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구주 예수를 찬양] 핍박도 먼 길도 성대결절도 주님 향한 찬양 멈추게 못해

등록날짜 [ 2019-03-20 16:47:59 ]



6년째 매 주일 군산서 교회까지 5시간 운전
비록 몸은 힘들지만 마음엔 은혜가 풍성
성대결절도 찬양과 기도로 감사히 극복
핍박하던 남편도 조만간 주님께 나올 듯


찬양대원이 된 지 1년쯤 지난 어느 날, 남편이 메신저로 뜻밖의 사진을 보내왔다. 연세중앙교회 찬양대가 하나님께 영광의 찬양을 올리는 장면인데, 사진 한가운데 인물은 바로 나였다. 핍박하던 남편이 내가 찬양하는 모습을 인터넷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할렐루야!


남편의 핍박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산에서 209km 떨어진 왕복 5시간 거리인 연세중앙교회에 다니고 싶었지만, 비신자인 남편이 허락해 줄지가 관건이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매 주일 서울로 예배드리러 간다고 하면 남편이 어떻게 나올지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내 영혼 살고 싶은 열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주위 분들의 중보기도 덕에 처음엔 반대하던 남편이 간신히 허락을 해 줬다.


윤석전 목사님이 성경 말씀대로 전하시는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서 내 영혼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를 느꼈다. 주일이면 이른 새벽에 출발해서 밤늦게 집에 돌아오지만, 차 안에서 아이들과 받은 은혜를 나누며 돌아오는 그 시간까지 힘든 줄을 몰랐다.


그렇게 1년이 흐를 무렵,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귀에 꽂혔다. “주님의 십자가 피 공로로 은혜받은 분들은 교회 어느 부서에서든 충성해야 해요. 충성은 은혜받은 자의 신앙고백이에요.”


비록 집은 멀지만 찬양대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었다. 찬양대원이 되니 주일이 더욱 분주해졌다. 새벽 3시에 일어나 5시쯤 군산에서 출발해야 8시 찬양 연습에 참여할 수 있다. 저녁 예배 후 찬양연습까지 마치고 귀가하면 자정이 된다. 몸은 힘들었지만 찬양하는 나의 마음은 메마른 땅에 단비 내리듯 은혜가 더욱 풍성했다.


찬양대석에서 처음 찬양을 올려 드린 날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나같이 무지한 자를 죄와 저주에서 구원하신 주님께 찬양으로 영광 올려 드린 감사가 북받쳐서다. 남편의 얼굴이 떠오를 때는 ‘울컥’했다. 하루속히 남편이 핍박을 그치고 주께 돌아오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눈물의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 말이 우리 가정에도 들어맞았다. 남편이 어느새 인터넷으로 우리 교회 예배 실황을 지켜보게 됐고 찬양대에 선 내 모습을 찾아 사진까지 찍어서 보낼 정도로 마음이 풀어진 것이다. 다 주님이 하신 일이다.


찬양대원이 된 지 2년 만에 큰 위기에 닥쳤다. 쉰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아 검사했더니 성대결절에다 ‘성대낭종’이라는 혹이 있었다. 의사는 큰 병원에서 당장 수술해야 한다며 소견서를 써 주었고 수술하면 한 달 동안 말을 못 한다고 했다. 그 기간에 직장도 그만둬야 하고 찬양도 못 부르게 되나 싶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룹장에게 사정을 말했더니 “그럴 때일수록 온 맘을 다해 찬양하세요”라고 권면했다. 그 믿음의 말이 큰 힘이 됐다. 걱정과 근심이 걷히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수술하지 않고 계속 찬양하게 해 주세요”라고 울면서 하나님께 매일 기도하다 보니 어느새 대화할 수 있게 됐고 지금은 예전처럼 기쁘게 찬양하고 있다. 할렐루야!


매주 토요일이면 남편이 차에 기름을 가득 채워 놓고 주일에 아이들과 서울 오가면서 먹을 간식도 미리 사 놓는다. 예배자의 협력자가 된 것이다. 요즘은 “아빠도 함께 예수 믿고 천국 가자”는 큰딸의 말에 남편은 “예수 믿고 천국 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조만간 주님께로 오겠다는 표현이리라.


나는 땀과 눈물과 진실과 감사와 영광의 찬양을 하리라. 주님이 호흡 주시는 날까지 찬양하리라. 이 모든 일을 행하신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린다. 


/황연희 기자


나현정(글로리아찬양대)

위 글은 교회신문 <61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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