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그 사람들] 술에 빠져 있던 삶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셔 外

등록날짜 [ 2017-10-26 10:38:19 ]


사고, 질병, 실패, 채무, 도를 넘는 음주…. 인생의 벼랑 끝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들이 있습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만나면 행복하다고 고백합니다.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를 만난 후 인생의 극적 반전을 경험한 이들을 소개합니다. 연세중앙교회 방송국 간증 프로그램 ‘하나님을 만난 그 사람들’로 교회를 처음 찾은 새가족들이 영원한 행복 주시는 하나님을 꼭 만나시길 바랍니다.

(*QR코드를 이용해 해당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네이버 앱 실행→검색창 옆의 카메라 모양 그림 터치→화면 안에 QR코드 이미지를 맞추기


술에 빠져 있던 삶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셔

이웅수 집사 (KBS 기자)


대학 1학년 때 교양 과목 ‘인간과 국가’ 수업에서 받은 충격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이름을 떨치던 교수님의 노장사상 강의는 지방에서 갓 올라온 신입생에게 전율을 안겨 주었다. 자연 만물과 인생의 이치를 설명하는 노장사상뿐만 아니라 동서양 철학과 역사를 넘나드는 강의는 해박하다는 말로는 이루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차원이 다른 강의를 세계적 석학에게 배운다는 생각에 자부심이 절로 들었다.

한 학기 동안 강의를 들으면서 기독교 신앙에 강한 회의가 들었다. 돌이켜 보니 동서양의 심오한 철학 앞에 기독교 신앙과 교리는 너무 단순하고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모태 신앙인 내게 성경의 계명들은 나를 옥죄는 굴레이자 속박이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는 말씀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 말라는 말씀이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자유할 수 있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발전하고 성숙해지려면 기독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싶은 분위기와 맞물려 더 확고해졌다.

이때 받은 지적 충격은 내 신앙과 사고에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 인생에서 중대하고 어려운 고비가 닥칠 때마다 하나님을 찾아보려 했지만 곧 의심과 회의가 뒤따랐고 세상과 교회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성취하려면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고,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면 저주가 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한 불안감과 의무감으로 교회를 다녔다. 세상과 신앙 사이에서 항상 갈등했고, KBS 기자가 된 후 몸은 과로와 술, 담배로 망가졌다.

술이 술을 먹는 단계로 접어들어 거의 알코올 중독에 이르렀을 때 연세중앙교회 노량진성전에 다니게 됐다. 윤석전 목사님의 영력 있는 설교를 처음 들은 순간, ‘내가 살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목사님이 내 죄를 밝히 드러내는 것 같아 신앙양심이 찔린 설교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미 생각이 세속에 젖은 터라 수용하기 어려운 말씀도 있었지만 성경대로 하시는 말씀이니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스스로 쌓아 온 나름의 논리와 사고체계를 벗어던지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생각을 바꾸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3년 10월, 통성기도를 하던 중 하나님께 술을 끊게 해 달라고 애절하게 기도했다. 일주일 7일 중 6일을 술에 절어 살 만큼 중독 증상이 있었는데, 눈물 콧물 다 쏟고 회개기도 하자 가슴이 후련해졌고 오후만 되면 술이 당기던 증상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데도 이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다시 술을 입에 댔다가 발목이 부러졌다. 60일간 병가를 내고 쉬던 중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을 근본부터 바꿔 놓으셨다. 혼자 방 안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생각 속에서 강력한 질문을 하셨다.

첫 질문은 “네가 그리스도인이냐”였다. 대답하기 어려웠다. “예”라고 대답하면 주일뿐 아니라 평일도 주일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속적 그리스도인이 하는 이중생활을 포기하라는 말씀이었다. 난감했다.

둘째 질문은 “네 삶의 기준이 나냐, 사람이냐”였다. 이 역시 어려운 질문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기준으로 살면 사람들이 얼마나 비웃을까 걱정스러웠다. 기독교 환자 취급을 당하면서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위하여 사람들한테 매 맞고 침 뱉음 당하고 십자가에 죽을 때까지 극한의 고통과 수치를 당했는데 네가 체면 때문에 내 말대로 살 수 없다면 나는 너와 관계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결단하고 기도했다. “제가 예수님과 관계가 없다면 지옥에 가게 됩니다. 하나님, 앞으로 술 안 마실 테니 남은 인생 책임져 주세요.” 그러고는 비난과 수치를 각오하고 회사에 나가 술 안 마시겠다고 선포했다. 사람 관계에 어려움이 오고 핍박도 받았지만 사람 눈치 보지 않고 “하나님이 술을 끊게 하셨다”고 간증했다.

