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믿음은 기도에 힘쓴다

등록날짜 [ 2021-01-28 19:14:06 ]

야고보서 5장 13~18절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하나님께서 도우실 조건은 기도인데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데도
끝까지 문제 끌어안고 내놓지 않으면
주님이 문제 해결 못 해 주셔

어떠한 불가능한 문제든지 주님이
해결해 주신다고 완전히 믿고 맡겨야
주님이 “구하라 주리라” 약속하신 대로
기도 응답의 약속 이행하실 것

 
영육 간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길, 예수
하나님은 자비하신 사랑으로 일하시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자기가 지으신 사람에게 주셔서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만물 지배권은 절대적인 것이었습니다(창1:28).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배신하여 불순종했기에 만물을 지배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3:17~19).


씨를 심으면 우리 인간에게 풍요로운 열매를 내도록 하나님이 지어 주신 땅은,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해 저주를 받게 되었고 그 결과 인간은 수고하고 애써야만 겨우 그 소산을 얻어 먹고살게 됐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이 땅에서 먹고살려고 몸부림을 치지만, 세월이 지나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이 땅에서 먹고살려고 몸부림쳤던 모든 일이 다 소용없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에 불순종한 죗값으로 “정녕 죽으리라”(창2:17) 하신 하나님 말씀대로 자기 영혼도 영원한 죽음을 피하지 못하는 절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곧 지옥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로 인해 인간은 영육 간의 저주를 받게 됐습니다.


죄가 인간을 지배하는 순간부터 인간이 영육 간에 당할 저주와 멸망을 해결할 길은 세상에서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영육 간에 당할 저주와 멸망을 해결해서 구원해 주시려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죄로 오는 저주와 멸망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요 수단입니다(마1:21, 요3:16, 요14:6, 갈3:13).
우리가 그 예수를 만난 것이 얼마나 천만다행이고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이 엄청난 복을 받고도 불평불만하고, 세상 일이 안 된다고 하나님을 원망한다면 자신이 아직도 죄에서, 저주에서, 파멸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경험이 없거나 나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찔려서 내 허물을 해결했고, 예수가 상해서 내 죄악을 해결했고, 예수가 징계를 받아서 내가 받을 징계를 해결했고, 예수가 저주를 받아서 내 저주를 속량했고, 예수가 채찍에 맞아서 내 질병을 고쳤고, 예수가 피 흘려 죽으셔서 내가 지옥 갈 죄를 해결해 영생을 주시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가 다 해결해 주셨는데, 이 세상에서 육신의 일이 좀 안 된다고 하나님을 원망한다면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영육 간의 길을 해결할 단 하나의 길이요, 수단임을 확실히 믿는다면 영육 간에 고통을 당할 때 해결해 주실 예수를 뜨겁게 열망할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로 주님을 일하시게 하라

이 세상에서 불가능한 문제를 만나 ‘아! 나는 대책이 없구나’, ‘길이 없구나’, ‘희망이 없구나’ 절망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예수는 “네가 가진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도로 내놓으라”고 하십니다. 단, 확실하게 문제를 주님께 맡기면 해결해 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만 그 문제를 듣고 해결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로 계실 때, 영육 간의 절망적인 고통을 주님께로 가지고 나오는 모든 자에게 그 즉시 완전무결하게 해결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 사람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예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께 데리고 가면 치료받을 수 있다고 확실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과 들것에 실려 온 병자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셨다는 말은, 예수께서 중풍병자를 현장에서 고칠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을 그들에게서 봤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중풍병은 죄에서 온 것이요, 죄가 저주가 되어 중풍병으로 나타났으니 ‘죄 사함을 받으라’고 먼저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후에 예수께서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시자 중풍병자가 멀쩡하게 일어났고, 많은 무리가 이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마9:1~8). 이 중풍병자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기도했거든 이미 나은 줄로 믿고 행동해야 합니다.


