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등록날짜 [ 2008-11-25 15:47:10 ]

더 좋은 것으로 예비하신 주님

독일 교회에서 주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느 목사님의 설교하시는 모습을 비디오로 보았습니다. 목숨을 다해 열정적으로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도 지휘를 저렇게 했으면...’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곳에서 지휘의 최고과정까지 마쳤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면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정명훈 선생님을 비롯한 유명한 지휘자도 몇 번 만났지만, 여전히 배움의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습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항상 좋은 것을 준비하시는 주님을 믿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주님의 인도로 연세중앙교회 글로리아 성가대 지휘자가 되었고, 독일에 있을 때 닮고 싶었던 윤석전 목사님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목사님께서 직접 저에게 지휘를 가르쳐주신다는 것이죠. ‘아! 주님이 내게 예비하신 좋은 선생님이 이분이었구나.’ 내 마음속에 있던 은밀한 소망도 주님은 아시고 이루어주셨습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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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보석

찬양하는 연세중앙교회 성가대원들의 모습은 그 어느 것보다 아름답습니다. 더 실력 있는 합창을 들을 기회는 많지만 이보다 더 감동적일 수는 없습니다. 눈물의 기도와 눈물의 찬양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엄청난 보화이기 때문이지요.
제가 로마에 있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세계적인 건축가의 말이, 베드로 성당과 같은 건축물은 지금 시대에는 만들 수 없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신앙으로 만들었기에 그와 같은 세계적인 작품이 나왔지만 지금은 아무리 돈을 많이 주고 유명 건축회사에 의뢰한다 할지라도 그 당시와 같은 정성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찬양도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다해 부르는 찬양, 그 찬양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석입니다. 우리가 찬양하는 가운데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며,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찬양을 드릴 때 그 찬양이 바로 ‘찬양’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할렐루야!




즐겁고 감격스러운 찬양

제가 열아홉 살 때 잠깐 교회에 나간 적이 있는데 그 땐 교회가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그저 친구를 만나려고 다녔습니다. 그후 10년의 세월이 지나니 마음이 강퍅해지고 알 수 없는 허전함과 세상으로는 채울 수 없는 그 무언가에 갈급해 있을 때 다시 동네 교회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만족이 없었고 그때까지도 저는 교회가 정확히 어떤 곳인지, 예수가 누군지도 모른 채 책가방만 들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결혼을 하면서 제 신앙생활이 180도 바뀌는 일대 전환기가 왔습니다. 아내와 함께 교회에 다니면서 영적 생활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며 또한 예수님이 날 구원하려고 오셨고 내 죄를 대신 짊어지신 구세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진정으로 예수 믿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 후 오류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옆집 집사님의 인도로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윤석전 목사님의 은혜가 넘치는 말씀은 내 영적 생활에 힘을 주었고 하나님의 끝없는 은혜와 거룩한 복을 알게 하셨습니다. 준비 찬송으로 예배를 시작할 때면 감격에 못이겨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찬양할 때마다 눈물로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찬양에 은혜 받으며 지내다가 성가대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과 걱정되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성령께서 힘든 고비를 넘게 하셨고 이길 힘을 주셨습니다.
요즘은 연습시간이 기다려지고 또 주일 찬양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세상 일에 힘들고 지쳐 있을 때에도 찬양할 때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감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찬양하는 것이 너무 즐겁고 날 구원하신 은혜가 너무나 감격스럽습니다. 위대한 은혜와 복을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주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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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세월을 살게 해주신 주님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삶의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일까? 왜 이리도 내 인생이 꼬여 버렸는지? 하긴 내겐 명석한 두뇌나 특별한 재능도 없고 세상을 아무리 둘러봐도 항상 사면초가였지.’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버렸습니다. 삶이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살고 있을 즈음, 근처 상가 주인의 전도로 연세중앙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비디오방을 12년 동안 운영하고 있었는데 가게로서의 수명도 끝나고 손님도 없어서 장사를 그만 두고 싶었지만 높은 임대료와 그마저도 밀린 상태라 보증금도 못 받고 맨몸으로 나와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어려운 상황 앞에 교회만 오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항상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던 어느 날 새 입주자가 나타났는데 높은 임대료 등 악조건에도 계약을 하였고 저는 권리금 칠천만 원을 받고 가게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또 허리디스크, 좌골신경통, 퇴행성 관절염도 많이 호전되어 생활에 불편함이 없게 되자 ‘아! 이곳에 몸담고 있으면 살 길이 열리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어 교회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의 은혜 보답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성가대에 지원했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성가대원들과의 연습시간은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무엇보다 삶에 소망이 생겨 정말 행복합니다. 이렇게 값진 세월을 보낼 수 있게 되어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주 안에서 더욱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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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신 은혜, 찬양으로 표현합니다

