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등록날짜 [ 2019-05-02 16:06:34 ]

하나님의 은혜로 자연임신 ‘할렐루야’

인공수정으로 첫아이 낳고
작정기도회 때 둘째 아이 주셔

박은지 성도
청천벽력 같은 판정을 받았다. 만성 무배란이 특징인 다낭성난소증후군인 데다, 배란점액도 잘 생성되지 않아 임신이 안 된다고 했다. 인공수정으로 임신을 했었지만 만삭에 태아의 심장이 멎어 유산했다. 하나님을 떠난 방황을 회개하고 주께 돌아왔다.
다시 인공수정을 시행해 1차에 성공해 자연분만으로 첫아이를 품에 안았다. ‘기도하면 된다’는 믿음이 생겼다. 둘째 아이는 하나님께 기도해서 자연임신으로 얻고 싶었다. 여전도회원들과 교구식구들에게 ‘태의 문을 열어 달라’는 기도 제목을 내놓았다.
그러던 중, 매년 교회에서 진행하는 50일 작정기도회가 돌아왔다. 첫 25일간은 회개만 했다. 생각지 못한 죄까지도 하나님께서 다 회개케 하셨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반항심에 하나님을 떠나 절에 가서 우상숭배 한 죄, 사람을 미워하고 판단한 죄…. 눈물로 회개했다.
50일 작정기도회 반환점을 돌 무렵,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열어 주셨다’는 믿음이 생겼다. 오열과 함께 감사기도가 터져 나왔다. 2주 후, 임신테스트기로 검사했다. 양성 반응이었다. 임신 5주째에 산부인과에 갔더니 아기집이 보인다고 했다. 의학으로는 자연임신 할 확률이 희박해서 두 번이나 인공수정으로 임신했는데…. 하나님 은혜로 자연임신을 하게 되었다. 할렐루야!
50일간 경기도 양평에서 달려와 하루 두 시간씩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다. 정말 간절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받는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편이시다. 앞으로도 기도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수렁에서 건져 주신 주님께 영광을

맘껏 게임 즐긴다는 조건으로
어머니 성화에 못 이겨 등록

박지은 집사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다. 하지만 그것은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긴 강압적, 습관적 종교 생활이었다. 성인이 돼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친구들과 어울려 게임에 빠져 살았다. 그런 나 때문에 어머니 눈에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애원했다. “교회에 딱 한 번만 가자.” 울며불며 매달리는 어머니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결국 조건을 내걸었다. 연세중앙교회 주일 낮예배에 꾸준히 참석하면, 즐기고 싶은 게임을 마음껏 하게 내버려 두라고. 게임은 하루 24시간 해도 지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을 확 풀어줬다. 가상공간에서 만끽하는 쾌감을 중단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 주일 새가족부 모임,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려 보이는, 열아홉이나 스무 살짜리 새신자들이 설교 말씀을 듣고 과거를 참회하는 모습에 목석 같은 내 마음에도 파장이 일었다. 울며 회개하는 간증은 충격을 안겼다. “부모님께 반항하고 불순종했어요. 개성대로 살고 싶은데 말리는 부모님께 ‘참견 말라’며 대들었습니다. 이제 와서 보니 그것이 하나님 앞에 큰 죄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날 예배시간, 그렇게도 듣기 싫던 윤석전 목사님 설교 말씀에 내 눈에서 눈물이 그칠 줄 몰랐다. 게임 중독으로 나를 옭아매고 있는 실체가 악한 영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게임에 빠져 방탕하게 살다가는 내 영혼의 신세는 딱 지옥이라는 것을 깨닫자, 미치도록 살고 싶었다. 딸이 한심하게 살아가는 꼴이 가슴 아파 통곡하는 어머니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신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지옥의 수렁에서 나를 건지신 주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린다.