또 귀신 들려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을 때도 예수께서는 즉시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마12:22). 또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 기타 여러 병자를 데리고 왔을 때도 고쳐 주셨습니다(마15:30~31). 각종 수많은 문제를 가진, 자기 스스로 올 수 없는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당신이 고치려면 지금 여기서 고칠 수 있습니다’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께 내놓았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주님이 해결하실 것을 믿음으로 문제를 내어놓고, 책임은 주님이 지시고 나는 해결받아서 자유한 것이 기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밤새도록 기도해 놓고도 ‘기도한다고 되겠어?’라며 그 문제를 도로 가지고 갑니다. 주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분명한 믿음은 간곳없고, 실컷 기도하고도 주님이 응답해 주시기도 전에 그 문제를 다시 들고 가 버리는 것입니다. 시작부터 믿음으로 문제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그냥 기도해서 위로나 받고, ‘응답되면 좋고 안 되면 말지’ 하는 마음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주님은 전지전능하시기에 우리의 고통이나 문제를 억지로 빼앗아갈 수도 있지만, 인격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기도해서 네 문제를 내 앞에 갖다 놓아라. 네가 문제를 놓고 가면 내가 해결할게.” 그런데 그 문제를 도로 끌어안고 가지고 가면서 ‘기도해도 되는 것도 없네, 주님이 살아 계신다는데 믿을 수가 없네’라고 한다면 전능한 하나님을 무능한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가리지 마십시오.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것은 맡길 만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만 원짜리 물건을 사야 하는 사람이 계산대에 가서 “내가 만 원을 내면 만 원짜리 물건을 줄 줄로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믿는다는 말을 할 필요 없이 그냥 만 원을 내고 그 물건을 가지고 오면 됩니다. 이와 똑같이 믿음의 기도는 주님이 나를 고칠 수 있다고 믿고 내 문제를 주님께 갖다 놓으면 주님이 해결해 주시고 나는 해결받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믿어도 되는 것도 없네’라고 말합니다. 될 만큼 안 믿으니까 그렇습니다. 만 원짜리 물건을 사고 싶은데 오천 원밖에 없다면 사러 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천 원으로 만 원짜리 물건을 사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듯, 주님이 일하실 만한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는 게 당연합니다. 응답받으려면 주님이 일하실 만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확실한 믿음을 보고 역사하시는 주님
예수께서 게네사렛 땅에 가셨을 때도, 사람들이 침상에 사람을 메고 왔습니다. 예수께 가면 어떤 병이든 상관없이 해결받는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기에 병자를 데리고 온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의학적으로, 세상의 물질문명으로, 인간의 수단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가능이 있습니까? 주님은 당신의 불가능한 문제를 듣고 해결하시려고 당신 안에 계십니다. 이분께 맡기고 내가 손을 떼면 주님은 일하십니다. 게네사렛 사람들도 주님 앞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을 때, 데려다만 놓으면 해결된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도 낫는다는 확실한 믿음이 병자들을 성하게 했습니다.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라도 예수의 옷자락이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막6:55~56).