술을 끊자 가정이 회복되고 기도가 회복됐다. 믿음 없어 기도하지 못하던 내가 ‘50일 작정기도회’에 참석해 하루 2시간씩 기도했다. 기자 생활하면서 50일간 저녁 7시~9시 사이에 기도했다는 것은 이적에 가깝다. 그만큼 놀라운 기도 응답도 이어졌다. 돌이켜 보면 술로 인생이 망가졌을 수 있는 죄인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보고 구원받게 하신 것이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내 우려와 달리 정반대로 좋은 일이 많았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느라 어려운 일도 닥쳤지만 하나님께서 항상 선으로 마무리해 주셨다. 이 모든 일을 하시고 아버지께 돌아오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린다.



인기가수 오방희가 목사가 되기까지

오애숙 목사

‘인기가수 오방희’

나를 따라다니던 타이틀이다. 1978년 데뷔해 수많은 히트곡을 내놓으며 국내 대표 여가수로 자리 잡았고, 밤낮없이 가수 활동을 펼치며 인기 절정의 삶을 누렸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1985년 2월 6일 새벽,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울산 KBS 개국기념쇼에 참석하고 돌아오던 길에 길가에 놓인 돌덩이를 피하려다 그만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옆 논두렁으로 추락한 것이다. 그때 함께 탔던 기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나는 차마 눈뜨고는 못 볼 참혹한 중상을 입었다. 당시 병원에서는 뇌사상태, 즉 식물인간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족과 성도들의 중보기도로 1주일 만에 기적적으로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렸으나 수술할 부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두개골에 엄청난 상처를 입었기에 왼쪽 머리 전체의 신경이 죽어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귀도 거의 다 떨어진 것을 붙여 놓은 상태였고, 뼈가 다 튀어나온 손가락과 손목도 재수술을 해야 했다.

나를 안쓰럽게 여긴 지인이 당시 같은 교인이었던 윤석전 집사를 소개해 주었다. 모태신앙이었으면서도 체험이 없던 나는 “하나님이 어디 계시느냐”고 반문했다. 성경책은 나와 거리가 멀다고만 여겼다. 그런데 윤석전 집사님을 만나면서 신앙의 눈을 떴다. 윤석전 집사님께서 간절히 기도해 주셨고 정기적으로 성경공부를 지도해 주셔서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 분이란 걸 알았고, 성경에 담긴 하나님 말씀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성경에는 온 세상의 철학과 예술 등 방대한 지식과 오묘한 섭리가 총망라돼 있었다.

너무도 은혜에 갈급했던지라 붕대를 감은 채로 계속 윤석전 집사님이 인도하는 집회에 쫓아다녔다. ‘제발 저를 만나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방언을 사모했더니 응답해 주셨다. 방언을 받고 나니까 내가 얼마나 죄인이고 지난날을 잘못 살았는지 깨닫게 됐다. 기도만 하면 눈물이 나오고, 우주만물, 심지어 나무까지도 새롭게 보였다. 나무도 반짝반짝 나뭇잎을 흔들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인생의 특권을 부여받은 나는 저 나무만도 못하게 살아왔구나.’ 사고 났을 때 죽었으면 분명 지옥 갔을 텐데 지옥신세 면하게 하시려고 사랑의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는 사실에 무척 감사했다.

그 후 신경이 죽어 하나하나 심어야 한다고 하던 머리털이 나기 시작했다. 수술을 해야 펴진다고 한 손가락과 손목도 수술 없이 잘 펴고 오므릴 수 있게 됐다. 병원에서는 식물인간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정상인처럼 활동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모두 치료해 주신 것이다.

큰 은혜를 받고 나자 그렇게 좋던 세상 유행가가 유치하게 들렸다. 그런 노래만 부르다가 하나님 앞에 설 때 어찌 그분을 뵐 수 있겠는가 싶어 미련 없이 가수를 그만두었다. ‘신학을 공부해 보라’는 주위 분들의 권유에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네가 준비가 돼 있어야 내가 쓰고 싶을 때 마음껏 쓸 수 있다’는 감동을 주셔서 신학교에 진학했고, 10여 년간 교회학교와 해외선교 사역을 했다.

그러던 중 특별한 인연이 있던 윤석전 목사가 시무하는 연세중앙교회를 찾았고, 그 후 부사역자로서 통일선교국에서 수년간 탈북민을 섬기고 있다. 기도할 골방 하나만 내주면 어디든 달려가서 내가 만난 하나님을 증거하며 살고 싶었다.

