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서추향 집사 (해외선교국)

등록날짜 [ 2009-10-21 09:34: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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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심양의 명문대를 졸업하고

   탄탄대로의 인생행로를 걷던 한족 출신의 여인,

   그녀에게 닥친 역경의 세월.

   그러나 주님을 만났기에

   이국땅에서 복음 사역자로 거듭나

   새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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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의 설교를 중국어로 통역하는 한족(漢族) 서추향 집사. 주일 낮과 밤 예배 설교뿐 아니라, 중국어 통역을 요청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복음의 교량 역할을 하는 그녀가 요즘은 윤석전 목사의 저서를 중국어로 번역하는 일로 바쁘다. 올해 해외선교국 중국 한족(漢族) 부장 직분을 맡아 중국인들의 심방과 전도로 열심인 그녀. “주님과 함께하는 하루하루의 삶이 너무 행복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그녀를 만났다.


매일 아침 남편과 딸 아이가 집을 나서면 서추향 집사도 교회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윤석전 목사의 저서 번역을 서두르기 위해서다. 3년간 통역 일만 하다가 올해부터 번역 작업을 시작해 요즘은 『영혼의 때를 위하여 세월을 아끼라』를 번역하고 있다. 저녁 8시에는 한족 부의 기도모임과 심방이 있다.
“중국인들 대부분 한국에 근로자로 왔기 때문에 저녁 시간에 가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방 하려고 찾아간 분의 집에서 전도할 사람까지 만나게 하시고, 그들이 눈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수 있도록 복음 전할 힘을 주십니다.”

이국땅 한국에서의 끝없는 나락
중국 심양에서 태어난 한족 출신인 그녀가 어떻게 복음을 받아들여 이렇듯 귀한 사역에 쓰임받고 있을까 궁금했다.
심양 시의 명문 고교와 심양 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심양 시가 경영하는 무역회사에 입사하여 촉망받는 인재로 탄탄대로의 인생행로를 걷고 있을 때만 해도 그녀는 예수의 ‘예’자도 몰랐다.
그런데 한국에서 바이어로 온 지금의 남편 권규섭 집사(13남)를 만나 결혼하고, 시부모님께 인사차 잠시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자신이 이렇게 예수로 웃고 우는, 백팔십도 바뀐 삶을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임신으로 인해 중국 출국이 늦어졌고 그러는 동안 남편의 사업이 IMF로 인해 곤두박질 치면서 원치 않았던 한국에서의 지루한 하루하루가 계속됐다. 눈물로 밤을 지새워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지자 괴로운 마음을 위로받고 싶어 기독교인인 남편에게 전도받아 하나님을 믿게 됐다. 사방팔방 막막하기만 한 암담한 현실 앞에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뿐임을 알게 되자 겨우 한두 마디 하는 한국말로 성가대에 섰다. 당시 찬양은 그녀에겐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었다.

슬픔은 없어지고 주님 안에 행복이
그렇게 한국에서의 일 년이 지나갈 무렵,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하지만 중국에 갈 여비를 마련할 수 없어 친정어머니의 장례에 참석할 수도 없었다. 그런 나 자신의 처지가 한이 됐고 힘들고 고된 삶을 탓하며 몇 번이고 죽을 결심까지도 하게 됐다.
그 무렵, 섬기던 교회 목사님이 사역지를 옮기면서 서 집사도 지인의 소개로 2006년 1월 1일부터 연세중앙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어디에도 마음을 둘 수 없는 메마르고 갈급한 심령으로 찾아온 연세중앙교회에서의 첫 예배 때 그녀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 같았다. “찬양시간부터 예배가 끝날 때까지 눈물이 빗물처럼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내린 후부터 제 마음이 시원해졌어요.”
차츰 윤석전 목사님의 입술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지난날의 교만했던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됐고, 죽고 싶을 만큼 슬프고 불행했던 마음도 차츰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행복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됐다.
당시 그녀의 첫 번째 기도제목은 연세중앙교회 성가대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성가대원으로 찬양의 자리에 서서 눈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국어를 거의 몰랐던 그녀가 글로리아성가대에 서면서 일주일 내내 가사 외우는 일에 집중했다. 아무리 외워도 심령에 와 닿을 만큼 가사 전달이 안 되면 답답했다. 그래서 가사의 의미를 깨닫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넉넉히 지혜를 주시는 것을 경험하면서 한국어 실력이 빠른 속도로 늘었다. 그렇게 늘어난 한국어 실력으로 2006년 겨울부터는 예배 통역을 하게 됐다.
윤석전 목사의 설교를 중국어로 통역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주신 매우 특별한 은혜라고 고백한다.
“설교 말씀을 귀로 듣고 입으로 선포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가 나타나는 것을 느낍니다. 특히 과거의 저처럼 죽을 만큼 어렵고 힘든 처지의 중국인들을 만나서 제 입술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질병이 치료되는 역사가 나타나고, 심방 갔을 때 불신자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나타나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강하게 체험할 수가 있어요.”

중보기도 사역 통해 가족 구원 이뤄
그렇게 연세중앙교회 중국어 통역이라는 귀한 사역에 쓰임 받고 자신의 영적인 갈급함을 해결하게 되자 차츰 중국에 있는 가족 구원을 위해 눈물로 중보기도하게 됐다. 친정어머니에겐 복음을 전하지 못했지만 연로하신 아버지와 언니들에겐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심정이 불길같이 타올랐다.
“하나님, 우리 가족 중에는 나밖에 예수님을 모르는데, 우리 가족들 예수님 몰라 지옥 가면 어떡해요. 선교팀이 중국에 간다고 하는데 우리집을 선교지로 삼으면 안 되나요?”
그녀의 간절한 기도가 응답돼 중국단기선교팀에 합류하게 됐고, 선교팀이 정해진 선교사역을 마치고 심양의 서 집사 가족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 그녀는 공산주의에 찌든 가족 전부가 선교팀이 전한 복음을 듣고 순수하게 예수님을 영접한 일이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그 후 김종선 사모가 중국 선교 때마다 서 집사의 가족을 찾아주었고 노환으로 오랜 세월 누워계시던 아버지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 신앙을 갖고 임종하셨으며, 큰언니도 말기 암의 고통 중에도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임종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마음이 우울해서 견딜 수 없었는데, 아버지와 큰언니의 임종 때는 하나님께서 천국에 가셨다는 확신과 함께 평안함을 주셨어요.”
윤석전 목사와 김종선 사모를 너무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서 집사는 “그분들의 기도와 선포하시는 하나님 말씀으로 인해 죽고 싶었던 슬픔이 사라지고 행복과 기쁨의 삶을 살게 됐어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제 안에 모시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이제 하나님 없는 제 삶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이국땅 한국에까지 와서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사는 중국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서추향 집사는 복음을 들고 저녁시간 어둠을 뒤로하고 오늘도 심방 길에 오른다.

위 글은 교회신문 <16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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