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암울한 시대, 나라 위해 기도했던 시인 윤동주

등록날짜 [ 2018-07-19 16:38:51 ]


문학동네/김응교 著


윤동주는 스물여덟이라는 짧은 생을 살며 시 110여 편을 남겼다. 한국 문학사를 넘어 한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된 윤동주의 삶과 죽음 그리고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시까지…. 『처럼, 시로 만나는 윤동주』는 작품이 나오기까지 시인의 고뇌, 가치관, 시대적 배경 등이 사진과 함께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어 보다 깊이 있게 윤동주를 만나 볼 수 있다.

윤동주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의 삶과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기독교 신앙은 자신의 삶 가운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가르침을 시혼(詩魂)으로 밝혀 시 안에 녹여 냄으로써 우리나라 역사가 안고 있는 아픔과 상처로 얼룩진 비참한 시절에도 타인의 괴로움을 외면하지 않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것을 당부한다. 윤동주는 고통을 나누는 순간, 개인도 ‘행복’한 주체가 되는 길을 택할 수 있고, 그 길을 ‘행복한 길’이라고 썼다.

윤동주는 책만 읽고 글만 쓰는 조용한 사람이 아니었다. “윤동주는 용정 은진 중학교에서 축구선수로 뛰고, 교내 잡지를 만들고, 웅변대회에 나가는 등 한번 하면 무엇이든 집중해서 하는 소년이었습니다.”(p.49~50) 운동을 좋아하고, 자신의 생각을 나눌 줄 알고, 표현할 수 있었기에 조선말 사용이 금지된 시대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모국어로 시를 썼던 그의 포부는 순수성과 진정성의 응집으로 다져진 내실 있는 신앙 인격을 소유했기에 가능했다.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십자가』 中 (P. 509)

보편성을 강요하는 파시즘 시대에 한계를 깨뜨리는 저항의 언어이고 자유에 목숨을 거는 결단의 순간을 윤동주는 매일 다짐했다. 그렇기에 그 내면이 언어로 표출되었고, 윤동주의 삶 자체가 주는 강력한 외침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우리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일깨우게 한다.

당시 윤동주는 사상범을 다루었던 일본의 특별고등검찰, 소위 그 무시무시하다는 ‘특고(特高)’에 체포되어 심문받았다.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린다는 특고의 심문에 윤동주가 빌었다든지 구차한 모습을 보인 흔적은 전혀 없다(p.451). 일제의 탄압이 심해질수록 그의 마음은 더욱 가다듬어졌다. 나라의 광복을 위해서는 있는 것을 다 바쳐야 한다는 윤동주의 결의는 신앙인으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경종을 울린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좆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2:2).

신앙 인격으로 무장해 순교의 정신으로 마지막 때를 준비해야 할 시대적 상황에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追憶)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자화상』(1939.9) (P.234)


/글 김경희


 

위 글은 교회신문 <58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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