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파국으로 치닫는 남북관계…북 ‘남한은 적’

등록날짜 [ 2020-06-13 11:07:33 ]

급기야 북한이 현 정권을 ‘적’(敵)으로 규정하고 나섰다. 김여정 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對敵) 사업’으로 전환하고 남한과의 모든 통신 연락선을 완전히 차단해버릴 것을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9일 보도했다. 김여정은 앞서 지난 4일에도 노동신문에 담화를 내고 대북 전단, 이른바 삐라에 대해 응분의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있으나 마나 한 남북군사합의도 파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여정의 한 마디에 화들짝 놀란 정부와 여당은 즉각 대북 전단 살포를 막기 위해 백방으로 방법을 찾고 있다. 김여정 앞에서조차 한없이 순하고 작아지는 정부 여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대북 전단 살포만 막으면 남북 간의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전단은 구실이고 앞으로 북한은 차근차근 도발을 감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영철의 등장이 이를 예고하고 있다. 천안함 폭침의 주범 김영철은 정찰총국장으로 있을 당시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하고 각종 대남 군사도발을 기획해 실행에 옮긴 인물이다. 수많은 남파간첩을 내려보내고 각종 테러를 배후에서 지휘한 인물이 김영철이다. 이런 김영철이 지난해 3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른바 ‘하노이 노딜’ 이후 통일전선부장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나타나면서 북한의 대남 군사 도발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은 다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각종 도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북한의 이런 분노에 찬 태도는 새로운 게 아니다. 대표적으로 이미 북한은 지난해 9월 쌀 지원을 거부했고, 11월에는 금강산 시설물 철거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또 지난 3월에는 북한이 방사포를 발사한 데 대해 청와대가 우려를 표명하자 김여정은 청와대를 “저능한 사고” “겁먹은 개” 등 욕설에 가까운 언어로 비난했다. 이런 사례들은 이제 손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많다.


과거 어느 정부보다도 은밀하게 혹은 드러내놓고 대북지원에 발 벗고 나선 문재인 정부를 왜 북한이 적(敵)으로까지 규정하고 협박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것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김정은의 배신감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에 말려든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했다. 대표적으로 문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2017년 말까지 정전협정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겠다고 했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합의 없이는 불가능한 과제다. 또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가동을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다. 이 또한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 때문에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배석자 없이 김정은과 만나면서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는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 가운데 지켜진 게 몇 가지나 될까? 지금 현 정부에 대한 김정은 김여정의 분노를 보면 별로 없는 듯하다.


다음으로 지난해 3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미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에 성공할 것으로 확신했던 듯하다. 당시 노동당 선전선동부장이었던 김여정은 하노이로 떠나는 김정은을 위해 평양역에서 숱한 주민과 간부를 모아 요란하게 환송식까지 열어줄 만큼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김여정은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했고 북한 주민과 무역일꾼은 위대한 지도자 동지가 트럼프 대통령과 담판을 지어 이제 살 만한 세상이 오게 됐다고 들떴다고 한다. 청와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북 합의문 서명식 당일 문 대통령도 회담 성공을 확신하고 노영민 비서실장 등 참모들과 함께 서명식을 TV 생중계로 지켜보려다 회담 결렬 소식이 전해지자 당황했다. 다시 말해 김정은과 문 대통령은 회담 성공을 확신했다. 하지만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일본에는 극비리에 회담이 안 될 것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김정은으로서는 이 모든 게 문 대통령 탓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정황이다.


하노이 노딜 이후 수령으로서 김정은의 신(神)과 같은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김정은은 수령을 신격화하지 말라는 지시까지 내리게 됐고, 최근 노동신문에서는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투쟁에서 썼다는 ‘축지법’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김정은 정권이 뿌리째 흔들린 것이다. 더구나 대북제재로 북한 경제는 제2의 고난의 행군을 맞고 있고 평양 시민에게까지 배급이 거의 끊긴 상태라고 한다.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통일의 메아리’는 문 대통령에 대해 “오히려 선임자들보다 더 하다는 생각이 든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문 대통령보다 나았다는 의미다. 땅에 떨어진 수령의 권위, 바닥으로 떨어진 북한 주민의 삶, 대북제재로 김정은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려 있고 그 분노와 절망감은 현 정부를 향하고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80호> 기사입니다.


이웅수 집사
KBS 보도국 기자
신문발행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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