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 칼럼] 은혜를 아는 자의 복

등록날짜 [ 2023-11-28 23:17:57 ]

예수님의 은혜의 말씀 듣길

사모해 사흘 동안 모인 자들

날수만큼의 품삯 포기했으나

예수로부터 천국 복음 듣고 

칠병이어 놀라운 이적 경험


마가복음 강해(20)

마가복음 8~10장은 7장에 이어 예수께서 탄식하시는 내용으로서 우리가 무엇을 봐야 하는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무엇을 좇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더불어 예수께서 자신이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고난 받고 죽어 부활할 것인지를 세 번 반복해서 알려주십니다. 지금부터 예수님의 탄식하신 내용과 예수님의 수난, 죽음, 부활의 예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역 한가운데를 통과하면서 병든 자를 고치며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막7:31). 갈릴리 동쪽에 있는 ‘데가볼리’는 ‘열 개의 도시’라는 뜻으로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도시였습니다. 이 지역을 통과하면서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는데, 남자만 4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3일이 지나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막8:2). 주님께서는 사흘 동안 무리에게 복음을 가르치면서 그들의 양식이 떨어진 것을 걱정하셨습니다. 무리 가운데는 멀리서 온 사람이 상당수 있었기에 현재 상태로 흩어 보낸다면 그들이 먼 길을 가는 동안 주려 기진할 것까지도 아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형편을 얼마나 섬세하게 헤아리고 계시는가를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처한 모든 형편을 다 헤아리고 계실 뿐 아니라 도우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기도해야 주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굶주린 무리를 염려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답변합니다. “이 광야에서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막8:4). 현실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불과 얼마 전에 벳새다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남자만 5000명이나 되는 무리를 먹이신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제자들로서는 지극히 불신앙적인 모습입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주는 수많은 이적을 보았으면서도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내내 이러한 불신앙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불신앙 태도를 보이는 것이 비단 제자들뿐일까요? 우리도 지금까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주님의 은혜로 많이 해결받아놓고도 문제를 만날 때마다 낙심과 좌절에 빠져 불신의 말을 한다면 주님의 능력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주님의 능력을 망각하기에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모든 염려를 버리고 기도함으로써 문제를 해결 받는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갑시다.


수많은 무리를 바라보며 절망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고 예수께서 물으시자 제자들은 떡 일곱 개를 내어놓습니다.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주님이 축사하셨는데, ‘축사(祝謝)’의 어원적 의미는 ‘감사하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다’ 입니다. 떡은 겨우 한두 사람이 먹을 적을 분량이지만, 예수께서는 감사 기도를 올려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성인 남성만 4천 명, 여성, 어린이, 노인을 포함하면 적어도 1만 명 넘는 사람이 배불리 먹고 일곱 광주리나 남는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이러한 작은 것에 대한 감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현실을 보면서 감사하기보다는 불평하고,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는 당연하게 여기며 만족할 줄 모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기에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부스러기 같은 은혜라도 감사히 받겠다는 겸손한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막7:25~30). 이적이 감사를 낳는 것이 아니라 감사가 이적을 낳는 법입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 예수님을 따라 모인 사람들의 형편도 여유롭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소작이나 매일의 노동으로 살아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사흘 동안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는 것은 날수만큼의 품삯을 포기한 셈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머물면서 천국 복음을 들었고, 여기에 더하여 칠병이어의 놀라운 이적까지 체험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은혜와 축복을 받습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평안하거나 때로 삶에 문제가 생길 때도 먼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섬기고 하나님 말씀을 우선하면 시험과 고난을 이겨낼 능력을 얻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과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표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불신앙

예수께서 사람들을 흩어 보내시고 제자들과 배에 오르사 다시 유대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십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합니다. 구약의 말씀에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온다고 했는데(단7:13~14),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면 그 증거를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구약에 인자가 하늘로서 구름 타고 오시는 날은 주님의 재림, 심판의 날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깊이 탄식하시며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막8:12)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물 위를 걷고, 5천 명과 4천 명을 먹이고,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도록 보여주셨습니다. 이미 이토록 많은 표적을 보여줬는데 무슨 표적을 더 보여 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약 예수께서 진짜로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여준다면 바리새인들이 믿었을까요? 그들이 믿지 않기로 작정했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라며 예수님의 출신 성분을 놓고 그리스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적을 보여줘도 믿지 않으려고 거부하면서 괜히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적을 보여주시는 이유는 사람들이 예수께서 전하시는 천국 복음을 잘 듣고 믿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 본질을 보지 못하고, 이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 불신앙 때문에 예수께서 답답해하며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82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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