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친해지기] 오케스트라의 서열과 천국의 서열

등록날짜 [ 2016-04-26 21:44:42 ]

지휘자 중심으로 가까울수록 서열이 높다는 의미

신앙생활은 섬길수록 천국에서 큰 영광 얻을 것

 

요즘은 학교에서도 모든 학생의 성적을 게시판에 붙여 공개하지 않는다. 학생의 성적과 석차만을 개별적으로 통보한다. 그런데 음악대학, 예원, 예고와 같은 음악 학교들은 지금도 모든 학생의 실기 성적을 게시판에 붙인다. 여러 심사위원이 평가한 점수의 평균인지라 0.01점 차이로 순위가 뒤바뀐다. 이들은 왜 이렇게 모든 학생의 점수를 게시판에 붙이는 잔인한(?) 통보 방법을 사용하는 것일까?

 

오케스트라(관현악단)자리배치때문이다. 오케스트라는 객석에서 바라보았을 때 가운데 지휘자를 중심으로 왼쪽 제일 앞에 제1과 제2바이올린, 오른쪽 제일 앞에 첼로와 비올라가 배치된다. 이들 뒤 2선에 목관악기가 배치되고, 목관악기 뒤편 3선에 금관악기와 타악기가 배치된다.

 

문제는 같은 파트 내에서 누가 상석에 앉는가. 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는 각각 2열종대로 앉는다. 이렇게 2명이 짝을 이룬 한 줄을 풀트’(Pult)라고 한다. 제일 앞 2인조가 1풀트, 그다음 줄이 2풀트, 이런 식으로 매겨진다. 당연히 1풀트가 2풀트보다 상석이고 제일 서열이 낮은 사람이 끝 풀트에 앉는다. 또 같은 풀트 내에서 관객석 쪽을 아웃 풀트(out pult), 무대 안쪽을 인 풀트(in pult)라고 한다. 당연 아웃 풀트가 상석이고 인풀트가 말석이다. 인 풀트에 앉는 사람은 자기 연주를 잠시 중단하더라도 아웃 풀트 주자를 위해 악보를 넘겨 주어야 한다.

 

만일 오케스트라에서 여러분이 알아서 사이좋게 앉으세요라고 지시를 내린다면 화약고 안에서 모닥불 피워 캠프파이어를 즐기시죠라는 소리나 똑같다. 3차 대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음악학교 학생들에게는 실기점수가 발표되는 그 날이 오케스트라 자리를 재배치하는 날이다. 지난 학기에 1등을 해서 악장을 하던 연주자도 1등을 놓치면 바로 옆자리나 뒷자리로 알아서빠져 줘야 한다.

 

항공사의 퍼스트클래스 좌석 배치도 오케스트라만큼이나 까다롭다. 퍼스트 클래스에 탑승하는 높으신 분들 사이에도 잠재적인 서열이 있다. 정계인지 재계인지, 재계라면 재산 순위 몇 위인지, 사회적 지명도는 어떤지에 따라 좌석을 배치하느라 항공사 관계자들은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 된다.

 

제일 상석은 좌측 창가의 2번째 열이다. 어떤 회장님은 자신보다 열위의 사람을 그 자리에 앉혔다고 난동을 피워 블랙리스트에 오를 정도니까.

 

여기서 발견되는 흥미롭고 분명한 원리는 높아질수록서열과 자리에 예민해지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 그저 음악이 좋고, 연주할 기회를 얻은 것이 감사할 따름인 말석 연주자는 카메라 한 번 비춰 주지 않더라도 연주 자체를 즐거워한다. 또 난생처음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간다면 좁은 이코노미 가운데 좌석에 끼어서 플라스틱 포크로 냉동 기내식을 먹는다고 해도 기쁠 것이다. 퍼스트클래스의 최고 서열 자리에 못 앉았다고 속을 부글부글 끓이며 애꿎은 승무원에게 화풀이하는 사람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직장에서도 식사할 때, 문 쪽인지 안쪽인지, 가운데인지 바깥쪽인지에 따라 앉는 서열이 정해진다. 심지어 택시를 탈 때도 좌석 배치도가 있다. 유능한 보좌관은 어떤 경우의 수에도 0.1초 안에 머릿속에 좌석배치도를 그려 낸다. 대기업이나 고위층의 만찬회장 입구에는 반드시 좌석배치도가 나와 있고, 누구를 어디 앉힐까를 두고 사전에 격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필자는 음악 달란트를 받아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고 편곡 충성을 한다. 그러다 나의 권한과 자리는 객관적으로 다른 누군가에 비해 공정하지 않다고 주의 종에게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당시 성령께서는 그 종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당신이 진정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받은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과장이 아니었음도 깨닫게 해 주셨다.

 

말로만 주여’ ‘주여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인 된 인생을 산다면, 남들에게 떠받들어지거나 자신을 그렇게 높이려고 기를 쓰며 살 수 없다. 진정 예수 믿는 이 가운데에서는 서열분쟁이나 섭섭함도 없다.

 

주님은 영원한 천국에서 높아지려거든 낮아지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사도 바울과 같은 진정한 전도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낮은 자 되어 예수만 드러낸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5).

 

사도 바울은 지금 천국에서 그 누구보다도 영광스러울 것이라 확신한다.

박성진

바이올리니스트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

위 글은 교회신문 <47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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