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따뜻한 겨울을 그려낸 피아졸라의 사계(四季)

등록날짜 [ 2016-09-22 15:56:12 ]

차가운 바람만 부는 싸늘하고 축축한 마음에서 벗어나

진정한 복이 넘치는 그리스도인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사진설명>반도네온을 연주하는 피아졸라<사진설명>반도네온을 연주하는 피아졸라

 

사계(四季)’ 하면 바이올린 솔로가 있는 현악합주 모음곡을 연상할 것이다. 비발디(A. Vivaldi) 작품인데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널리 사랑받는 작품이다. 그런데 반도네온(탱고 음악에 많이 쓰이는 아코디온처럼 생긴 악기) 연주자 겸 클래식 작곡가인 아르헨티나 출신 피아졸라(Piazzolla)사계(四季)’를 작곡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四季)’라는 부제목이 붙었다. 나중에 이 모음곡은 러시아 데샤트니코프가 비발디 사계처럼 바이올린 솔로와 합주로 편곡해 널리 연주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겨울부분도 겨울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피아졸라는 그저 선선한 가을에 맛보는 넉넉한 움츠림을 느린 리듬을 통해 겨울로 그려 낸다.

이런 특이점은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겨울이 얼마나 따뜻한지 안다면, 이해가 된다. ‘겨울나무’ ‘겨울 나그네같은 혹독하고, 쓸쓸하고, 얼어붙은 이미지가 피아졸라에게는 아예 없다. 개인적으로 피아졸라의 사계를 비발디 것보다 좋아한다. 형식에 구애하지 않는 넉넉함, 자유로운 박자 변화, 몸을 들썩이게 하는 탱고 풍 흥겨움이 좋다. 특히 이 곡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겨울조차 풍요롭게 그려 내는 복스러움이 있어서다.

예전에 어느 목사님께서 부족한 재정에도 한 가정을 오래오래 구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유를 여쭤 보았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타깝게도 저들의 심령 밭은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 땅입니다. 어떤 씨를 뿌려도 뿌리내리지 못해 우리가 돕지 않으면 정말 죽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복에 대한 말씀이었다. 그 후로 주님 안에서 진정한 복을 소유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눈여겨 관찰해 보았다. 해와 비와 공기는 의인이나 악인에게 동일하게 공급된다. 그러나 어떤 이의 밭은 씨앗 하나도 발아(發芽)하기 어려운 동토(凍土)인데, 어떤 이의 밭에서는 나물이 나무처럼 자란다. 그 결정적인 차이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순종하는 삶속에서 울며 씨를 뿌리는 과정을 꾸준히 축적했느냐, 아니면 자신이 주인 행세하며 인생을 허비해서 씨를 뿌리기는커녕 밭을 갈아엎지도 않느냐에 있다.

리트머스 시험지는 산성에서 붉게, 염기성에서 푸르게 변한다. 복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심사가 분명 다르다. 조심해야 할 것은, 드러나는 언행심사만 보고 세상 종교처럼 복 받는 것이 마치 어떤 선행에서 비롯된다고 착각하며 판단하고 정죄하는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 복 있는 사람은 타인을 비방하고 누군가를 중상모략하는 자리를 피한다. 그 같은 오만한 자리에 함께 앉지도 않는다. 욕과 저주와 희롱이 그 입에 없다. 부모와 스승과 어른이 하는 말씀을 경청한다. 눈속임으로 하는 척하지 않는다. 복 있는 사람은 길바닥에 아무 생각 없이 뱉는 침, 성전에 떨구는 아주 작은 쓰레기 하나도 마음이 불편해 견딜 수 없다. 쓰레기통이 넘쳐도 나 몰라라 아무렇게나 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복 있는 사람은 그런 사소한 잘못이 얼마나 자기 인생을 혹독한 겨울로 몰아가는지를 성령의 지혜로 깨달아 안다. 혹은 부모님께 잘 배운 경우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복은 유전된다.

복 있는 사람만 복을 유전할 수 있다. 부모가 비틀어진 사고 구조를 가지면 자녀도 그렇게 되어 저주를 유전한다. 복 있는 부모는 자기 자녀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방해해 행여 자기 밭을 잃을까 두려워한다. 그런 자녀가 맞이할 척박한 겨울 같은 인생을 알기에, 부모는 자식이 아기 때부터 알든지 모르든지 예배를 방해하는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조심한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과 예배에 목숨을 건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파는 경거망동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남의 돈을 떼먹지도 않는다. 사소한 잘못에서 오는 영적인 참담한 결과를 잘 알고 있어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려고 우리에게 의지와 인격을 주셨다. 또 인간이 그 의지를 잘못 써서 죄짓고 지옥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대속 제물로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시려고 처음부터 준비하셨다. 그리고 죄로 죽게 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셨다. 그렇게까지 우리를 로봇이 아닌 사랑할 관계로 지으신 하나님께서 복을 주고 싶어 얼마나 애타 하실까.

그런데 복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사소한 편리와 이익에 눈멀어 장자권을 팔고도 아버지 이삭이 다시 축복해 주면 되잖아?’라는, 에서 같은 사고방식에 절어 있다. 그래서 주의 종과 부모 형제와 성도들과 예수의 핏값으로 사신 영혼들을 업신여긴다. 예배와 복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자기 밭을 겨울 툰드라로 만든다.

하나님과 우리는 인격적인 관계이기에 스스로 자기 계절을 겨울로 몰아간다면 방법이 없다. 그래서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죄를 깨닫고 회개하라고. 피아졸라의 사계처럼 겨울에도 초목을 키울 수 있는데, 왜 시베리아 벌판에서 손발 얼어 가며 헛수고로 피곤에 지쳐 있느냐고.





<함께 듣는 음악>

피아졸라 작 '사계(四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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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

미래에셋증권 상무

위 글은 교회신문 <495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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