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음악은 늘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하이든

등록날짜 [ 2018-11-19 14:48:45 ]

독실한 신앙 가진 부모 밑에서 성장
음악 재능을 ‘하나님 은총’이라 생각
모든 작품 앞에 ‘주님의 이름으로’
끝엔 ‘하나님을 찬양하라’ 꼭 붙여
세계 3대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작곡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 나눠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고전파를 대표하는 음악가다. 교향곡 106곡, 현악 4중주 68곡을 만들어 고전 시대 기악곡의 전형을 정립했다. 또 제1악장 소나타 형식을 완성하여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동시대에 활동한 유명 작곡가인 모차르트와 베토벤까지 영향을 받았을 정도로 명실상부 음악계의 거장이다.

하이든은 오스트리아 동쪽 로라우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마차 수리공인 아버지 밑에서 12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인 하이든은 6세 때, 수양 아저씨 프랑크의 집에 맡겨져 교육을 받았다. 거기서 스테파노 대성당의 소년합창대에 들어가 당시 오스트리아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총애를 받았다. 하지만 변성기를 겪으면서 1749년 합창대를 나왔고, 그 후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졌다.

 
교향곡 외 협주곡·실내악곡도 많이 만들어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도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가던 하이든은 예술의 열렬한 옹호자인 헝가리 귀족이자 아이젠슈타트 성주(城主)인 파울 안톤 후작의 관현악단 부악장으로 취임했다. 안톤 후작이 타계하자 그의 동생인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이어 하이든의 음악 활동을 열렬히 후원했다. 하이든은 30년 가까운 세월을 니콜라우스 집안의 충실한 악장으로 근무하며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 기간에 작곡한 교향곡 <고별>과 관련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니콜라우스 후작이 ‘베르사유 궁전’에 자극을 받아 새로운 ‘에스테르하지 별궁’을 세우고 여름에 전속 음악가를 동행해 그곳에서 지냈다. 1772년 여름, 후작과 동행한 하이든은 체류가 길어지자 지친 단원들의 마음을 대변하여 교향곡 <고별>을 작곡해 연주했다. 마지막 악장에서 단원들이 하나둘씩 연주를 멈추며 악기와 함께 퇴장하는 퍼포먼스를 음악에 넣었다.

하이든은 부지런하고 서글서글한 성격 덕분에 단원과 사이가 원만해 교향곡 외에도 단원을 독주자로 하는 협주곡과 실내 악곡을 많이 쓰기도 했다. 작곡가로서 명성도 전 유럽에 퍼져 나갔다. 1790년 니콜라우스 후작이 사망하자 하이든은 ‘명예 악장’이라는 칭호를 받고 그 직에서 물러났다.

이 무렵 하이든은 독일의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런던에서 오케스트라를 거느린 J.D. 잘로몬의 권유로 영국으로 건너가 작곡 활동을 했다. 그 능력을 인정받아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명예 음악 박사’ 칭호를 받았다. 

이후 하이든은 다시 니콜라우스 집안의 악장으로 되돌아가, 예배곡 6곡과 오라토리오(17∼18세기에 가장 성행한 대규모 신앙 극음악) 2곡을 작곡했다. 노년에 건강이 악화되자 창작 활동보다는 자신의 작품 목록 작성에 힘썼고, 1809년 7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작품마다 ‘주님을 찬양’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하이든은 독실한 신앙을 지닌 부모 밑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배우며 성장했다. 부모의 이런 신앙 양육 덕분에 하이든은 자신에게 주신 음악 재능을 하나님의 은총이라 여기며 자랐다. 

하이든은 평생 하나님을 위한 음악 활동을 펼쳐 나갔다. 그는 모든 작품에 ‘주님의 이름으로’라는 서두로 시작해 곡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두 말을 반드시 붙였다. 또 “음악은 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말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곡을 쓰는 데 더욱 힘썼다. 영국 체류 당시, 헨델의 <메시아>를 듣고 큰 자극을 받아 자신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을 만드는 데 열중하리라 결심했다. 하이든은 창세기와 존 밀턴의 소설 『실낙원』을 바탕으로 2년에 걸쳐 1798년 <천지창조>를 작곡했다. 하이든의 음악 생활 결산이라 여겨지는 <천지창조>는 헨델의 <메시아>, 멘델스존의 <엘리야>와 더불어 세계 3대 오라토리오의 하나로 자리매김한다. 이후 계절의 변화에 따라 농부의 시선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감사를 노래한 <사계>를 작곡하면서 말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곡을 쓰는 데 전념했다.

그가 <천지창조>를 작곡하는 동안은 하나님과 가장 깊은 교제를 이루고 그의 생애에서 가장 경건한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매일 피아노 앞에 앉기 직전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훌륭하게 찬양할 재능을 달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했다. 하이든이 죽기 전 마지막 참가한 연주회에서 <천지창조> 연주가 끝나고 청중이 그에게 환호를 보내자 하이든은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들고 외쳤다.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십시오.”

하이든은 자신의 집의 작은 골방을 기도실로 만들어 늘 기도하며 하나님께 받은 영감으로 작곡을 했다. 명성을 얻은 후에도 사람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나 교만하거나 거만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늘 겸손한 자세로 자신에게 재능을 주신 하나님께 그저 감사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4:6).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사용하신다. 우리에게 주신 물질, 환경, 건강, 재능이 다 주님에게서 온 것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주님 영광을 위해 사용할 때 하이든과 같이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부어 주시며 크게 사용하시리라.
 
/ 김찬미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60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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