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영적 생활1·42] 하나님의 심정을 알라

등록날짜 [ 2019-04-11 16:55:08 ]

속 썩는 하나님의 마음

인간은 하나님의 속을 썩이기로 작정하고 태어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고집부리고 아버지의 집을 나간 탕자 같은 모습입니다. 어쩌면 탕자가 아버지의 속을 태운 것보다도 하나님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이가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야단칠 때 보면, 속을 썩고 또 썩다가 결국 못 견딜 때 속상한 마음을 폭발시킵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한없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그 자식이 잘못을 저지르면 달라집니다. 마치 자기가 낳은 자식이 아닌 것처럼 야단을 치기도 합니다. 그렇게 모질게 야단을 치는 부모의 속은 더 새카맣게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자식은 모릅니다. 부모가 속을 썩어 가면서 타이르고 호되게 꾸짖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자기 속을 썩어가면서 그렇게 야단칠 리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할 때마다 매로 때리고, 야단을 치셨습니다. 광야에서도 40년 동안 훈련시키셨습니다. 그 여정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때문에 얼마나 속을 많이 썩으셨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들을 그냥 쉽게 들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일을 잘 지켜라(출20:8), 십일조 드려라(말3:10), 예배 시간 지켜라(요4:24), 죄짓지 마라(롬6:12), 기도해라(살전5:17), 전도해라(마28:19~20), 충성해라(계2:10), 감사해라(살전5:18), 죄를 이겨라(롬12:21), 세상을 이겨라(요일5:4)”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들을 읽고 들으면서 안타까워하시는 주님의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서 복 받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애가 타도록 전해 주시는 주님의 심정을 모르는 것이 무지입니다.


부모가 자식이 말을 안 들어 “이놈아!”라고 했다고 합시다. 부모는 애가 터져서 그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며 속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마음을 가지고 한 말입니다. 그런데 철없는 자식은 “이놈아!”라는 소리는 들어도 그 말에 들어 있는 부모의 안타까운 심정까지는 듣지 못하지 않습니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부모의 심정보다 더하십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심정을 만나야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고난’이라고 하면 ‘예수께서 날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피 흘리셨구나! 예수께서 고난당하셨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자기 아들이 십자가에서 잔인하게 살 찢고 피 흘리는 모습을 지켜보셔야 했습니다. 아들을 그렇게 희생시키기까지 우리가 신앙생활 잘하고 믿음 안에서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진실한 마음이 ‘예수의 고난’이라는 그 한마디 말씀 안에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가슴을 아프게 한 자들입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들이기 때문에 평생 그분 앞에 할 말이 없는 자들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말씀을 읽을 때마다 우리 때문에 속 썩으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받아들인다면 우리에게는 감사의 통곡과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리라는 사모함이 넘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신앙생활 하다가 십일조를 안 드리거나, 주일을 안 지키거나, 예배를 안 드리거나, 기도를 안 하거나, 해야 할 충성을 안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즉각 깨닫게 하시고 간섭하시는 것이 정상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관심이 없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간섭에서 제외되면 자기가 아무리 똑똑하고 잘났어도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무언가 잘못했을 때 설교 말씀을 듣고 즉각 ‘아이쿠!’ 하고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보면 주위 사람들에게 “그 사람 그냥 놔둬.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취급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그 말씀을 자기 것으로 듣지 않는 사람입니다. 목사가 개인적으로 그 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가르치면 좋겠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고 자기 잘못을 발견하고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설교를 듣고도 자기를 고치지 못한다면 그는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요, 자신에 대해 아주 무관심한 사람입니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배드리는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그 시간에 통째로 주시는 말씀입니다. 1리터의 물을 나누어 마시는 것처럼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말씀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닙니다. 설교를 들을 때 ‘아, 저 말씀은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해 나에게 하시는 책망이구나’ 하며 듣고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나님에게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 밖에 버려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속을 썩지 않으신다면 나를 자녀 삼으시기 포기하신 것이니 두려운 일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주님의 마음을 알고 그분의 뜻에 맞게 행동함으로써 그분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간섭받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철저하게 붙들리는 것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어떤 의미입니까? 우리 때문에 한편으로는 속 썩으시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끝까지 우리를 붙들고 놓지 않으시니 하나님의 사랑과 아픔은 늘 공존하는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 속 태운 것보다
주님 마음 더 아프게 하는 이가
인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아
신앙생활 잘 한다는 것은
주님 마음 알고 행동하는 것
설교 듣고도 고치지 못한다면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

위 글은 교회신문 <61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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