70대 중반에 맛본 구원의 기쁨

평생 예수 모른 채 살아오다
황혼에 참된 진리 만나 감사

심재완 성도
5년 전, 연세중앙교회에 첫발을 디뎌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처음엔 교회에 발을 내딛기가 쉽지 않았지만, 아들 내외가 노부모 구원을 위해 애타게 예수 십자가의 피 공로의 복음을 전하기에 마지못해 따랐다. 아내는 “나이 들어서는 자식 뜻을 따르는 것이 옳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들 부부를 신뢰하기에 아내와 공감대를 이뤄 나도 용단을 내렸다.
인생 말년에 교회에 와서 하나님 말씀을 들어 보니 참으로 진리의 말씀이요, 담임목사는 신실한 하나님의 종임을 알 수 있었다. 부모 자식 간의 질서마저 무너져 내린 요즘 세태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으로 회복하는 길, 나라 사랑의 길, 예수 십자가의 피 공로를 전하는 주의 종을 만난 것이 너무나 기뻤다.
우리 부부는 교회에 등록한 후 얼마 동안 매일 기도하러 집에서 버스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일산기도처’로 향했다. 방광의 기능 저하와 녹내장, 백내장이 겹쳐 수술도 할 수 없는 아내의 지병 치료를 위해 기도가 다급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주님이 역사하셔서 병원에서 병이 더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주일엔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기도 드리고, 아침 일찍 서둘러 오전 7시40분이면 궁동성전에 도착한다. 1, 2부 예배를 모두 드리고 남전도회 모임을 마치면 어느덧 저녁예배 시간이 다가온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전 성도 기도모임에도 참석한다. 저녁 9시 지나 일산행 셔틀버스에 몸을 싣고서 집으로 향한다. 성령이 일하시는 현장에서 주님을 사모하는 순수한 믿음으로 아내와 함께 끝까지 신앙생활에 승리하리라 다짐한다.


30년 골수 불교 신자가 예수 영접

사업 실패로 나락에서 헤매다
목회 준비하는 사촌 만나 개종


이윤식 성도
지난 30여 년간 불교에 심취했다. 불교 경전은 거의 다 섭렵했다. 절에서 숙식하며 5일간 ‘1만 배’ 수행도 했다. 거반 승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불교 행사에 빠짐없이 참가했다.
어느 날, 승승장구하던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아침에 눈뜨는 것조차 두려울 정도로 빚이 불어났다. 더는 사업을 운영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더욱 열성적으로 절에 다니며 부처를 찾았다. 끝 모를 어두운 터널을 혼자 걸어가듯, 극도의 절망과 외로움이 엄습했다. ‘진정 부처가 신이라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이렇게 정성 다해 찾았건만 아무런 위로도 응답도 없자 오랜 세월 섬긴 신에 대한 배신감이 몰려왔다.
그러던 중, 20년 만에 사촌 형님과 연락이 닿았다. 만나 보니 뒤늦게 신학 공부를 마치고 목회를 준비 중이던 형님은 나를 붙잡고 예수를 전했다. 내 죄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것이 사실로 믿어졌고,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내 죄를 회개했다. 30여 년간 젖었던 불교 신앙은 단번에 무너져 내렸다. 복음을 듣고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를 찾은 순간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내 소망은 오직 예수가 되었다!
예수 믿는 참된 진리를 만나고 보니, 그동안 불자(佛者)로 사느라 허비한 인생이 아까울 따름이다. 천신만고 끝에 주님을 만난 만큼, 예수 몰라 지옥 형벌을 피치 못할 자에게 복음 전하고 기도하며 주의 일에 충성하리라 다짐했다. 성령 충만한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도록 인도하신 주님께 찬양과 감사로 영광을 올려 드린다.



지금은 주님 품 안에서 한없는 기쁨

불면증과 고혈압에 시달리다
세탁소 주인 전도로 등록


양영애 성도
자녀 다섯을 혼자 키웠다. 육신은 고되고 삶은 팍팍해 죽고 싶었다. 삶의 무게는 천근만근이건만 잠은 오지 않아 매일 불면의 밤을 보냈다. 불면증이었다. 자리에 누우면 심장이 팔딱팔딱 뛰었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느 날, 눈앞이 핑 돌았다. 정신 줄을 놓았는지 쓰러졌다. 병원에서는 고혈압과 불면증이 원인이라며 신경정신과 약을 처방했다. 그때부터 우울증 약과 수면제를 수시로 먹었다. 그렇게 10년 동안 약에 의지해 살아왔다.
어느 날, 세탁소에 갔다가 세탁소 주인에게 전도받았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예수 믿으라는 소리는 많이 들어 봤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귀가 솔깃해지면서 세탁소 주인이 전해 준 연세중앙교회라는 곳에 가 보고 싶어졌다.
연세중앙교회에 처음 온 날, 내 모든 죄와 세상 짐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대신 짊어지고 죽으셨다는 설교 말씀이 큰 위로가 됐다. 사실 그동안 혼자서 버티느라 너무 힘들었었다. 내가 무너지면 우리 집안이 다 무너지겠기에 이를 악물고 견뎠다. 그런데 설교를 듣고 나서 하나님께는 다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님 아버지, 불쌍한 저를 보살펴 주세요. 내가 살길은 여기뿐이에요.’ 그렇게 울며 간절히 기도하는 동안 켜켜이 쌓인 삶의 응어리가 하나둘 풀어졌다.
신앙생활을 하고부터는 10여 년간 달고 살던 우울증 약과 수면제를 찾지 않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약의 존재를 잊고 산다. 지금은 주님 품 안에서 한없는 기쁨을 누린다.

위 글은 교회신문 <62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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