“사도 바울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것이 예수 믿는 지식이라고 한 것처럼, 예수 안에서 믿음 갖는 것이 가장 고상하고 생명을 얻는 것이라는 걸 큰 사고를 계기로 깨달았어요. 예수 밖에서는 아무리 엄청난 부귀영화가 있다 한들 그때뿐, 영원한 소망은 없어요. 영원한 소망, 천국을 위해 내 육신의 삶은 오직 영혼의 때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기도하며 사업하자 하나님이 세세한 부분까지 확실히 책임지셔

이계우 안수집사 ( ㈜ 아쿠아픽 대표)

24세 때 목회하는 장인어른 교회에서 우연히 “회개하라”고 외치는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들었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 했지만 그때 처음 ‘천국’ ‘예수 피’ ‘마귀’에 대해 들었다. 그 후 윤석전 목사님이 인도하는 흰돌산수양관 성회에 참석해 주님을 뜨겁게 만났고 많은 은혜를 체험했다.

무역회사에 다녀서 국내외를 자주 돌아다녀야 했다. 주일 미팅도 많아 예배 참석이 어려웠다. 신앙양심은 말씀대로 살라고 외치지만 실천하지 못해 괴로워했다. 하루를 살아도 신앙생활을 잘해야 했기에 기도한 후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단칸방에서 어렵게 신혼살림을 했는데 첫아이가 생겨 안정적인 수입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아내와 함께 기도하며 고비를 이겨 나갔다.

사업을 하고 싶었지만 수중에 자금이 없었다. 결단하고 맨주먹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어렵게 사업을 꾸려 가는 모습을 보고 회사 다닐 때 알던 사람들이 도와주었다. 하루는 “생활비가 필요하지 않느냐”며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는 연락이 왔다. 다음 날 통장을 확인해 보고 깜짝 놀랐다. ‘몇백만 원쯤 들어왔겠지’ 했는데 수억 원이 입금돼 있었다. 연락을 해 보니 “그 돈으로 사업하고 나중에 갚으라”고 했다. 고마워서 회사 지분 75%를 줬다. 하지만 사업이 번성하자 그의 태도가 달라졌다. 어느 날 연락이 와서 만났더니 ‘회사 포기 각서’를 들이밀면서 사인을 하라고 했다. 충격을 받아 어안이 벙벙했지만 큰 것을 배웠다고 생각하고 “성공해서 좋은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다”며 큰절하고 나왔다. 청천벽력 같은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해 교만하게 사업한 죄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채무를 잔뜩 짊어진 채 사업을 접었다. 그리고 기도 후 새롭게 사업을 시작했다. 하루에 천만 원씩 나가는 이자를 감당하며 일에 몰입하다 보니 쓰러지기도 수차례. 그때 아내가 말했다.

“당신의 머리보다 무릎이 빨라요. 기도해야죠.”

그 말에 감동돼 예배 때마다 기도했고, 수시로 흰돌산수양관에 가서 기도했다. 그때의 기도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기도 중에 하나님이 물으셨다. 이 기업이 나 개인의 기업인지 하나님의 기업인지를. 하나님의 기업일 때 책임져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보셨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지만 진짜 사랑하지 못한 내 모습을 발견하고 회개했다. “네가 괴로워할 때 내가 더 괴로웠다.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고백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합니다. 이 회사를 복음을 위해 쓰겠습니다.”

기도하면서 회사 경영의 잘못된 부분을 하나씩 깨달아 믿음의 기업으로 바로 세울 것을 결심했다. 무엇보다 영혼 구원에 목적을 두었다. 아이템 선정할 때도 사람에게 유익한 품목을 택했다. 신앙생활과 복음을 전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도 따져 봤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 것 같은 아이템이라도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신다는 감동이 오면 손대지 않았다. 이런 과감한 결단에 사람들이 기업을 신뢰해 주고 물건도 더 많이 구매해주었다. 지금은 ‘아쿠아픽’이라는 구강세정기를 비롯한 구강 건강 관련 제품들을 제조해 40여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하루는 미국의 세계적 치과 의료기기 회사에서 자회사 제품을 판매할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이 들어왔다. 아울러 수십만 달러어치 물건을 대줄 테니 기간 제한 없이 팔아서 자금을 갚으라고 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뜨겁게 느꼈다. 그때부터 회사는 성장하기 시작했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만나는 수십 개국 사업 파트너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한다. 한국에 오면 교회에 데리고 와 함께 예배드린다. 대다수가 윤석전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은혜받아 예수님을 믿는다.

수년 전부터 윤석전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해외성회에 참석했다. 어디를 가나 말씀에 따르는 이적이 나타났다. 해외에서 복음증거 사역을 수종들다 보니 퇴직 후에 한 주에 한 나라씩 돌아보도록 52개국에 교회를 설립하고 싶은 소망이 일었다. 담임목사님께서 ‘세계 1000개 교회 설립’ 비전을 선포하시자 하나님께서 쓰임받고 싶어 “아멘” 하며 화답했다. 주님이 주신 큰 꿈을 따라 1000개 이상 교회 짓기를 다짐하며 기쁘게 신앙생활 하고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548호> 기사입니다.

    아이디 로그인

    아이디 회원가입을 하시겠습니까?
    회원가입 바로가기

    아이디/비번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