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대타’이거나 ‘땜질’이라도 누리는 영광

등록날짜 [ 2016-08-08 14:06:52 ]

항상 준비된 자는 언제 어디서든 그 때가 반드시 오나니

신앙에도 환경에 낙담치 말고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지휘자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1957, 사진)20세기 초반 뉴욕 필하모닉이나 NBC 교향악단에서 상임지휘자를 지냈다. 거장인 그도 원래는 난시여서 악보 보길 어려워하던 첼로 연주자였다. 토스카니니는 그런 핸디캡을 극복하고자 악보를 전부 외우곤 했다. 하루는 토스카니니가 속한 악단 지휘자가 갑자기 입원했다. 단원 중 유일하게 악보를 모두 외운 토스카니니가 대신 지휘를 맡았다. 그 사건을 계기 삼아 토스카니니는 마에스트로(거장 지휘자를 일컫는 말)’ 반열에 올랐다.

젊은 나이에 바로크 성악 분야에서 정상급 디바(훌륭한 여자 가수)에 발돋움한 소프라노 임선혜도 비슷한 경우다. () 음악 거장인 필립 헤레베헤는 1999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모차르트 C단조 미사 공연을 지휘했다. 공연을 얼마 앞두고 솔리스트가 펑크를 내자 헤레베헤는 이 곡을 해 본 적 있느냐고 물었고 임선혜는 무조건 해 봤다고 말했다. 그날 밤새워 곡을 연습한 임선혜는 7시간 기차를 타고 가서 무대에 선 후 스타덤에 올랐다.

런던 로열오페라와 유럽의 권위 있는 바그너 오페라에서 앞다퉈 초빙하는 사무엘 윤의 인기는 20127, 바그너 오페라 축제에서 주연 대타로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또 대지휘자 엘머 번스타인(Elmer Bernstein),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도 대타로 뜬 사람들이다. 음악계뿐 아니라 칼럼니스트, 탤런트, MC 등 대중매체 분야에서 대타 에피소드는 무수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은 우리 삶이 대타를 하면서 인도받거나 흘러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맡고 있는 직책.의무.역할은 각자에게 처음부터주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대타.

단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사실 대타의 성공 사례보다는, “역시 땜빵은 한계가 있어라고 마무리되는 실패 사례가 훨씬 많다. 성공한 이들은 대타 기회가 오기 전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극소수 사람들이다. 기회가 언제, 어떻게 오는지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 날을 준비하고 내 생각만큼 되지 않는다고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은 결과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에게 달란트 사업을 벌일 기회를 육신이 있는 동안 계속 주신다. 만물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일이 이루어지는 와 기회의 모양에 대해 자기 자신의 참견이 필요 없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는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은 낙담’‘염려’‘비교.

요즘 사람들은 흙수저금수저니 하면서 부모에게 물려받은 부()가 사회 계급을 결정한다는 자조적인 표현을 자주 입에 담는다.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심을 부정하는 표현이다. 함부로 신세 한탄하고 부모 탓, 남 탓하는 죄를 짓게 해서 하나님이 부어 주실, 복 담을 그릇을 깨진 쪽박으로 만들고 마귀에게 속하게 하는 사고방식이다.

다윗은 가장 보잘것없던 막내아들이었지만 사울 왕의 대타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사무엘 역시 에브라임 지파라는 출생의 한계를 뛰어넘어 레위 가문의 엘리와 그 아들들을 대신해서 제사장이자 선지자이자 사사가 되었다. 그들은 사자 아가리에서 양을 되찾는 충성과 하나님 음성을 들을 만큼 경건이 있었다. 스스로 자리를 넘보거나 성막의 사환에서 제사장으로 승진해야겠다고 작정한 적이 없었다. ‘왜 나를 이제야 알아보냐’’자존심 상하게 땜빵이냐하는 교만도 없었다.

성경 인물 중 대타의 최고봉은 열두 제자에 속한 맛디아(Mathias)’일 것이다. 사도행전 122절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리라하여 가룟 유다의 자리를 뽑기로 메운 사람이다. 맛디아는 사도행전 1장 이후 더는 언급되지 않지만, 성경은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라고 확실하게 기록한다. 역사 기록에 맛디아는 다른 초대교회 제자들처럼 예수께서 부활(17:31)하셨다는 사실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나온다.

여전히 십자가에 달려 계신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살아 계신 주. 창세 전부터 영원토록 계시고 그 영원 가운데 삼일 동안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셨다가 지금은 우리의 주인이 되시려고(14:9) 다시 사신 주. 인생의 주요, 기회를 주시는 주를 믿는 자가 할 일은 내가머리 굴리고 내가무엇이 되려고 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언제든 마음껏 쓰시도록 준비하는 것, ‘항상 함께 다니는 것뿐이다. 그렇게 하나님이 쓰실 대타가 되어 삶을 마감한다면 영혼의 때에 누릴 영광이 얼마나 클 것인가. 또 이 세상에서 유명한 대타 전설과 비교조차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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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

미래에셋증권 상무

위 글은 교회신문 <49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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