저는 중학생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며, 중학교 2학년 때 방언 은사를 받고 침례도 받고 하나님과의 뜨거운 만남과 성령님과 교제하는 삶을 경험하여 영적인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저의 신앙은 교회를 출석하는 데 의의를 두었고 주일에는 책가방만 들고 다니는 무늬만 신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흰돌산수양관에서 열린 주일학교 하계 성회에 아들과 함께 보호자로 참석하게 되었는데 아들이 천국과 지옥을 보고 방언을 받는 은혜를 체험한 후 저 또한 갈급한 상태였는지라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여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후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연세중앙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저희 가족은 심령을 뒤집는 것 같은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그동안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성령님을 얼마나 모욕하고 무시했는가를 깨닫고 지난 세월의 아쉬움과 범죄함에 눈물과 회개로 주님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은혜 받은 자로서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보답할 것인가?’ 고민하던 중 담임목사님께서 성가대에서 찬양으로 충성할 사람을 찾으실 때 제 아내와 저는 부족하나마 주님을 찬양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성가대를 통해 주를 섬길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느끼고, 내 영혼이 기뻐하는 것을 느낍니다. 또 찬양 연습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 더욱 감사와 영광의 찬양을 올려드리기 원합니다.
성령님의 파도치는 듯한 감동과 감화의 은혜 안에서 온전하지 못한 제가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신부로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의 나라를 온전히 이루어 나가는 주님의 동역자가 되어 영적으로 깨어서 연세중앙교회에서 나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주님만을 섬기며 사랑하기를 소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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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있는 동안 찬양하기 원해

십여 년 전 가을로 기억됩니다. 약속이 있어서 친구의 학교에 미리 가서 친구를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단풍으로 우거진 나무 사이로 낙엽을 밟으면서 학교 나뭇길을 걷자니 인생의 허무함과 곤고함, 앞날의 고민으로 발걸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방송을 듣고 있었는데 찬양이 흘러 나왔습니다.
‘이 험한 세상 나 살아갈 동안 내 주님 가신 길 걸으며 내 주님을 찬양해... 나 호흡 있는 동안에 나 생명 있는 동안에 나 주를 찬양하리라 내게 생명 주신 주님을'
이 찬양에 왜 그리도 나의 마음이 감동이 되었던지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깊은 확신이 다시 솟아나고 하나님께서 나의 앞길을 열어주시리라는 믿음과 함께 마음의 무거운 짐들이 벗어졌습니다.
그 후 예배때마다 이 찬양을 부를 때면 다시 한번 그때의 감동이 느껴집니다. IMF보다 더 어려운 경제위기가 올지라도 나는 주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가가 사랑은 변함없이 나를 그 사랑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식어지고 예배가 형식적으로 변하고 신앙생활에 게으름과 나태가 생길 때마다 찬양은 나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합니다. 기도가 힘들 때 찬양의 가사는 기도가 됩니다. 그 때 이후로 성가대에 자원하여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시 150:6)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내게 목숨이 있는 한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합니다.




