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과 훌] 올림픽과 아름다운 4위

등록날짜 [ 2021-08-13 00:20:55 ]

메달 색 연연하지 않고 성숙하게

응원하는 국민, 언론 모습 보면서

대한민국 자존감 성장했다고 느껴

자존감은 타인을 수용하는 성숙함


일부러 찾아볼 만큼 스포츠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연구 활동으로 바쁘다 보니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가 있어도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더구나 이번 도쿄 올림픽은 시작하기 전부터 제대로 진행되기 어려우리라는 논란도 많았기에 더욱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막상 경기가 열리니 감동적인 모습들이 신문과 뉴스로 연일 보도되어 스포츠의 매력을 새삼스레 느끼게 한다.


내가 가장 주목한 것은 도쿄 올림픽에서 우리 언론과 국민이 경기를 중계하거나 뒷일을 보도하고 관전하는 태도가 성숙해졌다는 점이다. 3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 때부터 우리 국민은 승부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면서, 전 세계에서 방한한 선수들을 열심히 응원해 주고 대접하며 외국에 좋은 인상을 주기 시작했다. 단적인 변화로, 예전에는 올림픽 뉴스를 전하면 항상 금메달을 기준으로 한 순위 보도를 강조하면서 우리나라가 몇 위를 할지 예측하는 기사가 많았다. 아무리 경기를 잘했어도,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은메달이나 동메달에 머물면 선수들은 풀이 죽었다. 그리고 양궁, 사격, 태권도 등 우리가 강세인 종목만 관심을 두면서 비인기 종목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승부 결과를 떠나 게임 자체를 즐기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우리 선수들이 많이 보여 줬고, 국민들도 성적과 상관없이 투혼을 보인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대표적 사례가 육상 높이뛰기 결선에서 4위를 기록한 대한민국의 우상혁 선수에게 찬사와 격려를 보낸 것이다. SNS 댓글에도 “국가대표 해 줘 감사하다”, “내게는 최고의 선수다” 같은 격려가 줄을 이었다고 한다. 올림픽 첫 ‘노골드’를 찍은 태권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우리나라의 태권도가 세계화된 결과라고 자부하면서 선수들을 격려해 준 것도 국민적 성숙성을 보여 준다.


나는 이것이 집단 차원의 자존감(self-esteem)이 성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보통 자존감(自尊感)과 자존심(自尊心)을 구분하지 않지만 많은 차이가 있다. 자존감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고 성과를 낼만한 유능한 사람이라는 믿음이지만, 본질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다. 자존감이 낮으면 시기, 질투, 의심 같은 부정적 정서가 많고 남을 자주 비난한다.

반면 자존심은 자신의 품위와 평판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심리적 방어 기제에 가깝다. 남이 자신을 조금이라도 무시하면 참지 못하고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조바심이 특징이다. 자존감이 높으면 인생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은 까닭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타자를 수용하는 열린 태도가 시너지를 내기 때문이다. 집단 심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못살던 시절에는 변변하게 내세울 게 없고 열등감도 많아 국제대회 같은 곳에서 금메달이라도 따면 과도할 정도로 감격해하고, 선수들에게도 1등만을 강요하는 자존심이 대세였다.


이번 도쿄 올림픽 탁구 혼합복식 결승전에서 일본에 패해 은메달에 머문 중국 남녀 선수가 “중국 국민에게 미안하다”며 눈물로 사죄한 일이 국제적으로 빈축을 사고 있다. 올림픽 은메달도 대단한 성과인데 이들은 죄인을 자처했으며, 중국 네티즌들은 “이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라고 선수로 내보낸 게 아니다”라며 선수들을 맹비난했다. 오죽하면 영국 BBC도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를 매국노로 평가하는 민족주의를 비판했다.


중국은 미국과 세계 1, 2위의 경제 규모를 다투고 국제적 영향력도 크지만, 중국을 비판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주변국에 대해서도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하다 보니 세계적으로 반중 정서가 확산한다. 이건 자존감이 아니라 자존심이 강하다는 것이고, 한국과 같은 가까운 이웃이 자존심의 희생양이 될 위험이 크다. 개인이나 국가나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모두를 위해 중요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711호> 기사입니다.


김석 집사
現 건국대 철학과 교수 철학박사(프랑스 현대철학)
신문발행국 논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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