마가복음 5장에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병들어서 예수께서 고쳐 주러 가십니다. 길을 가시던 도중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구원을 얻으리라 확실히 믿고 그 연약한 육신을 들고 와서 어떻게든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져 보려고 합니다. 옷자락에 손을 대는 순간, 혈루의 근원이 말라 깨끗하게 치료받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이 예수님과 몸을 부딪치고 옷자락도 만졌을 텐데, 다른 이에게는 아무런 이적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옷자락만 만져도 고침받을 것이라고 분명한 믿음을 가진 여인만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드디어 주님이 회당장의 집으로 가 보니 딸이 이미 죽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죽은 소녀를 향해 “달리다굼” 하시니 소녀가 벌떡 일어나 앉습니다. 야이로는 딸의 병을 고쳐 달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죽은 것까지 살려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당신 안에 계시다면 기도하라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으십시오. 주님은 소경을 보게 하고, 절름발이를 걷게 하고, 귀머거리가 듣게 하고, 벙어리가 말하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어디를 가시든지 자기에게 맡기고 구하는 모든 것을 현장에서 넘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믿음을 가지고 하느냐, 기도가 응답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을 앓던 백부장의 하인도 시공간을 초월해 말씀으로 고쳐 주셨습니다. 백부장은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라며 자기 하인이 현장에 없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전능하신 말씀대로 즉시 중풍병에서 나을 줄로 믿었습니다(마8:5~13). 예수께서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 하시며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하셨고 그 순간 하인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는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님은 지금 이곳에 계셔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함께하시고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9).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이와 같은 엄청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는 믿음의 관계
당신이 믿음이 없어서 ‘이 문제는 해결받기 너무 어렵고 힘들어’, ‘나는 믿음도 없는데 그런 역사가 일어나겠어?’라며 당신의 문제를 기도로 내놓지 않는다면 얼마나 주님 보시기에 답답한 일입니까. 주님은 당신에게 응답하고 싶으셔서 “문제를 내놔라”, “고통을 내놔라”, “기도로 가지고 오라”고 요청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영육의 고통이라도 ‘내가 주님께 기도해 맡기면 오늘 당장 해결해 주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합니까, 아니면 ‘얼마나 기도해야 응답받을지 모르겠다’며 막연하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이런 기도에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많은 성도가 말로는 “믿습니다” 하면서도 실상 당신의 문제를 기도로 내놓고 당장 해결받으라면 “쉽게 안 될 텐데요”, “지금까지 기도했는데도 안 됐어요”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허공 치듯 하는 기도가 아니라 “구하면 주리라”, “믿음의 기도는 역사함이 크다”고 약속하신 말씀대로 진심으로 기도해 바로 응답받는 대역사를 만들어 낼 만큼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기도해도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하면서 내게 주신 주님이 일할 수 있는 신령한 기회를 놓치고, 인정하지 않고, 기회조차 만들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도 상대방이 믿어 주지 않을 때 자존심이 상하는데, 우리가 주님을 믿지 않는다면 주님이 우리에게서 믿음의 일을 하고 싶으실까요. 주님을 확실하게 믿어야 ‘나를 저렇게 믿어 주는데 실망시키면 안 되지’ 하시지 않겠습니까. 주님과의 관계는 믿음의 관계요, 내 문제를 해결해 주실 관계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자기 명예를 걸고 “내 이름으로 구하라 내가 시행하리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오늘 주가 내게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진실함과 믿음의 기도로 응답받을 권리를 소유하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기도를 보십시오. 예수께서 육체에 계실 때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들으심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또 더욱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피 방울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히5:7, 눅22:44). 우리도 문제가 있을 때 “내 문제는 하나님만 해결해 주실 수 있고, 해결해 주시지 않으면 이 고통을 또 당해야 하니 오늘로 이 고통을 종결해 주셔야 합니다”라고 애타게 기도해 하나님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런 간절함이나 진실함이나 믿음 없이 그저 앉아서 ‘주님이 계시면 들으시겠지’라고 기도한다면 이방인이 하는 기도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어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셨기에 부르짖어 기도할 만큼 애절하고 애통한 우리의 사정을 아십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29:12~13).


우리가 대체 무엇이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무엇을 달라고 할 권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분이 우리에게 권리를 허락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해서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니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3~14). 주님이 우리가 기도해서 응답받을 조건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육 간에 몰아닥친 절망적인 고통을 해결자이신 하나님께 운반하는 믿음의 수레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불가능과 고통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려고 그 조건으로 기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도울 조건은 기도이니 믿음의 기도를 하라”고 하시는데, 끝까지 문제를 끌어안고 내놓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주시겠습니까.


본문에도 “병든 자가 있느냐? 기도해라. 죄를 범한 자가 있느냐? 기도해라. 내가 해결해 줄게” 하셨습니다. 그가 나에게 구하라고 하셨으니 그 약속의 조건을 들고 기도하기에, 그 약속을 부여하신 의로우신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셔야 하고, 약속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독생자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찔리고 상하고 징계받고 채찍에 맞고 저주받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여서 나를 죄와 사망과 지옥에서 구원해 주시겠다는 선지자로 하신 약속도 이루어 주셨는데, “구하면 주리라” 하신 약속의 응답을 어찌 안 이루어 주시겠습니까. 이 약속은 내가 기도할 수 있는 조건이요, 응답받을 수 있는 권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으니 응답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환란과 핍박의 시대요,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받는 시대이기에 우리는 내 영혼의 때를 위해, 주님이 재림하실 날을 위해, 질병의 고통과 영적인 죄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수많은 고통을 주는 마귀 사단 귀신의 역사를 이기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주님 자신이 주겠다고 하신 약속이기에 우리가 기도하려고 무릎 꿇을 때 벌써 주님이 긴장하며 기도에 응답하려고 듣고 계십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곳에는 반드시 주님이 계시고, 반드시 응답과 해결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예수가족이여, 오늘 당신이 가진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평생을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과거에 범죄한 것도 기도해 해결받고, 오늘의 문제도 기도해 해결받고, 앞으로 닥칠 수많은 문제도 미리 기도해 해결받아 고통 많은 인생길을 평지로 만들어 대로로 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84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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