‘놀라운 사랑’이 내 고백입니다

2005년은 제 인생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순간으로 반전된 잊을 수 없는 해입니다. 모태신앙인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고3 때 방언은사도 받고 성령 충만하게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면서 세상 문화에 점점 빠져들었고 하나님을 체험하기 전보다 더 악해지고 타락하여 하나님을 잊고 사는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음 한구석엔 ‘다시 돌아가야 할 텐데…’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쉽게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항상 부정적인 생각과 슬픔으로 가득 찼습니다. 심지어는 삶의 허망함이 몰려와 내일이란 것이 없었으면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붙들려 있던 최악의 나날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우연히 연세중앙교회의 주일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준비 찬양 시간부터 예배 송영을 마칠 때까지, 그동안 나보다 더 아파하시며 나를 기다리셨던 하나님의 포근한 어루만지심에 주체할 수 없는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후 예배에 계속 참석하게 되었고, 윤석전 목사님의 뜨겁고 깊이 있는 설교 말씀에 매시간 은혜 받고 회개하며, 황폐해져 있던 제 삶은 차츰 감사와 기쁨으로 변했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에 와서 가장 은혜 받았던 것은 ‘찬양’입니다. 글로리아 선교단의 준비 찬양과 설교 도중에 감동으로 부르시는 목사님의 찬양은 듣고만 있어도 은혜가 되었고 그 진실함이 내게도 전해졌습니다. 또 성가대의 진실한 눈물의 찬양은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받은 은혜에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기에 성가대에 지원하였습니다. 처음으로 불렀던 ‘놀라운 사랑’이라는 곡은 나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보잘것 없는 나를 이렇게 큰 사랑으로 구원해주신 감사와 감격에 한 주 내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나를 이만큼 성장하게 해준 힘은 ‘찬양’입니다. 나를 지으신 목적대로 주님을 찬양하며 삶을 드리기 원합니다. 생각만 해도 너무 멋진 오천 명의 성가대가 이루어지는 날, 그 자리에 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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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신 주를 찬양합니다

우리 가정은 물질과 믿음에 축복을 받아 항상 유복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엄마는 여느 아이들이 만화를 볼 시간에 오빠와 나에게 애니메이션 성경 비디오를 보게 하셨고, 십일조와 헌금의 중요성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너무 일찍부터 세상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대들기 시작했습니다. 또 집을 나가 친구 집을 전전하면서 엄마 카드를 몰래 훔쳐 도난신고를 할 때까지 쓰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십대를 보내고 스무 살이 되어서도 방황의 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온갖 죄는 다 지으면서도 ‘언젠가는 돌아갈 거니까 제 중심만 알아주세요' 하며 내 육신이 좋은 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스물 두살 겨울, 나의 비전을 알고 싶어 ‘한 일주일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하면 알려주시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엄마와 기도원을 알아보다 흰돌산수양관에서 청년성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흰돌산수양관에서 방언 은사를 받았고 16살 때 중고등부성회에 참석해서 은혜 받은 기억에 청년성회에 참석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그동안 어두워 보이지 않던, 더러운 죄들을 죄로 여기지 않던 내 모습, 부모님께 상처만 드렸던 내 모습,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머리로만 알고 있던 내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죽어가던 내 영혼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고 성회를 통해 끊을 수 없을 것 같던 죄악 속에서 건져주셨고 다시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동안 세상과 마귀에게 시간을 빼앗긴 만큼 앞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주님을 섬기고 기쁘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성가대에 지원했습니다. 찬양할 때마다 제가 드린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너무 큰 은혜를 부어주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정말 부족하고 예쁜 구석 하나 없는데 찬양할 때마다 기뻐 받아주심을 느낄 때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온 맘 다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분의 사랑을 영원히 감사하며 찬양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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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히 이길 힘 주실 주님

