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콤 펜윅 한국 교회 전도기 <12>] 내가 실패한 곳에서 본토인 목사가 거둔 성공

등록날짜 [ 2011-01-27 10:09:28 ]

헌신적인 노력으로 제자와 교회 세워나가
동양적 방법으로 거둔 놀라운 성과에 감탄


<사진설명> 신명균 선생과 그의 제자들이 전도를 위해 집을 나서고 있다.

신명균 선생이 우리 집에서 수백 킬로 떨어진 새 지역을 맡고 나서 맨 처음 한 일은, 귀신들린 어떤 청년을 고치고 그를 집중적으로 보살핀 일이다. 이 청년의 부모는 점잖고 형편이 넉넉하고 가문도 좋은 분들로서, 거듭난 뒤에 하나님의 가문에 들어왔고, 14세 난 아들을 신 선생에게 보내 그의 제자가 되게 했다.

한국에서는 이런 계약을 맺고 나면 제자를 ‘사람으로 만드는’-한국인들은 그 일을 이렇게 표현한다-과정에 따르는 모든 문제에 스승이 부모를 대신한다.

신 선생의 가정은 예수를 믿는 문제로 불화가 일어나서 아버지와 아들, 형제와 형제, 남편과 아내가 갈라졌다. 신 선생의 아내는 처음에는 남편을 지지하다가 다시 식구들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신 선생과 좋은 가문 출신인 그의 노모는 집을 나가 사방 180센티밖에 되지 않는 비좁은 방에서 살았다.

신 선생은 이 방에 ‘판순’이라는 어린 제자를 들였다. 나중에 이 식구는 사역지로 이사했으나, 거처는 작은 오두막에 불과했다. 흙벽에 초가지붕을 얹은 사방 180센티 방 하나에, 너비 90센티 툇마루와, 한쪽 끝에 장대들을 세우고 그 위에 밀짚을 얹어 만든 부엌이 전부였다.

서양인 처지에서 신 선생의 아내(이때는 그에게 돌아와 있었음)와 자녀, 그리고 어머니가 그 작은 방에서 지내는 것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그런 가운데서도 신 선생과 그의 어머니 간의 애정만큼 모자간에 애정을 나누며 사는 모습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럭저럭 15달러를 만들어 그에게 보내 집수리하는 데 사용하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번에 그곳으로 내려갔더니 여전히 그 누추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당연히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자꾸만 대답을 회피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작달막하지만 헌신적인 이 양반이 주변 마을들에 전도자들을 보내는 데 그 돈을 써 버렸다고 했다. 신 선생한테 그 돈은 특별히 집수리하라고 보낸 건데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목사님, 주변 많은 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른 채 죽어 가는 상황에서 도무지 그 돈을 나를 위해 쓸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멸망해가는 이들에게 십자가의 사자들을 보내기 위해 그와 가족, 그리고 학생들이 묽은 죽으로 연명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주께서 이런 헌신에 보상하지 않으실 리 없다. 신 선생은 곧 교회를 열두 곳에 개척했고, 조랑말을 타고 정해 놓은 시간에 교회들을 방문했다. 교회를 방문할 때는 학생들을 여럿 데리고 다녔는데, 학생들은 종종걸음으로 조랑말 뒤를 따라갔다.

학생들은 이런 방식으로 그를 따라다니면서 신체적, 영적, 실제적 강의를 동시에 받았다. 물론 이것은 우리 서양식이 아니라 동양식이지만, 동양인들에게는 훨씬 더 좋은 방법이다. 잘 익은 과일에서 겸양이라는 아름다운 꽃을 따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개척한 지 얼마 안 되어 박해를 받았는데, 그럴 때는 학생들을 모아 놓고 대적들이 자신과 화해할 때까지 간절히 기도했다. 그 중 한번은 학생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교훈거리가 되었다. 그때 마귀는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신앙이란 백인에 대한 경외일 뿐이라는 말로 꾀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주변에 백인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고, 그 일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다.

신 선생과 그의 가족이 안락한 새 집에서 살게 되자 우리는 안심이 되었다. 신 선생은 120달러를 들여 그 집을 직접 지었다. 그렇게 작달막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사역을 완수하였는지를 생각하면 항상 신기한 생각이 든다. 그는 언제나 학생들에게 시험을 냈고, 학생들의 진보는 가히 놀랄 만한 것이었다. 신 선생이 백인 다섯 명 몫의 사역을 맡아 고생하고 있다는 말이 자주 들려 왔는데, 그런데도 모든 게 번성하는 듯했다. 그의 교회들은 예절과 교양의 산실이었다. 그들은 모두 동양의 고상한 윤리로 교육받았고, 그들을 가르친 이 작은 동포를 속일 줄 몰랐다.

나는 그의 사역지를 둘러볼 때마다 이런 객관적인 교훈들을 접하면서, 어느덧 교만하던 내 마음속에 동양 문화에도 좋은 점들이 있을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중에 가서는 방법까지도 동양이 서양보다 더 성경에 가깝다는 점을 수긍하게 되었다. <계속>『한국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말콤 펜윅 저)』에서 발췌

위 글은 교회신문 <22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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