시키고 만다. 생각은 이만큼 중요하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진리인 하나님 말씀을 따라 천국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야 한다. 마귀는 흑암의 권세요, 어둠의 주관자다. 마귀에게 생각이 사로잡히면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어두워서 보지 못하면 결국 전복하고 만다. 내가 마귀에 의해 전복되면 육신은 세상에 재미를 느끼면서 세속화되어 가기 시작한다.


한 사람의 현재 인생은 그의 생각이 끌고 온 결과요, 앞으로 남은 인생도 그 사람의 생각이 끌고 간다. 생각대로 산 결과는 천국이든 지옥이든 하나다. 육신은 이 사실을 모르니 자기만 잘 먹고 잘살다 끝나면 그만이다. 육신은 지옥 갈 염려도 없다. 우리는 육신에 당하지 말아야 한다. 육신에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마귀에게 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신령한 성령의 생각으로 굳어지라
말씀을 들을 때는 ‘내가 기도하며 살리라. 성령 충만하며 살리라’ 다짐하다가도 성전을 나가면서 그 생각이 끊어지고 만다. ‘내일 기도해야지’ 하고 미루다가 내일이 오면 ‘에이, 오늘은 아무래도 피곤해서 기도 못 하겠다. 모레부터 하자’라고 한다. 육신의 생각은 이렇게 영적인 일을 계속 연기한다. 정작 모레가 되면 기도할 ‘생각’을 연기할 것도 없이 그냥 기억조차 없어진다. 마귀·사단·귀신이 육신의 생각으로 우리 영혼을 살리는 진리의 생각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고 했다. 우선 말씀을 듣고 알아야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 내 속에서 하나님 말씀이 신앙생활의 진리로 굳어질 때까지 말씀을 들어야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었기에 주일에 물건을 사거나 일을 하거나 여행을 가는 것은 분명히 죄로 알았다. 그 말씀이 내 생각으로 굳어졌다. 군대에서 그렇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주일예배 불참은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군 복무 중 일어난 일이다. 주일인데 내무사열을 오전 10시에 한다고 지시가 내려왔다. 주일 예배는 오전 11시였다. 교회가 부대 밖에 있어서 교회에 가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대대장이 내무사열하러 정확히 오전 10시에 도착해야 하는데 시간이 돼도 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상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교회에 가면 탈영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도저히 더 기다릴 수 없어서 선임하사에게 “선임하사님!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소리쳤다. 그랬더니 “빨리 다녀와!”라고 했다. 아마도 화장실 다녀오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부대에서는 내무사열이 시작돼도 내가 돌아오지 않으니 큰일이 났다. 대대장이 와서 내 자리가 비어 있는 걸 보고 어디 갔느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할 사람이 없었다. 그날 교회 갔다 와서 거반 죽다시피 맞았다. 그렇게 맞을 줄 알면서도 왜 교회에 갔을까? 어렸을 때부터 교회 안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내게 확고히 고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녁마다 ‘전교인 매일 기도회’에 와서 2시간씩 기도 안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고정되어야 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안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고정되어야 하고, 교회에 일거리가 있을 때 내가 충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고정되어야 하고, 누군가 시험 들면 내가 가서 심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고정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으로 생각을 세팅하라
우리는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진리 안에서 흔들릴 수 없는 굳은 믿음을 가져야 감옥에 갇혀도, 매를 맞아도, 헐벗어도, 고통을 당해도, 가난해도, 욕을 먹어도, 핍박을 받아도, 돌을 맞아도 바울처럼 끝까지 신앙을 지킬 수 있다. 사도 바울이 참수(斬首)를 당할지라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것은 생각이 요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이 복을 받아야 한다. 복 받을 생각이 내 안에 있으면 내가 복 받은 사람이 되고, 죽을 생각이 내 안에 있으면 죽을 사람이 되고, 저주받을 생각이 내 안에 있으면 저주받을 사람이 된다. 그러니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가. 성경은 생각의 중요성을 여러 군데 다루고 있다. 마귀가 뱀을 이용해 하와의 생각을 바꾸는 것을 보라. 하나님께서는 분명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다. 선악과를 먹으면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라고 말하는 하와에게 “아니야. 너희가 절대 죽지 않아.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까 봐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거야” 하고 생각을 바꿔 버린다(창3:4~5). 영적인 생각이 육의 생각으로 전환하는 순간에 생명이 죽음으로 바뀌는데도 인간이 전혀 모르게 역사하는 마귀의 지능이 얼마나 대단한가. 그런 마귀역사가 감히 내 생각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면 항상 성령 안에서 보호받아야만 한다.