저는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에는 부적과 달마도가 있었고 초파일이 되면 부모님과 함께 절에 가기도 해서인지 왠지 기독교가 싫었습니다. 그러나 공무원 공부를 위해 서울로 올라오면서 제 삶이 바뀌었습니다. 24년 동안 교회 문턱도 밟아 보지 않았던 제가 우연히 전도되어 우리 교회에 오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목사님의 설교와 교회 분위기가 낯설었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성가대의 찬양이었습니다. 차츰 은혜를 받기 시작하면서 주님께 많은 것을 드리고 싶었지만, 수험생인 저는 물질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사람은 찬양하기 위해 지음 받았고,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찬양을 더 크게 받으신다’는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 받아 바로 성가대에 지원하였습니다.
믿지 않는 가족의 핍박과 시험의 실패로 좌절할 때마다 주님은 찬양을 통해서 넉넉히 이길 힘을 공급하셨습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기도가 잘 되지 않을 때에도 진실한 고백의 찬양을 할 때면 기쁨과 평안이 넘쳤습니다. 저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배가 아파서 갑자기 쓰러지는 병이 있었습니다. 유명하다는 의사도 찾아보고, 좋다는 약도 먹어 보고, 심지어 점을 보고 굿까지 해보았지만, 저의 병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고 성가대 찬양을 하면서 24년 동안 괴롭히던 질병에서 고침 받게 되었습니다. 또 최근에 ‘여리고성과 여호수아’ 찬양을 할 때였습니다. 해결되기 어려운 개인적인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찬양을 하면서 설명할 수 없는 희열과 기쁨이 넘치며 저의 문제들이 견고한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것처럼 해결될 것 같은 확신이 들었습니다. 놀랍게도 며칠 뒤 해결될 것 같지 않던 문제들이 말끔히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성가대라는 귀한 직분을 통하여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에 호흡이 있는 동안에는 성가대 직분을 놓지 않고 찬양하기 원합니다. 찬양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랑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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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하는 자가 받는 복

군대를 제대한 후 부모님의 강권에 의해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목적 없이 교회를 다니던 어느 날 찬양을 하는 도중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순간적인 감정이겠지’ 하며 감정을 추스르고 어느새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찬양하는 자가 받는 복의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주일 오전 예배만 드렸는데 찬양 중에 방언 은사를 받은 후 저녁 예배까지 드리며 예배드리는 시간은 점점 늘어갔습니다. 한번은 금요철야 예배 중이었는데 어떠한 사심도 없이 성도들이 은혜 받기만을 원하시는 담임 목사님의 애틋한 사랑의 심정이 진하게 느껴져 왔습니다. 예배 후 기도하는 중에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뜨겁게 만나고 얼마나 울며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두 시간 정도의 기도 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신앙생활은 점점 뒷전이 되어갔습니다. 마음으로는 신앙생활을 갈망했지만, 육신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무엇인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어머니와 동생이 성가대룰 하는 것을 보고 결심했습니다. “아! 이거다. 나를 세상에서 건져줄 수 있는 것은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다”라는 생각과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 “찬양하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고 주님이 보호해 주신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시온 성가대에 지원하게 되어 지금까지 찬양으로 영광 돌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공로를 생각하며 찬양을 하면 너무나 평안해집니다. 또 영적으로 침체하여 기도조차 하기 어려울 때 찬양을 통해 회복이 됩니다. 특히, 삼일예배 후 찬양 연습 시간은 직장생활로 찌든 모든 피로가 풀리고 감사가 넘칩니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찬양할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내 평생 주님만 찬양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윤승업 정현수 최정화 양명순 신동명 김용환 정찬미 이혜린 이정화 최용성 추은희 


끝까지 잊지 말아야할 내 모습

8년 전 갓 결혼한 부부가 부모 형제 친구들의 축복 가운데 말끔하게 차려입고 두려움 따위 없이 자신감에 가득 차 유학길에 오릅니다. 1년이 지나자 주위 사람들이 하나같이 미워집니다. 2년이 지나자 주위 사람들이 하나 같이 우리를 미워합니다. 3년이 지나자 단조로운 생활에 지쳐갑니다. 4년이 지나자 공주가 태어났어요. 5년이 지나자 돈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6년이 지나자 삶에 대한 분노가 밀려옵니다. 7년이 지나서 모든 것을 내려놨습니다.
2008년 2월 인천공항에는 가장 초라한 세 명이 집채 만한 마음의 짐을 가지고 돌아왔어요. 지켜야 할 체면도 재물도 지위도 자신감도 어느 것 하나 가지지 않고요. 그런데 그 모습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떠날 때보다 돌아올 때 내 모습을 더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 앞에 끝까지 내 초라한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써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4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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