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집사회장 조성군 안수집사

등록날짜 [ 2009-12-15 17:35:35 ]

연세중앙교회 성전 건축사의 산 증인 조성군 안수집사. 그는 2009년도 안수집사회장과 건축위원회 실무책임자의 직분을 감당하고 있다. 1989년에 우리 교회에 와서 21년 동안 변함없이 충성하고 있는 그를 만나 2009년 한 해가 가기 전에 주님을 향한 그의 충직한 러브스토리를 들어보았다.

2009년 한 해 안수집사회에서 중점적으로 계획했던 일들은 무엇이었나요?

-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목회하시는 담임목사님의 목회방침에 절대 순종하고 보필하는 안수집사회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의 본이 되는 섬김의 모습과 믿음과 주 안에서 하나 되는 안수집사회가 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안수집사회의 기본이 되는 가장 중요한 사역이며, 앞으로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담임목사님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면서 느낀 점, 그리고 앞으로 우리 교회가 어떻게 담임목사님을 보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말씀해주세요.

- 주님 심정과 구령의 열정으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목회하시는 목사님을 만나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담임목사님의 건강관리는 곧 우리 성도들의 영적 관리와 동격(同格)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이 건강하셔야 성도들이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히 먹고 교회 생활 또한 충실히 할 수 있으니까요. 목사님의 절대적 안정을 위하여 목사님의 스케줄 관리도 절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목사님께서는 모든 예배에 말씀을 전하시고, 실천목회연구원 세미나와 외부 부흥성회, 대학 강의, 결혼 주례와 개인적 면담, 대외적 교계 직무 수행 등으로 격무에 시달리고 계십니다. 그래서 안수집사회는 목사님께서 공예배 설교만 하시고 결혼 주례와 개인적인 면담 등은 하지 않으시도록 건의를 드리고 있습니다. 성도님들께서 잘 이해해주시고 지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연세중앙교회 성전 건축사의 산 증인으로서 성전 건축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 성전 이전과 건축에 관련된 일을 해왔습니다. 연희동성전에서 망원동성전으로 이전, 그리고 노량진성전 구입과 이전은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이 있었기에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노량진성전 구입 잔금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던 1994년에 흰돌산수양관을 구입하고 시작한 수양관 증축과 숙소동 건축이 무사히 완공된 것은, 정말 하나님의 전적인 계획과 개입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1995년에 목사님께서 흰돌산수양관 증축과 숙소동 신축 설계를 지시하셨을 때만 해도 저는 ‘노량진 잔금과 수양관 매입 재정 해결도 어려운데 어떻게 새로 건축한다는 말인가? 목사님께서 건축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으시니까 건축을 쉽게 생각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설계 착수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2개월이 지난 후에 목사님께서 ‘설계가 어떻게 되어 가느냐’고 물으시기에 저는 건축 전문가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현안 문제를 설명하면서 경제적으로 수양관 건축은 무리라고 보고 드렸습니다. 그때 담임목사님께서 “기도하는 종의 말에 왜 순종하지 않습니까?”라고 말씀하시면서 수양관 건축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하셨습니다. 당시 수양관 시설로는 성회 때마다 수천 명씩 몰려드는 인원을 수용하기 어려웠고, 우리나라에서 명실상부한 영성회복의 기능을 갖춘 수양관을 건축해야 하는 것은 필수과제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은혜받기를 원하시는 담임목사님의 수양관 건축에 대한 확고한 의중을 알게 되자 수양관 건축설계와 어려운 건축인허가 과정을 거쳐 공사에 착공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한 번도 공사대금을 미룬 적이 없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저의 인간적인 견해로 수양관 건축을 몇 년 뒤로 미루었더라면 97년말부터 몰아닥친 IMF 한파로 인해 수양관 건축은 자칫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담임목사님의 믿음의 결단으로 가장 적절한 시기에 수양관 건축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일과 기도하시는 담임목사님의 믿음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얼마나 큰 것인지 영적 체험을 하게 되었고 믿음도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궁동 대성전 건축 과정은 어땠나요?

- 수양관 건축이 끝나고 2년 후 IMF 때인 1999년 3월 경, 성전 건축을 위해 교회 건축 부지구입 위원회가 발족되었고, 목사님께서 일만 평 규모의 부지를 물색해보라고 하셨을 때, 저는 무조건 순종하여 궁동의 도로교통안전공단 부지계약과 대성전 건축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도 역시 인간의 계획과 방법의 잣대로 보면 성전 건축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도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에는 절대 순종해야 된다는 것을 이미 절감하였기에 목사님 말씀에 100% 순종하여 부지계약과 건축설계, 그리고 성전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종인 담임목사님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교회의 종합 마스터 플랜을 하나씩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신앙생활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요?

- 사실 저는 전라북도 남원에서 출생하여 유교적인 가정에서 자랐기에 기독교와는 무관하게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결혼하고 나서 아내(김효정 권사)의 권면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인본적인 신앙생활을 하던 중, 친구 사업에 보증을 서 주었다가 그 사업이 부도나면서 저희 집에 경매가 들어오고 월급까지 압류가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정말 은행 이자 갚기도 벅차서 죽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때 주위에서 모든 것을 다 잊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해서 처음으로 기도원에 올라가 금식을 하였습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더 큰 빚이었으면 더 크게 망할 수도 있었는데 이 정도인 것이 다행이다. 그 빚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감동과 깨달음을 통해 고통과 원망이 오히려 감사로 변했고, 하나님을 영적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센터와 복지센터 건축이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건축위원회 실무를 맡아 어떤 마음가짐으로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지요.

- 교회 건축은 100년 앞을 내다보는 일로서, 담임목사님의 목회방향과 교회사업, 그리고 향후 교회비전을 통하여 그 건축물의 규모, 공간 구성, 외부 형태와 디자인 등이 결정되게 됩니다. 또한 많은 재정과 함께 그에 따른 책임도 수반되므로 대다수의 교회들이 가장 어려움과 부담을 느끼는 복잡한 일이 바로 교회건축입니다. 그러기에 교회 건축을 통하여 교회가 부흥되기도 하고, 많은 문제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교회 건축은 공개적이고 투명해야 하며 어떤 일보다 더 정직하고 책임감 있게,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업무를 수행하여야 합니다. 부족한 자를 교회 건축이라는 귀한 사역에 일익을 담당하게 하시고 주님의 거룩한 일에 동참하게 하심을 하나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특별히 기도하는 기도 제목이 있는지요?

- 저는 평신도로서 가장 값진 사역이 목사님의 목회를 아론과 훌처럼 수종 들고 보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목사님이 오직 기도하고 말씀 전하시는 일에만 전무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수종 들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생애를 마감하는 것이 저의 기도 제목입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7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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