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물 세미나…십일조와 속건제] 하나님 것을 떼어먹는 도둑 절대 용납 안 해

등록날짜 [ 2020-03-03 17:25:45 ]

본문) 레위기 5장 14절~16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그릇 범과하였거든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너의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수양을 떼 중에서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려서 성물에 대한 범과를 갚되 그것에 오분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수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


본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을 허락 없이 남용(濫用)하거나 오용(誤用)하거나 도둑질 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그에 해당하는 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배상 청구에 응하지 않으면 그에 따르는 심판이 매우 위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명령’입니다. 누구라도 감히 어길 수 없고 절대적으로 심판에 이르고야 맙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 하신 일을 ‘내 사정상 어쩔 수 없어요’라고 해서 그 말씀을 범한다면, 그 뒷감당을 어찌 하겠습니까? 육신이 끝난 다음, 내 영혼이 감당해야 하는데 그 처절한 심판을 내 영혼은 절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2:1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 하신 것은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의 것이 아니니 우리가 임의로 손댈 수 없습니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십일조를 어떻게 내야 하는지 어머니께 여실히 보고 배웠습니다. 우리 집과 아랫집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거의 붙어 있었습니다. 아랫집은 우리 집보다 훨씬 잘 살았습니다. 그 집에서 하지감자나 밀가루개떡을 찌면 어김없이 우리 식구가 나눠 먹을만한 양을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그걸 받아들고 “고맙습니다”라고 깍듯이 인사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우리 형제들은 배가 너무 고프니까 빨리 먹으려고 어머니가 들고 계신 음식에 손을 댑니다. 어머니는 예의 없는 행동을 방관치 않고 야단을 치십니다. 그런 다음, 어머니는 뒤주에 든 보리를 조금 집어 면주머니에 넣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왜 그러시는지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엄마, 왜 보리를 주머니에 넣어요?” 그러면 어머니는 조곤조곤 말씀해 주십니다. “성경에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어. 이웃에서 음식을 가져오면 그 십분의 일을 넉넉히 하나님께 먼저 구별해 드린 다음에 우리 식구가 먹어야 하는 거란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저는 늘 이웃집에서 무엇을 가져오든 반드시 십분의 일은 하나님께 먼저 드려야 되는 일로 알고 지키며 자랐습니다.


성장해서 성경을 읽어 보니, 하나님의 것을 떼어먹는 짓이 도둑질인 걸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것은 우리가 임의로 쓸 수 없기에 하나님의 것을 내 임의로 쓴다면 그것이 바로 도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하나님의 것을 우리에게 도적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물품을 그릇 범죄하였거든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라”(레5:15)고 했습니다. 속건제(贖愆祭)는 하나님의 것을 손대서 하나님과 관계가 상당히 좋지 않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드리는 예물입니다. 속건제를 드릴 때는 ‘너희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상당한 흠 없는 수양을 떼 중에서 끌어다가 속건제를 드려서 성물을 오·남용하거나 훼손한 죄를 갚되 그것의 오분의 일을 더해서 제사장에게 갚으라’고 했습니다. 오분의 일이면 20프로 이자입니다. 하나님의 성물에 대해서 범한 죄를 흠 없는 수양을 잡고 추가로 오분의 일을 더해서 갚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은 형사처럼 죄인을 잡고 검찰처럼 추적해서 죄를 밝힌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정죄는 “나는 이 양처럼 죽임을 당해야 마땅한 죄인인데 양이 대신 내 죗값을 짊어지고 죽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께서 피 흘려서 내 죄를 담당하고 나를 죄에서 자유케 했으니 그 진리를 알지니 그 진리가 우리를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5:17)고 하셨습니다. 율법에서는 살인하지 말라 했지만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요일3: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완하신 율법은 마음속, 생각 속에서 일어나는 죄까지 다 결박했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완전케 만들어 인류를 다 죄로 결박해 놓고 그 죄를 짊어지고 자기가 결박당해 죽으실 때, 우리는 죄의 결박에서 해방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라는 것은 이 자유가 진정한 자유니, 또다시 부자유한 자가 되려 죄를 짓지 말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죄에서 자유한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지은 분이십니다. 마음에 하나님께 드리기로 정한 예물은 이미 하나님이 받으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예수가 자기의 죄를 대신 갚아 죄와 저주와 지옥에서 구원하신 구세주이신 것을 알자 자기 속에서 명령하시는 성령의 감동에 따라 전답을 다 팔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모든 재물을 다 바치면 내일부터 당장에 뭘 먹고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땅 값 얼마를 내일을 위해서 감춰둔 뒤, 베드로 앞에 갔습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령을 속인 것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아나니아야, 이게 땅 값의 전부가 맞느냐?” “네, 맞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사단이 가득하여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현장에서 영혼이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게 하나님께 감동된 성물(聖物)을 남용한 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60만 대군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널 때, 제사장에게 앞장서서 법궤를 짊어지고 요단강을 밟게 했습니다(수3:8). 의심없이 하나님의 목소리에 순종해 흐르는 요단강을 밟았습니다. 그 때 흐르던 물이 멈췄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가니 큰 여리고성이 버티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군대를 거느리고 여리고를 돌아라”고 합니다. 오늘도 돌고 내일도 돕니다. 칠일째 되는 날, 여리고 성이 무너집니다. 그 다음엔 아이 성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작은 성이어서 쉽게 무너뜨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간단하게 생각하고 전투를 벌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대패합니다. “하나님이여. 어찌 이런 일이 생깁니까?” “여호수아야. 너희 백성 중에 내 것을 도둑질한 자가 있도다.” 제비를 뽑고 심지를 뽑아 아간을 찾아냈습니다. 아간은 전리품인 고급 외투와 은화와 금덩이를 자기 장막에 숨겼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다가 돌로 쳐서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곳이 아골 골짜기입니다. 전투에서 점령한 전리품도 하나님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것을 도둑질해서 자기 소유로 삼자 절대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계속>

/정리 황연희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66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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