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예배 찬양 인도자 김홍태 집사

등록날짜 [ 2009-11-17 15:19:29 ]

가을 햇살 속에 만난 새벽예배 찬양 리더 김홍태 집사는 예상 외로 허스키한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예수로 구원 받은 은혜가 무엇보다 감사하다 고백하며 주님의 일에 만사 제치고 나서는 남자, 그리고 아직도 주님께 못 다 드린 충성이 죄송하다고 고백한다.

새벽예배는 어떻게 준비하시나요?
새벽 3시 30분이 되면 잠에서 깨어 차 한잔을 마시며 밤새 잠겨있던 목소리를 가다듬습니다. 밤새도록 철야기도를 하신 성도님들도 계신데, 찬양을 인도하는 제 목소리가 잠겨 있어서 찬양에 은혜가 안 되면 너무 죄송하잖아요. 4시 30분까지 교회에 도착해 찬양팀과 함께 기도로 새벽예배를 준비하고 5시부터 찬양을 인도합니다. 새벽에 찬양을 하면서도 내가 감당하지 못할 직분이라고 고백하며 더 훌륭한 찬양 리더자가 배출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어요.

언제 예수를 믿게 되셨나요?
고등학교 때 친한 선배 한 명이 있었어요. 당시에 질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병원에서도 포기하고 퇴원하라고 할 정도였어요. 그 선배가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고 퇴원했는데 상태가 정말 안 좋았어요. 이 선배 죽는 날이 언제일까 기다리는데 죽지를 않아요.(웃음) 어느 날은 전화를 했는데 약도 끊고 건장한 청년이 전화를 받더라고요. 그 뒤로 이 선배가 2년 동안 저를 쫓아다니며 자기가 만나고 치유 받은 예수를 끈질기게 전했어요. 제가 고3 때 교회의 가을 문학제에 초대받아 갔는데 거기서 학생들이 연출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보고 눈물로 예수님을 만났어요. 어릴 적 마음에 상처 받은 것들도 치유해 주셨어요.

어떻게 찬양의 자리에서 충성하시게 되셨나요?
95년에 담임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97년에 흰돌산수양관 성회에 참석했는데 ‘아, 신앙생활은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고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우리 교회 강단의 말씀을 사모했던 거 같아요. 2005년 궁동 성전 헌당예배 때 연세중앙교회에 등록했어요. 한 1년은 대전에서 서울로 예배드리러 다니다가 서울로 이사왔습니다. 2006년에 남전도회 특별활동실에 소속되어 찬양을 하게 됐어요. 마침 김종선 사모님의 6기 중보기도학교가 있어서 등록했고, 수료 후 토요일 저녁 중보기도자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 모임에서 찬양을 인도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죠. 새벽예배는 드럼 연주부터 시작했어요. 제 실력은 턱없이 부족한데 당시에 드럼 칠 사람이 없었어요. 새벽예배 찬양 인도는 올해부터 맡겨 주셨고요. 1부 삼일예배 찬양도 인도하게 되었어요.

직장생활하면서 충성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조화롭게 하시는지요?
대전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말씀을 들을 때, 1년 동안 서울에서 영업을 했어요. 당시에 같이 영업하던 과장님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는데 1년 내내 점심을 사주고 이야기도 많이 나눴어요. 하루는 과장님의 어머니가 저녁초대를 하시고는 저한테 “누구인지 궁금했어요. 우리 아들이 이런 애가 아니었는데 집사님을 만나서 신앙생활 잘하고 있어요.”라고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매일 밥 사줘서 감사하게 먹었는데, 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신앙생활 변치 않는 모습을 보시고 은혜를 받으셨나 봐요.
후에 그 과장님 도움과 소개로 무역회사에 취직했어요. 제 이력 상으로는 못 들어갈 곳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였죠. 제가 사장님한테 그런 얘기를 했어요. 교회에서 일 있으면 회사 일 못하니 참고하시고 채용하시라고요. 벌써 4년이 지났네요. 지금 영업일을 하는데 제가 할 일은 철저히 합니다. 새벽에 일찍 가서 오전에 할 일을 빨리 마치고, 최대한 실수하지 않도록 미리 해 놓습니다. 처음 1년 동안은 욕을 많이 먹으면서 일을 배웠는데 일단 성실한 면에서 인정을 하시고 지금은 모든 일을 믿고 맡겨 주세요.

변치 않고 충성하는 비결이 있을까요?
대전에서 서울로 왔다갔다 할 때는 돈이 없으니 날일을 해야 되잖아요. 그러면서 잠도 많이 못 잤어요. 그런데 신앙양심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요. ‘돈 벌려고는 잠 못 자고 눈이 벌겋도록 일하면서 나를 위해 피 흘려 몸 버리신 주님 위해서는 이렇게밖에 못하나?’ 늘 주님 앞에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처음 서울 올 때, 주의 일이라면 궂은 일, 천한 일 개의치 않으리라는 마음이었어요. 이 초심으로 돌아갔으면 합니다. 무슨 일을 맡기시든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 따라 충성하기 원합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신부고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 충성한 상급의 차이가 엄청나다고 하잖아요. 영혼의 때에 손해 볼 것이 뻔한데 말씀 듣고 행하지 못한다면 너무 안타깝지요. 그리고 구원 받은 것만도 너무 감사하니까 철야든 새벽예배든 신랑 되신 주님 만나는 일이 당연하게 느껴져요. 신랑이 신부를 생각할 때 제한을 두고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신랑이신 주님을 제한 없이 사랑했으면 해요. 새벽예배란 부담이 아니고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니까 새벽예배를 통한 기쁨이 더 커요.

위 글은 교회신문 <17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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