생각이 중요한 영적 재산이다
회심하기 전에 바울은,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니 신성 모독죄로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독했으니 유대교의 법대로 죽여야 하고, 예수를 따르던 자들도 마땅히 다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바울을 예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친히 부르셨다. “사울아, 사울아.” 강한 빛이 함께 쏟아지는데 눈에 부딪히자마자 눈이 멀고 말았다. 주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사울의 생각도 뒤집어진 것이다. 생각도 완전히 바뀌었다. 과거 콘크리트 같이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완악한 생각이 무너지고 예수가 누구신지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그 이후로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하는 순간까지 평생 주님과 생각을 같이하는 동역자가 됐다.


생각을 바꾸는 진정한 회개를 하라
시편 51편은 다윗의 회개를 담은 시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범할 때 편법을 썼다. 편법을 쓰면 하나님이 인정하리라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행위를 죄로 여기셨다. 다윗은 자기를 지키는 충신 우리아를 전쟁 최전방에 내보내 죽이는 살인까지 저지르면서 우리아의 아내를 합법적으로 취하려 했다. 하나님은 편법임을 다 아셨고 무섭게 진노하셨다.


다윗은 양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지만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 다윗은 회개해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회개를 받지 않으셨다. 회개는 그저 말로만 “주여,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바꿔서 다시는 그와 같은 행동을 하지 말아야 회개가 된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의 회개가 분명하고 용서해 주면 다시는 과거 행동을 안 할 것이라는 중심을 보셨다. 그래서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어 “왕이여, 하나님은 제사를 원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가슴을 찢는 상한 마음을 원하십니다”라고 전했다. 다시 말해 과거에 저질렀던 죄를 지긋지긋하게 생각하고 완전히 돌이킬 마음을 원하신다는 말이다. 과거 생각을 찢어서 내버리라는 말이다.


그리스도라는 기초를 잘 세우라
어릴 적, 주일에 일을 안 한다고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 집을 손가락질했는지 모른다. “저 집은 말이야, 농번기에도 주일에 일하지 않아서 농사지은 거 전부 다 비에 떠내려가고 썩고 쫄딱 망한 집구석이야.” 동네 사람이 아무리 말해도 어린 나부터 형님들과 어머니까지 누구 한 사람 생각을 바꿀 마음이 없었다. 다 망했다 해도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 살아 있는 한, 내 영혼은 살아 있는 것이다. 살아 있는 생각을 바꿔서 내 영혼을 죽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성경 모든 말씀이 어떤 때는 질책도 하고 야단도 치고 권면도 하고 축복도 하지만 말귀를 알아듣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생각을 올바로 받아들인다. 그런 하나님의 생각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하나님의 생각이 내 안에 두텁게 만들어진다. 그러면 세상 어떤 파도가 쳐도 무너지지 않는다.


반석 위에 교회를 짓는다고 했다. 기초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나는 군대에서도 예수를 별나게 믿는다는 말을 들었고 직장에서도 예수를 유난히 믿는다는 수군거림을 들었다. 한 번 정한 생각이 무너지지 않았기에 그런 말을 듣는 것이다. 생각이 없으면 지킬 것도 없다. 생각을 정리해서 그리스도라는 기초를 잘 세우라. 나를 위해 피 흘려 죽으시고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하셨다는 믿음의 기초 위에 흔들리지 않는 생각의 탑을 쌓아라.


정함이 있는 생각이 내 영혼을 지킨다

목회를 시작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돈을 쌓아 놓지 않겠다고 나 자신과 다짐했다. 호의호식하려고 돈을 쌓아 놓지 않겠다는 생각이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았기에 돈에 욕심이 없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 6:10)라고 했다. 보면 무조건 갖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 돈이다. 모든 욕심의 근원이 돈이기에 돈을 철저히 경계한다. 욕심이 있다면 한 영혼이라도 더 살려서 천국 보내야 한다는 욕심만 가득하다. 한 사람도 지옥에 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 정함이 있는 나의 생각이다.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천만 가지 걱정이 있어도 어느 날 회개하고 성령이 충만하면 태산같이 크던 걱정이 말끔히 없어지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생각은 이렇게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 생각에 정함이 없는 사람은 악한 영이 생각의 기초를 헐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더는 예수 십자가의 피 공로가 믿음의 기초가 아니다. 설교는 들어도 그저 전통적 종교적 행사로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생각에 정함이 없이 보는 대로, 듣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 철없는 사람이다.


생각에 정함이 없게 하는 것은 마귀·사단·귀신 역사다. 악한 영은 내 영혼에 무관심하도록 한다. 생각을 쪼개서 흩어지게 하는 마귀를 내 안에서 내쫓아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망각하게 하고, 은혜를 망각하게 하고, 좋은 생각을 망각하게 하고, 좋은 생각대로 가는 사람의 길을 전복해 파산시키는 자가 악한 영의 역사다. 신앙생활은 살려고 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정함이 있는 생각만이 나를 살릴 수 있다.


/특별취재팀



위 글은 교회신문 <64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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