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5-09-23 21:48:15 ]
절대적인 기도생활이 무엇이며,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성경 말씀을 찾아가며 알아보겠습니다.
1)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기도, 외식하지 않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마6:5).
2) 응답하실 하나님만 겨냥하여 하나님만 들으시게 기도해야 합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6).
성경에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마6:6)라는 말은 정말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기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사람 앞에 자랑하려고 기도하지 말고,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실 하나님만 겨냥하여 응답 받을 내용을 진실하게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처럼 자찬하는 기도는 응답할 자도 없으며, 기도의 목적과 전혀 상관없는 기도이므로 이와 같은 기도는 하지 말라고 주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무엇에게도 기도하는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다른 어떠한 환경에도 영향을 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말씀하신 ‘골방 기도’입니다.
3) 응답 받을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마6:7).
이방인의 기도는 “혹시 나의 기도를 듣는 신이 어디 있으면 응답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막연한 기도입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기도에 응답하실 하나님을 겨냥하지 않고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목적 없이 허공에 소리치는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기도를 중언부언하는 기도라고 합니다. 이방인들처럼 하나님을 겨냥하지 않는 기도, 자기가 신을 정해 놓고 ‘정말 신이 있으면 어느 신이든 응답하라’는 식으로 정성을 드리며 하는 기도가 중언부언이라는 말입니다. 믿음도 없이, 분명한 대상도 없이 “혹시 하나님이 있으면 응답해 주시오!”라며 허공에다 소리치듯 하는 기도가 중언부언입니다.
어떤 사람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을 중언부언이라고 하는데 이는 옳은 말이 아닙니다. 응답하실 때까지 계속 같은 제목으로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한 과부가 등장합니다. 과부는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불의한 재판장에게 찾아가 해결해 달라고 강청했으나 거절당합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해결받지 않고는 물러설 수 없던 과부는 재판장을 매일 찾아가 같은 요구를 계속 반복한 끝에 결국은 응답을 얻어 내고야 맙니다.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6~8).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만 겨냥하여 응답이 올 때까지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신실하시고 미쁘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겨냥하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명예를 걸고 하신 약속대로 반드시 기도에 응답하는 신실하신 분이니, 응답이 올 때까지 믿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해서 꼭 얻어 내야만 합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91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